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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묻고 제러미 리프킨 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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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제러미 리프킨(왼쪽)은 낙관주의 미래학자로서 한국의 발전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독일 사회학자 하버마스를 존경하는 공감대에서 송호근 교수에게 책을 같이 쓰자고 제안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송호근(이하 송) :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한다. 매일경제 ‘2014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오셨다 들었다. 다작의 저술가이자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어낸 몇 안 되는 미래학자이기도 하다. 책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는가.

한국, 젊은이 열정 넘쳐 … 국토 좁아도 생각 큰 나라 될 것

 제러미 리프킨(이하 리) : 새로운 걸 생각해내는 건 아니다. 이미 다 나와 있는 아이디어들을 취합해 하나의 내러티브로 묶어내는 게 내가 하는 작업이다. 난 그 아이디어들을 설득력 있는 스토리로 엮어낸 것뿐이다. 다른 미래학자들은 자신들이 이상향으로 삼는 미래를 논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 현재 속에서 미래를 읽어내려고 한다.

 송 : 그 점이 공감을 얻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정보기술(IT)·에너지 혁명으로 인해 한계비용이 ‘0’으로 수렴하면서 자본축적의 역학이 바뀌고 공유경제의 시대가 올 것이라 전망한 점에 주목한다. 자본주의 소멸을 주장했는데.

 리 : 자본주의가 사라질 거라고 믿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체제가 세계적으로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그 변화의 목표지점은 공유경제와 협력적 공유사회라고 예상한다. 자본주의 자체가 비교적 신생 경제체제이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점이 내겐 흥미롭다. 시장경제에서 공유경제는 서로 경쟁하고 때론 협조한다. 2050년쯤 되면 자본주의는 여전히 존재하되 변형된 형태로서 공유경제와 공존할 것이라 전망한다.

 송 : 그 방향성엔 동의하지만 자본주의가 공유경제로 전면 대체되지는 않을 거다. 한계비용이 0이 되기까지 시간도 걸릴 것이고, 자본주의도 지난 200년간 내부 모순을 조정하면서 생명력을 이어 왔다. 여기엔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 가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설파한 인간의 조절과 혁신 능력도 주효했다.

 리 : 동의한다. 자본주의는 대체되는 게 아니라 간소화·능률화될 것이라 본다. 살아남는 기업들은 공유경제 방식의 서비스를 하게 될 것이고 그 규모도 커질 것이다. 이는 여러 연구도 이미 입증한 변화인데 한계비용이 0으로 수렴하고 있는 덕택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공유경제 성향이 뚜렷하다.

 송 : 그 논점은 카를 마르크스(1818~1883)가 『자본론』에서 자본주의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게 될 거라고 주장한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리 : 흥미로운 지적이다. 마르크스는 훌륭한 사회학자였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나는 의견을 달리한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자본주의 깊숙이 내재된 모순이다. 이 모순을 마르크스는 물론 애덤 스미스 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도 보지 못했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지금까지 성공을 거뒀고 최후의 승리를 거머쥘 참인데, 이 승리가 뜻하지 않은 후손인 공유경제를 낳았다는 아이러니 말이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후손인 공유경제와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서 있다. 즉 공유경제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자본주의의 계승자로서 새로운 경제체제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송 : 그 현상은 나도 목도하고 있는 바다. 그러나 2050년께에 공유경제가 자본주의 일부로 자리 잡긴 하겠으나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뿌리내릴 수 있다는 주장엔 선뜻 동의하긴 어렵다.

 리 : 역사적 틀에서 보면 패러다임 전환 시점이 도래할 때마다 새 통신·에너지·교통 기술 등이 접목하면서 효율성을 높이며 새로운 형태의 경제활동 체제를 구축해 왔다. 지금 우리가 독일·중국에서 목도하고 있는 건 3차 산업혁명의 싹이며 사물인터넷(IoT)이 생겨 나면서 센서로 농장·공장 등을 조절할 수 있게 됐고 전 인류가 사물인터넷을 통해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 이상 비밀은 없다.

 송 : 동감한다. 그러나 공유경제로 바로 가기보다는 중간단계가 있지 않을까. 논리의 비약이 느껴지는데.

