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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병원 밥은 왜 이리 맛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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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9일 오전 서울 양천구의 한 정형외과. 점심식사가 11시30분쯤 병실로 배달됐다. 이날 점심은 쌀밥에 뭇국·두부김치·장아찌·시금치였다. 교통사고로 5일째 입원 중인 한승일(70)씨는 식판을 한 번 훑더니 이내 침대 식탁을 접고 일어났다. “먹으나마나 한 밥이야. 고기 하나 없는 거 봐.” 한씨는 “병원에 입원하고 매끼 밥을 두세 숟가락밖에 못 먹었다”며 “밥을 맛있게 먹어야 기력을 회복해 일어날 텐데 이러다 몸이 더 나빠지겠다”고 푸념했다.

 병원 밥은 ‘맛없는 밥’의 대명사다. 섭취 영양권장량에 맞춘 병원 밥이 화학조미료(MSG)를 넣은 ‘바깥 밥’ 같을 순 없을 것이다. 덜 맵고 덜 짜 몸에는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맛이 없어서 환자들이 밥을 쳐다보지도 않으면 바깥 밥이 나을지도 모른다.

 허리디스크로 동네 병원에 최근 입원한 이정순(54·여·서울 도봉구)씨는 “딸이 며칠째 집에서 반찬을 싸다 나르고 있다”며 “맛이 없는 것보다 음식이 부실한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 A대학병원의 4560원짜리 일반식(위). B대학병원에서 외국 환자에게 제공하는 식사(아래)는 한 끼에 1만7500원을 받는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인은 밥값이 내국인과 다르다. [사진 각 병원]

  맛없는 병원 밥 논란은 2006년 환자 식사비에 건강보험이 적용된 이후 등장했다. 환자 치료비에 건보를 적용하듯이 밥값의 일부를 건보가 부담했다. 당시 전문가들이 “밥보다 먼저 건보를 적용할 게 많다”며 반대했다. 당시 정부는 몇 해 동안 건보 흑자가 나면서 돈이 쌓이자 이 돈을 풀었고 밥값도 그 대상에 포함시켰다. 병원들이 마음대로 밥값을 받다가 이제는 정부가 정한 대로만 받게 됐다.

 병원 밥은 일반식과 치료식(당뇨식·저염식·저단백식·투석식 등)으로 나뉜다. 보통 밥과 국, 반찬 네 가지로 구성된다. 일반식 수가는 3390~5680원, 치료식은 4030~6370원이다. 이 비용의 절반을 건보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환자가 낸다. 2006년 이후 8년째 수가가 묶여 있다. 매년 건보 수가가 2% 정도 올라가지만 밥값은 예외다.

 일반식 기준으로 보면 병원은 한 끼당 기본 3390원을 받는다. 몇 가지 종류의 밥을 제공하면 620원, 병원이 직접 식당을 운영하면 620원을 얹어준다. 병원이 직접 고용한 영양사가 있으면 550원, 조리사가 있으면 500원 올라간다. 병원이 이런 조건을 다 충족하면 한 끼 수가가 5680원이 되고 절반인 2840원을 환자가 부담한다. 지난해 환자 밥값으로 나간 건강보험 재정은 1조4118억원이다.

 병원들은 부실한 병원 밥의 원인이 저수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류항수 대한병원협회 보험국장은 “자장면 한 그릇 가격은 2006년 3500원에서 올해 4500원으로 올랐는데 병원 밥값은 그대로다. 물가와 인건비는 8년 전에 비해 10~30% 올랐는데 식사의 질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8일 A대학병원의 저녁식사 시간. 잡곡밥에 우거짓국·고기볶음·김치·호박무침·가지무침이 나왔다. 양천구 정형외과보다 훨씬 나아 보인다. 정부가 정한 방식대로 건강보험 밥값을 계산하면 4560원이다. 이 병원 영양팀장은 “한 끼에 실제 들어간 돈은 5000원이 넘지만 건보 제한 때문에 4560원만 받을 수 있다”며 “적자는 우리가 떠안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한 밥값의 적정성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대한병원협회는 원가에 못 미치기 때문에 질을 높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010년 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내놓은 병원 밥의 원가는 3812(동네의원)~5251원(대형 대학병원)이다. 현행 수가보다 낮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지금의 식대 수가가 원가보다 부풀려져 있다”고 말한다. 병원협회는 2010년 이후 시간이 지나 원가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대 김 교수는 “위탁업체를 선정해 식당을 운영하는 대형병원은 재료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등 ‘규모의 경제’ 때문에 원가가 덜 든다”면서 “다수의 대형병원이 식당을 외부업체에 위탁하면서 직원들의 식사를 공짜로 제공받는 식으로 ‘리베이트’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손영래 보험급여과장은 “병원에서 쓰는 재료의 질에 따라 원가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적정 원가를 정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도 “식대 수가가 오래 묶여 있었던 게 문제가 있는 만큼 대책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혜미 기자 cre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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