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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548>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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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신경진 기자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는 8669만 명의 공산당원 인사를 총괄한다. 세계 최대의 인력자원부(HR)로 불리는 이유다. 당원 비리를 적발하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감투를 벗기는 조직’이라면, 중앙조직부는 인재를 찾아내 키우고 배치하는 ‘감투를 씌우는 조직’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란 말처럼 중국 공산당의 최대 경쟁력은 인사에서 나온다. 중앙조직부와 중국의 간부 인사 시스템을 살펴봤다.

중앙조직부의 업무는 외국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미국을 예로 들어보자. 모든 장관, 주지사와 부지사, 주요 시장, 연방 기구의 수장, 제너럴일렉트릭, 엑손모빌, 월마트 및 주요 대기업의 최고경영자,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워싱턴포스트의 편집국장, 공중파 방송국 및 케이블 방송국 사장, 예일·하버드대 등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 브루킹스나 헤리티지 연구소장을 한 정당의 내부 조직이 임명하고 감독하는 셈이다. 모든 인사는 비공개로 진행되고 이들의 결정은 절대적이다.

2012년 11월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18기 전국대표대회. 20일 개막하는 18기 4중전회(4차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중앙위원 203명과 후보위원 168명이 모여 ‘의법치국(依法治國·법에 따른 국가 통치)’ 방안을 논의한다. [중앙포토]

 중앙조직부 본부건물은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중국 최고지도부 집단거주지)와 창안제(長安街)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스타일을 결합하되, 장중하고 실용적이며 호화롭지 않을 것.” 건축가 왕샤오안(汪孝安)에게 주어진 가이드라인이었다. 이는 동시에 중앙조직부 요원들의 업무 지침이기도 하다. 중앙조직부 건물에는 문패가 없다. 전화번호 역시 비공개다. 건물에서 걸려나오는 전화는 무더기로 0만 찍힐 뿐이다. 2002년 개통한 임용관련 신고 전화 12380이 유일한 연락방법이다. 중앙조직부원은 명함이 없다. 전화 한 통화조차 내용을 미리 적어 상급자의 허가를 받은 뒤에야 비로소 통화할 수 있다. 중앙조직부원의 한 마디가 지방에서는 정책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중앙조직부의 모든 언어는 당 중앙을 대표한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조직부원의 업무 기록은 번호를 기입해 존안문서로 보존된다. 다른 부처와 인사교류도 없다. 조직계통 인원이 14억 중국에 세포처럼 퍼져있는 8669만 당원, 420만 개의 기층조직을 관리한다. 공개된 최신 자료인 1985년 통계에 따르면 중앙조직부 509명, 성(省)급 2741명(각 성당 94명) 등 조직계통 간부 숫자는 9만6615명이었다.

 조직업무가 베일에 싸인 것은 공산당의 험난했던 역사 때문이다. 1921년 창당한 중국 공산당은 49년까지 국민당의 백색 테러와 맞서 싸웠다. 조직부원의 정보 유출은 조직의 와해를 의미했다. 건국 후에도 간부 인사와 양성은 민감한 이슈였다. 원로 사이에 의견이 엇갈렸다. 당내 화합을 위해서 비밀유지는 필수였다.

 중앙조직부는 성장·장관급 400여 명 인사를 책임진다. 이를 위해 예비간부 1100~5000명을 ‘관리’한다. 당안으로 불리는 인사파일을 통해서다. 최고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 저우언라이(周恩來), 천윈(陣雲), 덩샤오핑(鄧小平), 후야오방(胡耀邦)이 모두 중앙조직부장을 역임했다. 중국에서는 당이 국가에 우선한다. 공산당은 3P를 통해 전국을 통제한다. 인사(Personnel), 선전(Propaganda), 인민해방군(People’s Liberation Army)이 3P다. 3P는 국가가 아닌 공산당 소속이다. 8대 원로인 천윈은 조직부 간부들에게 “장점을 발견해야 인재를 찾아낼 수 있다. 색안경을 쓰고 일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옌안(延安) 시절 “조직부는 사회부(39년 설립된 정보와 경호를 담당하던 부서)와 다르다. 사회부는 나쁜 사람을 찾는 부서지만 조직부는 좋은 사람을 찾는 부서”라는 식으로 조직업무를 정의했다.

