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새 임원 26명 중 11명 '정피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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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사장은 낙하산이라는 얘기가 많아요.”

 국토교통부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린 13일 정부세종청사. 박완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감사 시작 전 산하기관장 자격으로 박기춘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박 위원장의 대응은 싸늘했다. 창원시장을 지낸 박 사장은 올해 초 친박계의 지원을 받아 새누리당 경남도지사 경선에 출마했다가 홍준표 현 지사에게 패한 인물이다. 이 때문에 박 사장은 내정 단계에서부터 ‘낙하산 보은인사’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박 위원장의 말은 우리 부와 인천공항 국감 때 낙하산 논란을 집중 공격하겠다는 새정치연합의 선전포고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국감에서는 “낙하산 기관장을 막기 위해 (서승환) 장관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 “국민의 공항이 아닌 친박의 공항” “무자격 조종사에게 항공기 조종을 맡긴 것”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공공기관 낙하산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관피아(관료 마피아)를 제도적으로 막아 규제하는 곳과 규제 받는 곳의 부정한 유착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한 뒤 과거 관피아가 가던 자리를 박 사장과 같은 정치인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정피아’(정치인 마피아) 논란이다.

박 대통령의 관피아 척결 선언 이후 공공기관장이나 감사에 선임된 사람은 모두 26명이다. 이 가운데 11명이 정피아로 분류된다. 금융권 정피아까지 더하면 14명으로 늘어난다. 가장 최근 임명된 정피아 논란 인물은 최호상 한국수자원공사 감사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 충남도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최 감사는 또 수자원공사와 납품 계약을 맺은 녹조 제거 부품업체 대표를 지낸 인물이어서 수자원공사 감사로 적합한 인물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게다가 수자원공사는 국감 이틀 뒤 최 감사를 공식 임명해 국감 지적을 피해가려 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기관장 자리만 놓고 보면 정피아의 비율이 더욱 커진다. 대통령의 관피아 방지 선언 이후 7명의 공공기관장이 새로 선임됐는데, 이 가운데 인천공항 사장을 포함한 5명(71.4%)이 정치권 주변 인사다. 김현미 새정치연합 의원은 “아직 빈자리로 남아 있는 공공기관장 6곳에 대해선 더 이상 정피아·관피아라는 오명이 붙지 않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으로 분류되지 않은 금융기관도 사정은 비슷하다. 공공기관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명분과 정부의 규제 권한을 이용해 금융회사에 낙하산 임원을 앉히는 관행이 남아 있다. 최근엔 우리은행이 친박연대 대변인을 지낸 정수경 변호사를 감사로 선임하면서 정피아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정 감사는 금융회사 근무 경력이 없다.

 금융권 감사·상임이사 자리는 일반인에게 크게 노출이 되지 않다 보니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정치권 인사들이 한 달에 한 명 이상 등용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보름도 안 된 4월 28일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원내대표 시절 비서실장 출신인 강석진씨가 기술보증기금 상임이사로 임기를 시작했다.

5월엔 과거 두 차례 대선에서 이명박·박근혜 당시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조동회 사단법인 국민통합 이사장이 서울보증보험 감사로 갔다. 김기식 새정치연합 의원에 따르면 이들 금융회사 34곳의 임원 268명 중 48명(18%)이 정피아에 해당한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전문성과 역량이 없는 낙하산 인사들은 정부가 전가하는 사업을 아무 문제 제기 없이 떠안아 공기업의 부채를 불릴 수 있다”며 “기관장·임원의 전문성보다는 정치권의 인맥을 활용해 정치적 외풍을 막아주는 역량이 더 중요시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유미 기자, 세종=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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