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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우드워드 '워터게이트'를 털어놓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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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모든 것은 한 해군 중위와 연방수사국(FBI) 간부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몰고 온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밥 우드워드 기자는 2일 워싱턴 포스트에 취재 과정을 털어놓았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내부 제보자 '딥 스로트'와는 어떻게 만났으며 취재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가. 다음은 그 요약이다.

*** '딥 스로트' 취재 과정

72년 6월 17일 새벽 FBI의 야간 당직자가 당시 FBI 부국장이던 펠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괴한 5명이 민주당전국위원회 본부 사무실에 무단 침입해 도청장치를 수리하려다 체포됐다는 것이다. 같은 시각 워싱턴 포스트의 사회부 데스크도 내게 전화를 걸어 "빨리 이 사건을 취재해"라고 지시했다.

칼 번스타인과 나는 괴한이 소지하고 있던 수첩의 전화번호부에서 '하워드 헌트(W.H: Howard Hunt)'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W.H는 백악관(White House)를 의미하지만 하워드 헌트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를 파악하려면 권력 핵심부의 '누군가'가 필요했다. 나는 펠트의 전화번호를 돌렸다. 내 전화를 받은 펠트는 "이 사건은 상당히 커질 것이야"라고만 말하고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백악관으로 직접 다이얼을 돌렸다. 전화번호는 456-1414였다. 그리고 하워드 헌트를 찾았다. 응답이 없었다. 교환원은 친절하게도 "그는 아마도 찰스 콜슨의 사무실에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콜슨은 닉슨의 특별 자문관이었다. 그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콜슨의 비서는 "지금 콜슨은 여기 없다. 아마도 그가 카피 라이터로 일하는 광고회사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나는 콜슨과 연결됐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왜 당신의 이름이 무단 침입자들의 수첩에 적혀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이런 빌어먹을(Good God)!"이라고 외친 뒤 전화를 '꽝'하고 내려놨다. 나는 다시 광고회사 사장인 로버트 베네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베네트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콜슨이 CIA 요원이라는 것은 아마도 비밀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큰 비밀이었다. 나는 결국 CIA 담당자로부터 "콜슨이 49~70년 CIA에서 일했다"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다시 펠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콜슨, 백악관, CIA"라는 세 마디 말만 했다. 펠트는 갑자기 무뚝뚝한 목소리로 "이건 오프 더 레코드야"라고 말했다. 펠트는 "사실 콜슨은 이번 무단 침입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고 말해줬다. 자칫 무단 침입죄로만 끝날 것 같던 사건이 백악관과 관련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비화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버지니아의 펠트 자택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세 가지 접선 암호를 정했다. 내가 평상시에 펠트를 만나고 싶으면 아파트 커튼을 하나 열어 놓기로 했다. 급히 만나고 싶으면 빨간 깃발이 꽂힌 화분을 내 아파트 발코니 뒤에 내놓기로 했다. 이는 다음날 오전 2시에 워싱턴 외곽의 특정한 지하 주차장에서 만나자는 뜻이었다. 만일 펠트가 나를 긴급히 만나고 싶으면 내 아파트로 배달되는 뉴욕 타임스에 시계를 그려 넣기로 했다. 타임스의 20쪽 하단에 그려진 시곗바늘이 약속시간이었다. 펠트가 어떻게 매일 내 아파트 발코니를 관찰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다.

최원기 기자

▶ 1958년 1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솔트레이크 지국장으로 재직하던 마크 펠트가 권총 다루는 솜씨를 과시하는 사진. [샌타 로자 AP=연합]

*** 마크 펠트, 영웅이냐 배신자냐

워터게이트 사건의 익명 소식통 '딥 스로트(deep throat)'의 정체가 당시 연방수사국(FBI) 부국장 마크 펠트(91)로 밝혀지면서 미 정가엔 새로운 논쟁이 촉발됐다.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공개할 수 없는 정보 기관의 책임자로서 상관인 대통령이 운영하는 캠프의 부정 행위를 언론에 폭로한 행위가 과연 정당했느냐는 논쟁이다.

