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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사만화의 선구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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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한국 시사만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화가 이도영의 ‘배우창곡도’. 1910년 4월 10일자 ‘대한민보’1면에 실린 이 만평은 판소리 ‘사랑가’에 나오는 뻐꾸기 소리의 뻐꾹을 복국(復國)이라 바꿔써 기울어진 나라를 되세우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한국 근대 미술사에서 선구자로 꼽히는 창작 만화가는 누구일까. 최초의 상업 화랑은 언제 어디에 생겼을까. 조선 사람과 풍속을 처음 그린 외국인 화가는?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척척 받아넘기는 사람은 미술사가 이구열(73.한국근대미술연구소장)씨다. 일간지 미술 전문기자로 일하던 1960년대부터 자료 찾기가 가물에 콩 나듯 하는 근대 미술사 분야를 뒤져온 그는 발품 들인 방대한 사료를 후학과 나눠왔다.

그가 새로 펴낸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돌베개)는 일제 강점기 한국미술의 역사와 저력을 보여주는 역저다. 75년 문을 연 뒤 홀로 이끌어온 한국근대미술연구소가 30주년을 맞는 올해, 노 미술사가는 또 한 권의 저술로 외로운 발걸음을 자축한다.

1909년 6월 2일 창간한 국한문 일간지 '대한민보'는 1면 복판에 시사만화를 실어 한국 신문사상 획기적 편집이란 기록을 남겼다. 때가 때인지라 만화 내용도 친일파 고발이나 항일 구국 정신의 고취 등이 많았는데 이 중요한 만평을 맡은 이가 화가 이도영(1884~1933)이다. 창작 만화의 개척자인 셈이다. 전통화법을 살린 사실적인 묘사로 시대 상황을 알리고 비판한 그의 날카로운 풍자 정신을 이구열씨는 "믿을 수 없이 놀라운 시사만화가 활동"이라고 평한다.

한국에서 처음 미술품을 팔고 산 상업화랑은 1900년 지금의 서울 중구 지역에 있던 '정두환 서화포'다. '황성신문'의 광고를 뒤져 이런 사실을 확인한 저자는 이어'수암서화관''교육서화관' '한성서화관' '한묵사''고금서화관'을 찾아 한국 화랑사의 발전 모습을 뒤쫓는다.

한국 최초의 양화연구소, 한국의 나체 미술 그 시초와 정착 등 18편의 글을 모은 이씨는 "이 책이 국권 잃은 일제 강점기 미술계의 현실을 실감케 하는 실증 자료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031-955-5036.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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