 중앙조직부의 작동원리는 두 가지다. 당이 간부를 관리한다는 당관간부(黨管幹部) 원칙과 소련 공산당으로부터 받아들인 간부직무명단제(노멘클라투라)다. 1955년 1월 첫 ‘중공 중앙 관리 간부직무명칭표’가 발표됐다. 한국의 국장급 이상에 해당하는 모든 공무원 및 간부를 총망라했다. 같은 해 9월 각 성과 부처가 중앙을 본 따 자체 관리 명단을 제정했다. 중앙조직부는 84년까지 장관급과 국장급인 하위 두 등급을 관리했다. 하관양급(下管兩級) 제도다. 조직부가 9년간 폐지됐던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간부들의 복직이 쇄도했다. 업무량 폭증을 과감한 권한 이양으로 해소했다. 84년 직속 한 단계만 관리하는 하관일급(下管一級) 방식을 도입했다.

 

인사파일을 장악한 조직부가 간부를 관리하는 기본 방법은 대화다. 중앙조직부 전직 관리는 최근 ‘중국신문주간’에 “직접 대화한 간부의 숫자와 범위가 조직부원의 업무능력을 평가하는 척도”라며 “관찰 대상 간부가 근무했던 부처는 모두 가봐야 한다. 업무상 관계했던 인물은 모두 찾아야 한다. 의문점은 모두 찾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사파일만 아니라 발로 뛰는 인사가 이뤄진다는 얘기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장관급 간부 한 명을 선발하기 위해 중앙조직부가 면접하는 대상은 100여 명 선이다. 임명된 뒤 거짓말이 들통나 낙마한 청와대 비서관과 청문회 벽을 못 넘는 총리·장관 지명자가 속출하는 한국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조직부가 선호하는 고위 간부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7월1일 창당기념일 전날 전국 조직업무 회의에서 새로운 다섯 가지 간부 임용 표준을 제시했다. ▶신념이 굳건하고 ▶백성을 위하며 ▶실무에 능숙하고 ▶중책에 과감하며 ▶청렴·공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국 초 중앙조직부는 전투에서의 공을 중시했다. 공산주의(紅)와 전문성(專)을 모두 살폈다. 문혁 후에는 네 가지를 요구했다. 간부의 혁명화, 연소(年少)화, 지식화, 전문화다. 개혁개방 후에는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를 중용했다. 지금은 “덕·능력·근면·업적·청렴(德·能·勤·積·廉)”과 ‘재덕겸비(才德兼備)’를 요구한다. 재능과 인덕 중에는 덕이 우선(以德爲先)이다. 대세를 파악하는 시각이 능력을 우선한다. “간부는 전문 분야에 정통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들은 불충분한 조건에서도 정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조직분야에 정통한 학자는 중앙조직부의 최근 강조점은 종합적인 소질이지 특정 전문 기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핵심은 바뀌지 않았다. 최우선 요건은 언제나 당에 대한 충성(黨性)이다.

 중앙조직부의 또 다른 핵심 업무는 미래 지도자 양성이다. 마오쩌둥이 시작했다. 64년 그는 후계자 양성 문제를 여러 차례 제기했다. ‘후계자 계획’이 시작됐다. 이 계획은 문화대혁명으로 중단됐다. 문혁이 끝난 80년대 초반 간부 보릿고개가 닥쳤다. 덩샤오핑은 “당도 망하고 나라도 망한다(亡黨亡國)”며 예비간부 육성을 지시했다. 82년 천윈이 중앙조직부에 청년간부국을 만들었다. 85년 10만 명의 예비간부 명단이 작성됐다. 이 가운데 장관급 예비간부는 1054명. 이른바 ‘제3제대(梯隊)’다. 17·18기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 2명을 제외하고 모두 이 리스트에 포함됐다. 20년 앞을 내다보고 국가지도자를 육성한 셈이다.

