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카메라도 없이 아마존의 밤을 어떻게 담았을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93호 17면

브라질 출신으로 스페인에서 활동하는 안젤리카 다스가 자신의 작품 ‘Humanae’ 앞에 서 있다. 인류의 ‘살색’이 얼마나 다양한 지 웅변하는 작품이다.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는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9월 12일~10월 19일)의 가장 큰 특징은 그동안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중남미·아프리카·오스트레일리아·동남아시아 작가의 작품을 대거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사진에서 과연 무엇을 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요리조리 던지고 있다는 점도 돋보였다. 올해 주 전시의 주제를 ‘기원, 기억, 패러디’로 잡은 스페인 출신의 예술감독 알레한드로 카스테요테는 12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역사, 개인과 단체가 사진이라는 매개를 통해 어떻게 연결됐는지 보다 흥미롭고 색다른 시선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10월 19일까지

카스테요테의 의도는 어둑어둑한 제1 전시장부터 확실히 드러났다. 이 공간을 양분하고 있는 폭 1m 정도 되는 종이는 길이가 30m에 이르는 감광지. 페루 작가 로베르토 후아르카야가 설명을 시작했다.

“아마존 열대 우림의 모습을 본연의 모습으로 재현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적이 있었습니다. 2년간 모든 기술과 방법을 동원해 사진을 찍었지만 그 느낌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사진기 없이 사진을 찍었던 초기로 돌아가자’는 생각이 들었죠.”

아마존 구 정글과 신 정글을 연결하듯 쓰러진 30m 짜리 나무를 약간 들어올리고 그 밑에 감광지를 깔았다. 그리고 작은 플래시를 터뜨리고 달빛과 별빛도 활용해 나무의 모습을 2시간 동안 ‘찍어’ 냈다. 인화에도 아마존 강물을 사용했다. “아마존의 일부가 한국에 온 것”이라고 설명하는 이유다. 실제로 전시장에는 고사리 같은 풀, 커다란 잎사귀가 달린 나무 등 야간 촬영 사진을 곳곳에 배치한 덕분에 정글의 밤 느낌이 물씬 배어났다.

중국 보무 작가의 ‘Ferrying & Samyag-drsti ·the Other side of Lostist’(2010), mixed media, 3240 x 120 cm

쓰나미 현장에서 수습한 추억의 파편들
방을 몇 개 지나가니 바람벽 전체에 어깨를 드러낸 각국 남녀노소 144명의 모습(12명 x12명)을 액자에 붙여 놓은 코너가 눈길을 붙든다. 브라질 출신으로 스페인에서 활동하는 안젤리카 다스의 ‘Humanae’다. 인류를 단순히 ‘하얗고, 노랗고, 까만 색’만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주장을 또박또박 하는 자리다. 실제로 어느 ‘살색’ 하나 같은 색이 없다.

“사진 속 코 윗부분의 픽셀을 따서 배경색으로 썼더니 색 구분이 좀 더 명확해지죠? 작품 번호는 색깔을 구분하는 팬톤 컬러 가이드에 따른 기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서로 다른지 잘 알게 되셨을 겁니다. 이 시리즈는 2년 전 제작했는데 각국을 다니며 2000명 정도 찍었어요. 한국에서도 작업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전시장 복판에 마련된 루이스 곤살레스 팔머의 작품도 독특했다. 사람의 얼굴을 찍은 사진이 바닥에 삐딱하게 접혀있다. 가운데는 거울로 만든 원통이 놓여있다. 희한한 것은 원통으로 보면 바닥의 비뚤어진 얼굴이 제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16세기에 한창 유행하던 착시 효과 기법인데 저처럼 이런 방법을 쓰는 사람이 지금은 거의 없어요. 그림 대신 사진으로 바꾼 것이 달라진 점이랄까.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또 리얼리티는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스트 앤 파운드 프로젝트’가 펼쳐진 공간은 처음엔 뭔가 싶었다. 색바랜 타일 같은 것들이 거대한 벽을 이룬 곳. 2011년 3월 거대한 쓰나미가 일본 도호쿠 일대를 덮친 후 주변에서 발견된 사진들이었다. 물에 젖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사진들을 ‘추억 구조 프로젝트’의 자원 봉사자들이 하나하나 수집해 비닐에 넣었다. 사람들의 행복했던 추억이 담긴 흔적을 이렇게라도 살려내고 싶다는 듯. 그 짠한 마음에 ‘세월호’의 애잔함까지 겹쳐지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미소를 부르는 사회 풍자와 패러디
2층으로 올라갔다. 권총을 든 중국 공산당 소녀의 1960년대 사진과 놀이공원에서 물총을 들고 있는 가짜 카스트로가 웃고 있는 코믹한 사진이 나란히 관람객을 맞는다. 카스테요테는 “소녀 사진은 우연히 찾아낸 것인데 이 작품과 아주 잘 어울린다”며 이 전시장에서는 사회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를 즐겨보라고 권했다.

런던에서 활동 중인 스페인 작가 크리스티나 데 미델은 ‘더 파티(The Party)’ 시리즈에서 중국 마오쩌둥의 『모주석어록』을 활용했다. 어록의 영문판 문장들에서 부분 부분을 지워 새로운 문장을 만든 뒤 자신의 사진과 매치시켰다. ‘당’(黨·PARTY)이라는 제목의 글 대부분을 화이트로 지우고 ‘If there is to be revolution, there must be (삭제) party’라고 보이도록 한 설명 옆에 클럽으로 달려가는 듯한 신나는 표정의 아가씨 사진을 붙여놓는 식이다.

건물 지을 때 공사장을 가리는 가림막에 그려진 사진을 찍기로 유명한 한성필 작가는 이번엔 전국에서 만난 ‘자유의 여신상’들을 한꺼번에 모아놓았다. ‘프린스 모텔’ ‘뉴욕 파크 모텔’ ‘리베라 모텔’ 등지에서 일종의 시그너처로 활용되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 표정이 씁쓸한 미소를 짓게 했다.

‘만월(萬月): 하늘과 땅의 이야기’ 코너로 들어가자 천장에 걸린 커다란 보름달 사진 현수막들이 왠지 푸근하게 느껴졌다. “동양적 사유의 근본인 ‘마음’에서 아시아의 하늘과 땅, 인간을 바라보았다”는 것이 전시를 기획한 이일우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무(巫)의 정신을 구현해오고 있는 이갑철 작가가 보여주는 한(恨)의 정서, 이정록 작가가 보여주는 몽환적인 빛의 나무 시리즈가 눈길을 끌었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이탈리아 현대사진전’에는 여러 사진을 겹쳐 깊은 내면을 보여주는 다비데 브라만테, 빛과 그림자를 강조하는 초상 사진으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비토리아 두소니, 그리고 중첩된 이미지로 연상의 능력을 자극하는 바스코 아스콜리니 등 거장 3인의 색다른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픈 삶을 직시한 김영희·안세홍과 일본의 이토 다카시, 강간과 성폭행을 전쟁에 이용하는 콩고의 참상을 담아낸 정은진, 지금도 전쟁터를 누비고 있는 미국의 여성 종군기자 하이디 리빈의 사진을 모은 ‘전쟁 속의 여성’ 코너는 대구예술발전소로 자리를 옮겨 전시가 이어진다.

대구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대구사진비엔날레 조직위원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