◆ 영웅인가 배반자인가=워터게이트 상원조사위원회의 민주당 자문역이었던 테리 렌스너는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FBI는 백악관의 진실 은폐에 가담하고 있었다"며 "이 때문에 펠트의 정보 유출은 오히려 FBI를 구하기 위한 모범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사 플로이드 애덤스도 "펠트는 조직의 질서를 뛰어넘어 정부의 부정을 파헤치는 데 기여했다"고 옹호했다.

그러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패트릭 뷰캐넌은 "펠트는 공직 윤리를 저버린 배반자로 뱀 같은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닉슨의 보좌관이었던 존 W 딘도 "펠트는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의 후임을 노렸으나 닉슨이 다른 사람을 임명하자 불만을 품고 내부 고발자로 나섰다는 지적이 있다"며 "펠트의 폭로 동기가 (닉슨에 대한) 분노였다면 정말 고상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1일 "펠트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판단하기 어렵다"며 답변을 피했다.

◆ 펠트, 돈방석에 앉나=펠트가 30여 년 만에 '딥 스로트'임을 시인한 것은 돈을 의식한 가족들의 설득 때문이라고 뉴욕 타임스가 1일 보도했다. 출판계에선 연로한 펠트가 자서전을 쓸 경우 대필 작가를 쓴다고 해도 100만 달러 이상의 선금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워싱턴=김종혁.강찬호 특파원

*** 35년간의 인연 … 남는 의문

1970년 어느 날 ROTC 해군 중위였던 나는 백악관 상황실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해군 연락장교이던 나의 임무는 해군 문서를 백악관에 전달하는 것이었다. 내 오른편에는 중년 신사가 앉아 있었다. 키가 크고 어딘지 모르게 내면의 힘의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백악관에 중요 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온 것 같았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밥 우드워드입니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러자 그는 "나는 마크 펠트네"라며 자신이 FBI 간부라고 소개했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펠트와 나는 워싱턴의 조지 워싱턴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27세이던 나는 언론사 기자 시험에서 떨어져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직통 전화번호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에게 종종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조언을 청하곤 했다.

◆ 첫 제보=해군 제대 후 지방신문에서 일하던 나는 71년 8월 워싱턴 포스트에 들어갔다. 초년 시절 바쁜 중에도 펠트와 자주 연락을 취했다. 펠트는 어느덧 내 인생의 스승이 돼 있었다. 어느 날 펠트는 스피로 애그뉴 당시 부통령이 2500달러의 뇌물을 받았다고 제보했다. 나는 소식통을 밝히지 않은 채 이 정보를 고참 기자인 리처드 코헨에게 줬다. 코헨과 나는 이 정보의 신빙성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2년 후 이뤄진 조사 결과 애그뉴 부통령의 뇌물 수수는 사실로 확인됐다.

◆ 펠트의 면모=그는 정보기관의 최고위직에 있었기 때문에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건 추적의 방향타였고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 펠트가 위험을 무릅쓰고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했을 때 난 그 이유를 궁금해 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닉슨은 사임했다. 펠트가 이전에 실체가 공개됐더라면 그는 영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펠트는 FBI 내 정보를 언론에 알리는 것이 조직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닉슨이 FBI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펠트는 FBI 후버 국장 후임에 임명된 그레이는 닉슨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펠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스파이전을 벌이던 방첩요원이었다. 그는 게임을 즐겼다. 어떤 경우에도 비밀을 지켰고 말도 함부로 하는 법이 없었다.

나는 뒤에 워터게이트 사건의 비화를 담은 저서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을 펴냈다. 거기에는 내가 동료 칼 번스타인과 함께 딥 스로트에 모든 걸 걸고 달라붙었고 단계적으로 그의 정보를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설명돼 있다. 지난 33년간 비밀로 묻혀 있었던 딥 스로트의 정체가 밝혀진 지금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제 대부분 밝혀졌다. 그러나 아직도 한 가지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것은 마크 펠트가 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려 했는지이다. 언젠가 나는 그 질문을 펠트에게 한 적이 있었다. 그의 대답은 "나는 내 방식대로 일을 처리했을 뿐이야"라는 것이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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