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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이혼 아직은 … 문 닫은 바티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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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전·현 교황의 만남 프란치스코 교황(오른쪽)이 19일 바티칸의 세인트 피터스 광장에서 열린 세계 주교 대의원대회 최종 회의에서 전임 교황인 베네틱토 16세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바티칸 AP=뉴시스]

가톨릭이 동성애자와 이혼·재혼자에 대해 보다 포용적 입장을 보이는 쪽으로 합의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이 일단 주춤한 모양새다.

 가톨릭 세계 주교 대의원대회(주교 시노드)는 18일(현지시간) 가족을 주제로 한 2주간의 논의를 마치며 최종 보고서를 채택했다. 내년 10월 총회 때까지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서 논의할 ‘교재’다. 보고서에는 그러나 동성애자와 이혼·재혼자에 대한 입장을 담지 못했다.

 보고서 원안에 없었던 건 아니다. 대의원대회 도중이었던 13일 나왔던 중간보고서엔 크게 못 미치지만 과거보다는 ‘진전된’ 내용이 있긴 했다.

 ‘동성애를 환영한다’는 소제목은 ‘동성애자를 향한 목회자적 배려’로 바뀌었다. 동성애를 죄악시했던 교회로선 혁신적 변화란 평가를 들었던 “동성애자도 기독교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은사를 받았고 재능을 가지고 있다” “어떤 동성애 커플은 서로에게 헌신적이며 소중한 지원을 한다”는 대목이 빠지는 대신 “동성애 성향의 남녀도 존경과 세심함으로 환영 받아야 하고 차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혼 또는 재혼했거나 동거 중인 신자의 영성체 참여 이슈를 두고도 “존중과 사랑으로 모든 가정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 항목은 그러나 채택되지 못했다. 대의원대회에서 추인되려면 참석자의 3분의 2(183명 중 123명)이 찬성해야 했다. 그러나 동성애 항목에 대해선 118명만 동조했다. 이혼·재혼·동거 관련 두 항목에 대해서도 각각 104명과 112명만 찬성표를 던졌다. AP통신은 “중간보고서보다 완화된 문구에 일부 진보적 입장의 주교들도 반대표를 던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일단 이 같은 결과를 두고 미국의 레이먼드 레오 버크 추기경 등 보수파의 집단적 반발이 먹힌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패배자가 됐다”(더 가디언), “교황이 일격을 당했다”(파이낸셜타임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진전이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우선 첫 논의임에도 3분의 2에만 못 미쳤을 뿐 과반(92명)을 훌쩍 넘었고 3분의 2에 가까운 주교들이 찬동했다는 점 때문이다. 또 논의 과정 자체가 사실상 투명하게 공개된 점도 있다. 실제 보고서에는 항목 별 표결 결과뿐만 아니라 부결된 항목의 경우 찬반양론을 모두 게재했다. 다음 논의의 출발로 삼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 가톨릭 동성애 인권 단체도 “동성애 환대 언급이 빠진 건 실망스럽지만 대의원대회가 이 문제를 열린 태도로 공개 토론했다는 점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자신은 토론 후 “활발한 토론 없이 모든 사람이 거짓 평화 속에 묵인하는 분위기였다면 개인적으로 무척 유감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혁(保革) 갈등이 공개적으로 표출된 것에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교황은 그러면서 보수파를 향해선 ‘적대적 엄격함’을 보여선 안 된다고 했고 진보 성향 주교들에겐 “처치 전에 붕대부터 감으려고 하지 말라”고 말했다. 사실상 대의원대회의 결론이 논의의 결론이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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