 지도자 육성 방법도 다채롭다. 다국적기업이 미래 간부를 다양한 자회사와 기피부서에 파견해 단련시킨 뒤에 본부로 발령 내는 방식과 같다. 2007년 카를로스 구티에레스 미국 상무부장은 천더밍(陳德銘) 당시 상무부장과 회견할 당시 천 부장의 이력을 보고 감탄했다. 쑤저우(蘇州)시 서기, 산시(陝西)성장,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 상무부장으로 지역과 부문을 넘나드는 그의 경력에 다국적기업의 잘나가는 임원이 연상된다고 말했다.

 해외 연수는 물론 해외 인재 스카우트도 불사한다. 2002년 난징(南京)시 서기였던 리위안차오(李源潮) 현 국가부주석은 제5차 ‘신세계 하버드 고위 공무원 훈련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3주간의 하버드 연수 내용에는 미국의 정책과 언론의 속성, 협상 전략, 언론 인터뷰까지 포함됐다. 유엔·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 등도 견학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선발한 곳이 중앙조직부다. 90년대 말에는 중앙조직부 산하에 인재업무국이 신설됐다. 정보기술(IT) 분야 창조형 인재 확보가 임무였다. 2008년 ‘천인(千人)계획’을 시작했다. 3~4년 만에 외국의 정상급 과학자 2263명을 초빙해 중국 첨단 기업에 배치했다. 2010년 4월에는 도이치은행 중국법인 이사장이던 유학파 장훙리(張紅力·49)가 세계 최대 은행인 중국공상은행(ICBC) 부행장에 임명됐다. 4대 국유은행의 고위 관리임명은 중앙조직부 소관이다. 장훙리는 중앙조직부가 해외에서 영입한 가장 높은 지위의 관리가 됐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중앙조직부가 헤드헌팅사로 변신한 것이다.

 로키(low-key)로 일관하는 중앙조직부가 유일하게 으쓱하는 때가 있다. 성(省)급 1인자를 임명하는 자리에서다. 지난해 3월 20일 허난(河南)·후난(湖南)·허베이(河北)·헤이룽장(黑龍江)·장시(江西) 5개 성의 당서기가 한날 한시에 교체됐다. 성급 당서기 인사는 중앙조직부 부부장이 발표한다. 이날 왕친펑(王秦豊), 판리강(潘立剛), 장지난(張紀南), 왕얼청(王爾乘), 왕징칭(王京淸) 다섯 부부장이 동시에 출격했다. 베이징·상하이·톈진(天津)·충칭(重慶) 직할시 서기는 정치국 위원을 겸임한다. 2012년 3월 14일 원자바오(溫家寶) 당시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전서기를 공개 비난한 다음날 전격적으로 충칭시 간부대회가 소집됐다. 리위안차오 당시 중앙조직부장이 직접 장더장(張德江) 부총리가 충칭시 신임 당서기를 겸임한다고 발표했다. 8개월 뒤 쑨정차이(孫政才)가 자리를 이어 받았다. 갓 취임한 자오러지(趙樂際) 신임 중앙조직부장이 중앙의 결정을 전달했다.

 중앙조직부가 변신 중이다. 2005년 중앙조직부 리징톈(李景田) 부부장이 사상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외국 대사들을 초대해 본부를 공개하는 행사도 가졌다. 최근 중국 시사지가 중앙조직부를 커버스토리로 보도했다. 탈신비화 행보다. 중앙조직부는 지금 세계 최대 HR조직답게 시대의 변화에 맞춰 앞으로 나아가는 여시구진(與時俱進) 중이다.

신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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