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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번 날 공연 보러간 부부 … 중국에 가족 보낸 기러기 아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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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일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붕괴사고 현장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 꽃다발이 놓여 있다. 지난17일 일어난 이 사고로 16명이 사망했다. 김경빈 기자

“며칠 전 엄마 생신 날 함께하지 못했다며 데이트 삼아 같이 공연을 보러 가셨는데….”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축제에서 환풍구 덮개 붕괴 참사가 일어난 지난 17일. 분당제생병원에서 만난 정모(20)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사고로 숨진 정연태(47)씨의 큰아들이다. 어머니 권복녀(46)씨 역시 종내 소식을 모르다가 16명 사망자 중 마지막으로 신원이 확인됐다.

 사망한 정씨는 인근 정보기술(IT)업체 건물관리인으로, 이날 휴무일을 맞아 부인과 함께 공연장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 장례식장을 찾은 정씨의 친구는 “금실 좋기로 소문난 부부였다”며 “정씨는 40대 후반임에도 자격증을 따겠다고 공부할 정도로 성실했다”고 전했다. 정씨 부부는 군 입대를 앞둔 큰아들 말고 고교생과 초등생 자녀를 두고 있다.

 어이없는 환풍구 덮개 붕괴는 안타까운 이별을 낳았다. 이영삼(45)씨는 아내와 고교·중학생 두 아들을 중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였다. 분당의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일하는 이씨는 일주일에 서너 차례 두 아들과 영상통화를 나눴다. 동료들에 따르면 내년에 가족들과 국내에서 함께 살게 됐다며 전셋집을 얻고는 기뻐했다. 그는 사고 직전 직장동료와 통화하다가 갑자기 연락이 끊겼으며 동료들이 병원을 찾아다닌 끝에 신원을 확인했다. 부인과 두 아들은 사고 당일 밤 급히 귀국했다.

 강희선(24)씨는 남자 친구와 내년에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인근 영어학원 직원인 강씨는 사고 1분 전인 오후 5시52분 예비신랑에게 공연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으로 전송했다. 이 사진은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마지막 연락이 됐다.

 19일 삼성서울병원에서는 홍석범(29)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사고 희생자의 첫 영결식이다. 축제 장소 인근의 게임업체 프로그래머인 홍씨는 회사 동료와 잠시 공연을 보러 갔다가 화를 입었다. 영결식에서 홍씨의 관이 운구차에 실리는 순간 어머니는 “내 아들아”라고 소리치며 오열했다. 홍씨는 경기도 광주시 ‘분당추모공원 휴’에 안치됐다. 20일에는 윤철(35)씨 등 5명, 21일에는 손진호(30)씨 등 4명의 영결식이 열린다. 일부 유족은 각종 법률 지원 방안 등에 대해 사고대책본부와 협의를 마친 뒤 장례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희생자 시신은 19일 현재 분당서울대병원·성남중앙병원·분당제생병원 등 수도권 장례식장 6곳에 있다.

글=이서준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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