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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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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아들은 샤워하면서도 음악을 즐긴다. 음악소리와 물소리가 어울려 제법 화음을 만든다. 스마트폰시대의 발랄한 새벽 풍경이다. 귀에 익은 음악들이 샤워커튼 사이로 새나온다. 내가 묻는다. “너도 그런 음악 좋아?” 물기를 닦으며 아들이 되묻는다. “아빤 안 좋아?”

 ‘세대 공감’을 이뤄낸 그 음악은 영화 ‘비긴 어게인’의 주제곡들이다. 제목이 ‘바보처럼(Like A Fool)’이어서 무슨 짓을 했나 훔쳐봤더니 예상대로다. “And I have loved you like a fool(난 바보처럼 사랑했다네).” 하기야 사랑은 바보처럼 하는 게 맞다.

 직장을 잃어버린 남자와 애인을 잃어버린 여자가 음악으로 ‘다시 시작하는(Begin again)’ 이야기. 그들은 진짜 잃어‘버린’ 걸까. 혹시 버림‘받은’ 거 아닐까. 교사(출신) 본색이 발동한다. 교실로 가자. ‘받다’라는 접미사에 밑줄을 긋자. 살아오며 ‘받은’ 것들이 대거 밀려올 거다. 차별받고 오해받고 상처 받고 미움 받은 경험들. 그러나 좋은 것들도 있었다. 선택받고 사랑받고 위로받고 인정받고 감명받았던 시간들. 세상의 줄에서 보면 불공평해도 세월의 편에서 보면 공평했다.

 지난 화요일. 세월을 검증하는 자리가 있었다. 모교 체육관에서 열린 입학 40주년 기념행사. 10년도 아니고 40년이라니. 사전에 설문을 돌려 학창시절 가장 좋아했던 노래를 물었다. 2위가 이장희씨의 ‘그건 너’였고 1위가 송창식씨의 ‘고래사냥’이었다. 가사 마디마디가 이토록 가슴을 후벼 팔 줄이야. 40년 세월이 마치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처럼 아스라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던 시절.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아’ 있었다. 끝자락에서 송창식씨는 마이크를 관객에게 양보했다. 순간 터져나온 ‘청춘’들의 함성.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가수를 감전시킨 요동의 순간이었다.

 우리의 청춘은 토라져 가버린 걸까. 믿었던 세월에 우리는 버림 받은 걸까. 88학번 가수 이상은씨가 쪽지를 건넨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언젠가는’ 중에서) ‘비긴 어게인’에 나오는 ‘Lost Stars(길 잃은 별들)’의 가사가 묘하게 겹쳐진다. “God, tell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신이시여, 청춘이 청춘을 낭비하는 까닭을 말해주세요).”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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