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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홍콩의 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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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세계는 지금 홍콩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홍콩은 세계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곳인가? 서둘러 말하면, 홍콩은 동아시아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그리고 문명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도시다. 중국 대륙을 통틀어 ‘민주주의’를 실시하고 있는 곳은 유일하게 홍콩뿐이다. 민주주의는 근대문명의 핵심이다. 쑨원의 신해혁명이 청조를 무너뜨린 지 100년이 넘었지만, 그 근대문명의 본론 부분을 실현해 보지 못한 것이 중국이다. 그 본론부에 구체적으로 포함되는 것은 언론·사상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자치와 자결의 원칙, 인권존중 같은 것이다. 그런데 홍콩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이런 원칙들은 이미 삶의 방식, 질서, 가치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지금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동의 핵심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홍콩 시민들의 열망과 그것을 좌절시키려는 중국 중앙정부의 이해관계 사이의 충돌이다. 이 충돌은 수습될까? 어떻게?

 홍콩 시위를 촉발시킨 발단적 요인은 2017년 홍콩의 지도자(행정장관) 선출 방식에 관한 것이다. 홍콩 반환 당시 만들어진 ‘기본법’에 따르면 행정장관은 적정수의 후보 지명위원들에 의한 간선제로 선출된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새로 제안한 2017년도 선출방식에서는 후보 지명위원회가 행정장관 후보를 2~3인으로 제한해서 지명하고 그 지명된 후보들 중에서 한 사람을 보편 선거를 통해 뽑아내자는 것이다. 표면상 이는 민주적 절차 같아 보인다. 그러나 시민들이 보기에 그 방식에는 함정이 있다. 중국 정부는 그 2~3인의 후보들을 모두 친중국계 인사들로 배치하려 들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 후보들을 놓고 벌이는 보편 선거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 갈등은 한 차원에서는 홍콩의 내부 사정 같아 보일 수 있다. 시민과 정부 쪽이 상호 신뢰를 잘 구축해 나간다면 풀지 못할 것도 없을 듯한 갈등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 갈등에는 근본적인 문명충돌적 불안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홍콩의 젊은 세대는 대체로 중국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이는 그들이 반중국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외려 홍콩 사람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중국’ 그 자체에 대해서는 상당한 ‘애국적’ 정서를 갖고 있다). 가장 문제적인 대목은 홍콩이 앞으로 얼마 동안이나 중국의 포위와 압박 속에서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라는 데 대한 젊은 층의 우려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것은 1997년 7월 1일이다. 반환 13년 전인 1984년 영국과 중국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더라도 반환 시점에서 50년간은 홍콩의 ‘현 상태’를 유지하기로 합의한 바가 있다. 그 50년 시한은 2047년이면 끝난다. 아직 33년이 남았다. 그런데 그 이후는? 그 이후에도 홍콩의 민주주의는 유지될까?

 이것이, 내가 보기론, 홍콩의 민주주의 시민들의 가슴에 깊이 똬리 틀고 있는 장기적 걱정거리이며 홍콩 지식인들의 ‘긴 우울’이다. 시위대 구호들에는 그런 걱정과 우울이 배어 있다. “아이들의 미래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우리의 다음 세대를 고생시키지 않으려면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지킬 것인가?” “학생들이 항의의 선봉에 서지 않으면 누가?” 이런 걱정과 우울의 배경에는 현 행정장관 량전잉과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2년 전 중국 정부는 ‘애국교육’이라는 프로젝트를 들고 나와 홍콩의 초등학교에 친중국 교육을 풀어 먹이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 중국은 이런 식으로 지난 17년간 홍콩의 민주주의 질서를 야금야금 변질시키고 있고, 그래서 30년쯤 후면 민주주의 홍콩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 모른다고 상당수 젊은이들이 걱정한다. 그들은 중국의 ‘일국이제(一國二制)’론에서 정부의 최종 관심은 ‘일국’이지 ‘이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홍콩의 부동산 자본과 거대 본토 자본도 홍콩을 빈익빈 부익부의 악성 자본주의 나라로 만들고 있다고 그들은 비판한다.

 중국의 장래를 설계하는 사람들은 중국 자체를 ‘민주주의 중국’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 더 맞는 일이라 생각해봄 직하다. 그러면 홍콩 문제 같은 것은 자동 소멸한다. 그러나 향후 한 세대 동안에 그런 변화가 가능할까?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