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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범 주영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는 놈입니다
죽음으로 윤상이 부모님과 윤상이에게 속죄하려합니다.
결코 죽일 생각은 없었읍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모든 것이 밝혀진 지금에 그저 죽음이 하루빨리 와주기만을 기다리는 심정입니다.
잡히고 나서 수사관으로부터 윤상이 어머니가 더이상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할 얘기는 아니지만 내 자식이라도 윤상이 부모님께 드려 봉양케 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저의 죄가 크고 돌이킬 수 없다는 뜻입니다.
나 같은 인간을 선생이라고 믿고 따르던 그 애들, 이제 무슨 얘기를 더할 수 있겠읍니까….
동료교사등 모든 교직자들에게는 단지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몇년간이나마 교단에 섰던 사실 자체도 없었던 것으로 해주십시오. 저는 교직자가 아닙니다. 다만 교사의 껍질을 쓴 악마였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저는 비교적 안정된 가정에서 누구보다도 정상적으로 자라왔읍니다. 이미 모든 게 드러나지 않았읍니까.
대학 4년간 재학시절 한여대생과 깊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결국 그 사랑은 결실을 보지 못했고 그때 깊은 상처를 받았지요. 그러나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을 바꿔놓은 주원인은 아니었읍니다.
78년 제대와 함께 사회에 발을 디뎠을때 처음으로 만져봤던 카드가 문제였읍니다.
부푼 가슴을 안고 교단에 섰으면서도 어느새 도박판에 혼을 잃은 그런 인간이 돼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내 이성을 마비시켰습니다. 아마 내 마음속에 본래 악마가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마비된 이성이 나도 모르는 사이 방탕과 방종한 생활로 이끌고 간듯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당시 교사로서 최소한의 양심은 가졌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성의껏 친절하게 대했고, 그것이 여중학교라는 특수성 속에서 오히려 문제가 됐던 것입니다.
믿지 않겠지만 한번은 여학생들 사이의 질투속에서 모함을 당한 사건도 있었읍니다.
학생들의 모함사건 이후 당시 학생들에 대해 어떤 복수심 같은 것이 싹텄었습니다. 아마 마비된 이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중학교때부터 교회를 다녔읍니다.
이제라도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죄의 사함을 빌렵니다.
나는 한여자의 남편, 두아들의 아버지가 아니었읍니다.
나와 함께 인연을 맺었던 우리 가족들….나라는 남편이, 아버지가 아예 인연조차 맺은 적이 없었던 것으로 해주십시오. 인간의 죄는 순간에 이루어지지만 그 죄의 댓가는 영원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앞에 무릎꿇어 불효자의 용서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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