 리 : 우리가 경험한 인터넷 혁명은 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공유경제는 우리 곁에 와 있다. 독자들이 한계비용을 들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음반을 제작하고 뉴스 블로그를 만들고 전자책을 쓰고 있는데 이는 소통기술의 혁신 덕분이다. 소비자가 프로슈머(prosumer)로 변모해 자신들의 콘텐트를 직접 만들어 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젊은 세대는 이 모든 재화 생산 과정을 민주화하고 있으며 우리가 20년 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속도로 바뀌고 있다.

 송 : 몇 주 전 『21세기 자본론』을 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와 했던 대담이 떠오른다. 자본소득이 노동소득보다 높아서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자본의 지배가 더욱 강해진다는 그의 주장과 당신의 주장은 서로 대척점에 서 있다.

 리 : 피케티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피케티 교수는 경제학자로서 인류학적인 맥락을 간과했다. 지금 일어나는 것은 경제활동의 민주화다. 사물인터넷과 통신·교통·에너지 기술 등의 발달 덕분이다. 지금 젊은 세대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쓰며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리고 자신들만의 콘텐트를 별도 비용 없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게 증거다. 얼마 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모든 학교마다 3D 프린터를 설치해주고 싶다고 했는데, 이는 또 다른 기술의 민주화를 가져올 것이다.

 송 : 그래도 모든 영역이 아니라 일부 분야에만 국한되는 변화 아닌가.

 리 : 맞다. 그렇지만 모든 재화·서비스에도 이런 경향이 나타날 거라 본다. 앞으로의 문제는 구글과 같은 회사가 일종의 통제력을 갖고 싶어 하리라는 점이다. 사물인터넷으로 모두가 평등한 기회를 누리는 현실에서 결과적으론 구글이 지식을 독점하는 세계적 네트워크가 되고 있다. 20세기엔 전력이나 통신기술 회사에 대한 규제가 가능했지만 21세기의 구글이나 페이스북도 그럴까.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

 송 : 그건 피케티와 같은 논리다. 화제를 전환해 보자. 공유경제와 협력적 공유사회를 주장하는 당신의 논리의 저변에는 기후변화의 위기에서 지구를 지켜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자본주의가 가장 취약한 이 점을 왜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았는가? 공유경제보다 생태학적 관심을 내세웠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리 : 가장 중요한 질문인데도 지금껏 내게 이런 논리로 파고드는 사람은 없었다. 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와 직결된 문제다. 우리 손자 대에 가면 인류의 70%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과학자들도 있다. 기술 혁명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한계비용을 0으로 낮춰서 효율성을 높이고, 장난감부터 자동차까지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경제 체제로 가야 한다. 그래야 기후변화를 막고 인류를 구할 수 있을 터다. 독일이 이미 보여줬다. 에너지는 공짜가 될 수 있다고. 이야말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송 : 흥미롭고도 중요한 지적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체류 당시 대체에너지·미래에너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팀과 워크숍을 한 적이 있다. 생물학자·화학자·물리학자뿐 아니라 사회학자·인류학자·정치학자들도 합류하고 있더라.

 리 : 장난감만 봐도 공유경제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장난감은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첫 상업적 소유물로 인식하는 사물이었다. 지금 미국에선 장난감 공유 시스템이 인기다. 수천 개의 장난감을 등록해놓고 서로 빌려간다. 장난감이 일정한 경험을 다른 어린이들과 나누는 도구가 된 거다. 한국에서도 이런 대여 시스템이 생겨났다고 들었다.

 송 : 그 쟁점은 ‘사회정의’와 깊은 연관을 맺는다. 한국에선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역시 베스트셀러였다. 협력적 공유사회는 계몽주의 이후 사회 사상가들의 핵심 관심사였고 아직 풀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 리프킨 교수는 사회정의를 어떻게 개념화하는가.

