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빈곤 추락] 中. 빈곤의 동반자, 가정 해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 빈곤층으로 추락한 사람의 절반 정도는 가정 해체를 경험하고 있다. 이혼이나 별거 때문에 빈곤층으로 전락하는가 하면 가난의 수렁에 빠지는 과정에서 가정이 깨지기도 한다. 김상선 기자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는 신미영(41.여.가명)씨는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사우나탕의 어엿한 사장이었다. 신씨의 불행은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사우나탕이 부도나면서 시작됐다. 부도 때문에 생긴 빚을 갚는 데 시가 2억원 상당의 아파트와 300평의 밭 등 모든 재산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는 재산을 다 잃었지만 식당 일용직과 전단지 돌리기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던 신씨가 헤어날 수 없는 가난의 늪에 빠진 것은 2001년 남편이 가출하고서다. 남편은 다단계 판매를 하며 생긴 4000만원의 빚까지 신씨에게 떠넘긴 채 집을 나가버렸다.

세 자녀를 혼자 키우고 있는 신씨에겐 매달 80여만원씩 들어가는 아이들의 교육.양육비가 가장 큰 부담이다. 신씨는 "받아 주는 곳만 있다면 어디든 취직하겠다"는 심정으로 지난해 자활후견기관에 등록해 간병인 직업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너무 어려 당분간 정상적인 취업을 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신씨의 경우처럼 가정 해체는 빈곤 추락의 직접적 원인이 되거나 빈곤 탈출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삼성사회봉사단의 지원을 받아 본지와 한국사회보장학회가 면접조사한 100명 가운데 이혼.사별.별거 등 가정 해체로 인해 빈곤층으로 추락한 사람이 26명이나 됐다.

가정 해체가 직접적 원인은 아니지만 사업 실패 등으로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과정에서 이혼.별거가 빈곤 추락을 더욱 가속화한 사람도 18명이었다.

또 기혼자 93명 가운데 이혼.별거 상태인 경우가 37명이나 됐다. 사별자 13명을 제외한 80명 중 거의 절반이 이혼이나 별거 등 가정파탄을 겪고 있는 것이다. 유형별로 보면 빚보증 등으로 인한 빈곤 추락자 11명 중 7명, 질병형 21명 중 4명, 사업실패형 33명 중 6명이 이혼.별거 상태였다.

◆ 여성에게 치명적인 가정 해체=이혼이나 배우자와의 사별은 여성에게는 직접적 빈곤 추락의 원인이 된다. 특히 전업주부였다가 이혼.사별을 하는 경우 취업이 제대로 안 돼 곧바로 극빈층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전업주부였던 김순희(42.가명.인천시 강화군)씨는 남편과 사별하자마자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김씨의 남편은 97년 사업 실패 뒤 직장에 다시 다녔지만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지난해 갑자기 사망했다. 남편이 2500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김씨는 12, 9세의 두 자녀를 데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었다. 그는 결국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해 자활후견기관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석재은 박사는 "최근 미혼모나 이혼.사별로 인해 가족을 부양해야 할 처지가 된 여성 가구주가 증가하면서 여성 빈곤층의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통계청의 가구 소비실태 조사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00년 말 현재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가구가 남성이 가구주인 경우 중엔 7%인 반면 여성이 가구주인 경우 가운데는 21%로 세 배나 됐다. 대통령 자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김수현 비서관은 "자녀에 대한 양육 대책이 없더라도 이혼할 수 있는 현행 제도 때문에 이혼한 여성들이 아이까지 맡을 경우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가사소년제도개혁위원회가 이혼 전 자녀 양육에 대해 합의서를 제출토록 하는 등의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다.

◆ 가정 해체로 이어지는 빈곤 추락=가정 해체는 빈곤 추락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다. 사업 실패나 중병, 빚 보증 사고 등으로 가계가 급격히 기울게 되면 부부간에 다툼이 잦아진다. 결국 별거나 이혼으로 이어져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대명 박사는 "사고나 질환이 발생한 뒤 생활고 때문에 아내가 가출하면 남성은 우울증이나 술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이런 사람들은 근로 능력을 잃어 빈곤 탈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파산 신청을 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이혼 상태에 있는 것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가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 말까지 소비자 파산을 신청해 면책이 확정된 135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파산 신청 당시 기혼자 1034명 가운데 이혼한 사람이 26.8%나 됐다.

◆ 특별취재팀=신성식.김정수.권호.이충형 기자 <newslady@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