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어의 조각품, 보에티의 그림…현대 미술 거장들 75점 '이혜경콜렉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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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출신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의 '블러드 미러'(90만달러), 이탈리아 화가 알리기에로 보에티의 '마파'(80만달러), 미국 팝아트 대가 웨인 티보의 '캔디스틱(7억원)'…. 이혜경(62) 동양그룹 부회장이 갖고 있다가 법원의 압류를 피해 몰래 빼돌린 그림 목록들이다. 현대 미술 거장들의 그림과 조각, 설치미술 75점이 망라돼 있어 '이혜경 콜렉션' 수준이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 이선봉)는 이 부회장을 법원의 압류를 피해 미술품과 고가구 등을 빼돌린 혐의(강제집행면탈)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일 밝혔다. 또 이 부회장을 도와 미술품 운반·보관을 도와주고 적극적으로 국내외 매각을 주선한 서미갤러리 홍송원(62) 대표를 구속기소했다. 홍 대표는 카푸어와 보에티 작품 두 점을 해외에 팔고 이 부회장에게 알리지 않고 대금 15억원을 중간에서 가로챈 혐의(횡령)가 추가됐다.

이 부회장은 동양그룹 사태로 법원의 압류 절차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7차례에 걸쳐 성북동 자택과 동양증권 사옥, 동양네트웍스 사옥, 가회동 한옥, 웨스트파인 골프장 등에서 그림, 고가구와 장신구 등 400여점과 현금 5억 9000만원을 빼돌렸다. 서미 갤러리 직원과 동양네트웍스 직원 등이 동원됐다. 검찰은 지난 4월 서미갤러리를 압수수색해 보관 중인 물품 일부를 회수했다.

이 부회장 등은 빼돌린 미술품 중 13점을 국내외에서 팔아 47억 9000만원의 현금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매각 작품으로는 미국 포토리얼리즘의 대표적 작가중 한 사람인 찰스 벨의 '검볼 No.9'(2억 5000만원), 일본 팝아티스트 야요이 쿠사마의 ‘펌킨(1995년)’ 시리즈 2점(14만 5000달러)가 있었다. 국내에 판 작품 중에는 재벌가들의 단골 보유 목록인 데미안 허스트의 '무제(1995년)' 등 2점을 3억 5000만원에 팔았다. 데미안허스트 작품은 '저축은행 게이트' 당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빼돌린 미술품 목록에도 들어있었다.

홍송원 대표는 서미갤러리 직원들을 동원해 운반 차량을 직접 섭외하고 국내외 판매처를 섭외해 주선하는 등 이 부회장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검찰은 매각된 작품 외에 압수물과 현금 등을 회수했다. 시가 각 2억원상당인 클래스 올덴버그의 담배꽁초(1975)와 솔 르윗 타워 조각품,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시가 1억원 상당 작품 1점 등이 압수됐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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