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정치Q] 'DJ 납치' 열쇠 쥔 인물 "더는 못 버텨 미국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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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 정치전문기자

1973년 8월 8일 오후 도쿄 그랜드팔레스호텔 22층 복도. 괴한 6명이 김대중(DJ) 전 대통령후보를 덮쳤다. 김씨는 차로 6시간 떨어진 오사카 부두에서 중앙정보부 공작선 용금호에 태워졌다. 그러고는 13일 밤 서울 동교동 자택 인근에 버려졌다. 김형욱 실종과 함께 70년대 2대 미스터리로 꼽히는 DJ 납치사건이다.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는 정보부의 김형욱 살해를 파헤친 후 요즘 DJ 납치사건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사건의 핵심 인물이 "미국행"을 선언했다. 괴한 6명의 지휘자였던 윤진원(80) 당시 정보부 해외공작단장이다. 납치에는 중정요원 20여 명과 용금호 선원 20여 명 등 모두 40여 명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윤씨는 작전을 지휘했을 뿐 아니라 사건 이후 요원.선원들의 생계와 보직 등을 관리한 '열쇠의 인물'이어서 그의 미국행은 진실규명위에 충격적이다.

전직 정보부 고위 인사 몇몇은 최근 윤씨에게서 고별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기운이 없고 절망적인 목소리였다. "수십년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과거사법도 통과됐으니 이제는 더 버틸 힘도 없다. 미국으로 간다." "언제 올 거냐"는 물음에 그는 "기약이 없다"고 했다. 그가 실제로 출국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며칠 전부터 휴대전화가 꺼져 있다.

윤씨는 3공 시절 정보부에서 손꼽히는 대북공작 베테랑이었다. 한국전쟁 때 소위로 임관한 뒤 육군첩보부대(HID)에서 활동하다 61년 창설된 중앙정보부로 옮겼다. 73년 납치사건 때도 현역 군인이었다.

이후락 정보부장의 지시를 받들어 납치사건을 주도하면서 가혹한 시련이 시작됐다. 정보부의 생계대책이 충분치 않자 일부 선원은 그를 몰아붙였다. 그는 정보부에서 돈을 타다가 선원들에게 주면서 일일이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아내야 했다. 자신도 퇴직 후엔 마땅한 직업 없이 산과 바다를 전전했다고 한다. 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는 연행팀이 오지나 않을까 집 밖의 기척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진실규명위는 현재 국정원에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사건 조사에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이후락 전 부장은 물론 윤씨를 아직 신문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차에 윤씨가 미국행을 천명했으니 안개는 더 짙어질 것 같다.

'조직의 인간'이라는 정보부원. 윤씨는 정치공작이라는 조직의 물결에 휩쓸려 유랑을 시작했다. 기형적인 한국 현대사가 낳은 사생아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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