 리 : 어떤 존재이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번영을 누릴 가능성이 보장되는 것이 사회정의다. 자신을 보호할 자는 자신뿐이라고 주장했던 계몽주의학자나 적자생존을 외쳤던 진화론자들은 틀렸다. 인지과학은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라고 증명했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보면 나도 고통을 받는 공감의 신경계를 갖고 있다. ‘공감력’은 서로가 번창하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게 인간 본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공감력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수렵시대엔 친족끼리, 국가가 탄생한 후엔 같은 국민끼리 공감했다. 페이스북과 스카이프로 전 세계가 연결된 지금은 전 인류가 공감의 대상이다. 경제적으로도 그렇다. 20세기를 지배한 수직통합형 기업은 수익이 기업 경영진 상부에 집중되는 구조였다. 그러나 사물인터넷은 완전히 다른 체계다. 집중이 아닌 분배를 위한 투명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유를 위한 플랫폼이다.

 송 : 마지막으로 현실문제, 한국의 미래에 대해 의견을 묻고 싶다. IT 강국인 한국이 한계비용 0 사회가 되는 최초의 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그러면 자본주의 혁명이 한국에서 일어날 텐데.

 리 : 한국이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부침을 겪으며 콘텐트를 생산해 냈다. 인쇄 금속활자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아니라 한국이 먼저 발명했다. 식민지 경험 역시 주변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세심함을 심어줬다고 본다. 그런 한국이 이젠 문화적 핫 스폿(hotspot)이 됐다. 공유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한국인의 DNA에 내재해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세계적 수준의 산업도 있으니 가능성을 체화해 내는 능력도 갖췄다. 한국 젊은이들이 가장 의욕적이고 배움에 대한 욕구도 크다. 미국인들은 일하기 위해 살고, 유럽인들은 살기 위해 일하고, 한국인들은 일하기 위해 일한다는 말도 있다(웃음). 열정적인 젊은이들이 한국을 한계비용 제로의 사회로 만들 것이며, 한국이 국토는 좁아도 생각은 큰 국가가 되리라 확신한다.  

제러미 리프킨은 …

1945년 미국 덴버 출생.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터프츠대 플레처스쿨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벌어지는 인간사를 분석해 규명하고 비판한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 행동주의 철학자다. 『엔트로피 법칙』을 비롯해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등 출간 즉시 화제를 불러온 저서를 다수 출간했다. 지난 4월 펴낸 『한계비용 제로 사회 : 사물인터넷과 공유경제의 부상』으로 다시 한번 미래학자의 면모를 보였다. 워싱턴에 설립한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으로 일한다.

[인터뷰 후기] 단호·온화 이중적 기질

그의 인상은 단호했고 온화했다. 인색했으나 다변이었다. 이중적 기질 중 어느 것을 촉발할 것인지는 대담자의 몫이다. 우선 동류의식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했다. 유대인인 그는 냉전시대 미국 지성계를 풍미한 대니얼 벨 교수를 흠모할 것으로 짐작했는데 그 추측이 맞았다. 나는 30년 전 벨 교수의 강의를 들은 바 있다. 벨을 위시해 루이스 멈퍼드, 슈펭글러, 폴라니 등을 언급하자 리프킨의 표정은 곧 온화해졌다. 인터뷰는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즐거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자본주의가 그의 전신인 공유경제를 복원시킨다는 리프킨의 주장은 어찌 보면 이윤 추구로 질주하는 거대자본이 불평등을 양산해서 결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부른다는 피케티의 주장과 유사하다. 그는 이 지적을 단호히 부정했다. 리프킨은 ‘한계비용’이라는 분석도구를 내세웠다. 한계비용 제로는 가격이 제로가 되는 경제를 뜻한다. 그때가 되면 공유경제가 도래하고 공유사회가 형성된다. 언제인가? 2050년! 너무 이르다는 나의 지적에 ‘현재의 속도로 봐서 무리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에너지와 커뮤니케이션 축으로 구성된 그의 문명론 속에서 경제학적 논리는 순식간에 용해됐다. 내가 자주 지적한 ‘논리적 비약’은 거시 문명론의 대중적 인기에 따른 한계비용이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정리=전수진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공유경제=재화·서비스·재산 등을 소유하는 대신 대여 등의 방식으로 공유하는 것을 토대로 한 경제.

◆한계비용 제로=마지막 한 단위를 추가로 생산하는 데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뜻.

◆사물인터넷=컴퓨터나 모바일뿐 아니라 자동차와 냉장고 등에도 칩과 통신 디바이스를 달아 인터넷에 연결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