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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환의 유레카, 유럽] 장벽 붕괴 25년 … 동독 임금, 서독의 83%까지 쫓아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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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베를린장벽 붕괴를 이끈 옛 동독 라이프치히 시위 25주년 기념식(9일). [로이터=뉴스1]

옛 동독지역인 작센주 츠비카우에는 폴크스바겐의 주요 브랜드인 ‘골프’와 ‘파사트’ 공장이 들어서 있다. 같은 작센주 라이프치히에서는 BMW의 신형 전기자동차가 생산되고 있으며, 드레스덴·프라이베르크·켐니츠는 초소형전자기술 산업단지로 변모했다. 역시 옛 동독지역인 튀링겐주 예나는 전통을 자랑하는 광학과 전기 산업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다.

 동독 한가운데 자리 잡았던 베를린의 경제도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다. 동베를린의 토어슈트라세는 실리콘 앨리(거리)로 불릴 정도로 IT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새로운 스타트업 기업들도 앞을 다투어 들어서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전 세계 젊은 예술가들이 대거 몰려왔던 베를린은 지금 엔지니어와 비즈니스 컨설턴트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애틀랜틱 타임스가 최근 전했다.

 베를린장벽 붕괴 사반세기를 맞는 동독 지역의 현주소다. 작센·튀링겐주의 여러 도시는 서독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다. 동독지역의 생활수준은 서쪽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며 아우토반 고속도로망과 인터넷 네크워크 등 IT(정보기술) 인프라는 오히려 서독지역을 능가하는 곳도 있다. 독일 정부가 발간한 ‘통일 연례보고서’는 “삶의 질과 인프라 측면에서 오늘날 동서 간에는 더 이상의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25년 전 자유와 민주화를 갈구하며 공산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동독인들의 용기가 낳은 결실이다. 동서독이 형식상의 통일을 넘어 실질적인 완전통합을 향해 가속도를 내고 있다.

 1989년 11월9일은 동서독은 물론 동서 진영 간 냉전종식의 상징인 베를린장벽 붕괴의 날이다. 독일 곳곳에선 축제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지난 9일에는 장벽붕괴의 결정적 계기가 된 라이프치히 월요시위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은 “자유를 갈망했던 7만 명의 동독인들이 압제자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거리로 나왔다”며 시위대의 용기를 치하했다. 통일 24주년인 3일엔 하노버에서 성대한 기념식이 열렸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89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시민의 용기가 없었다면 베를린 장벽의 붕괴도, 동독 지역의 첫 자유선거도, 그리고 통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우리는 결코 이를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와 가우크 대통령은 둘 다 동독 출신이다.

 하지만 동서독 간에는 여전히 엄연한 격차가 존재한다. 독일경제연구소(DIW) 조사에 따르면 동독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서독의 3분의 2 수준이다. 동독에서는 최강인 작센주의 경제력도 서독의 최약체 지역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보다 14% 떨어진다. 40년이 넘는 오랜 분단의 흔적을 단번에 지우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DIW는 “동독엔 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대기업이나 기업본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서독의 평균 임금은 3만2000유로(약 4350만원)였다. 동독의 노동자들은 2만6502유로로 82.8% 수준이다. 지난해 동독의 실업률은 10.3%로 통일 후 가장 낮았다. 하지만 이 또한 서독의 실업률 6%에 비해서는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인구 감소 현상은 동독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다. 동독 인구는 1991년 1807만에서 지난해에는 1629만으로 오히려 줄었다. 반면 서독의 인구는 통일 직후 6191만에서 지난해 6579만으로 늘었다. 특히 일자리 찾아 떠나는 동독을 떠나는 젊은층이 많아 더 큰 문제다. 일부 지역은 2030년까지 무려 25%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차별의식 또한 극복해야 할 과제다. 엠니트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다”고 느끼는가 하는 질문에 56%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동독이 60%로 서독의 55%보다 더 많았다. 슈피겔-포르자 여론조사에서는 30세 이하 젊은층 57%가 공동체의식이 있다고 대답해 미래는 더욱 희망적이라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동서독 사이의 여전한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그 격차는 점차 좁혀가는 추세임에는 분명하다. 동독의 경제력은 날로 향상되고 임금비용은 낮아지고 있다. 가계수입은 서서히 서독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생산성도 높아지고 연구개발분야의 고급인력 비율은 늘어나고 있다. 경제참여인구는 늘고 실업자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DIW는 “비록 속도는 늦은 감이 있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경환 중앙SUNDAY 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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