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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에 강남 재건축 ‘신화’ 재연될까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목동 주민들에게 현금으로 1억원씩 나눠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주택시장 활력 회복’을 위한 정부의 9·1 부동산 대책에 대해 한 부동산 전문가가 필자에게 던진 말이다.
이번 정부 대책의 요지로 꼽히는 재건축 허용연한 10년 단축의 대표적인 수혜지역이 ‘목동’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신정동 일대에 1980년대 중·후반 지어진 아파트의 재건축 꿈이 눈 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목동은 서울시가 2002년부터 30여 곳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벌이고 있는 뉴타운 사업의 원조다. 정부는 1983년 4월 ‘목동신시가지’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안양천의 폐수로 오염되고 비만 오면 물에 잠기는 신정동·목동 일대 농경지 437만㎡를 택지개발사업 방식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목동신시가지는 언론에서 ‘뉴타운’으로 묘사됐다. 지금도 등기부등본의 공식 명칭은 ‘목동신시가지 O단지’다. 1~14단지 2만6629가구가 그때 지어졌다.

1976~81년 아파트지구(반포·압구정·잠실 등 14곳)와 개포 택지지구 등 강남 개발의 바통을 이어받은 목동은 주택시장에서 ‘세컨드 강남’으로 굳혀졌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 노무현 정부 시절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2006년 강남과 함께 집값 거품이 심한 ‘버블 세븐’(강남·서초·송파·목동·분당·용인·평촌)의 하나로 꼽혔다. 선발주자인 강남에 들어가기 부담스러운 중산층들이 몰리며 좋은 교육환경을 갖추게 됐다. 강남에 이은 ‘교육 2번지’로 자리매김했다. 이때부터 집값 상승세 확산은 ‘강남→목동→강북→수도권’이라는 공식이 생겼다.

잦은 침수지역에 ‘신시가지’ 조성

목동은 그림자를 밟을 정도로 강남 집값을 바짝 쫓아갔으나 아쉬운 게 재건축이었다. 일찌감치 계획도시로 개발돼 주택시장 선두주자로 자리 잡은 강남은 재건축을 통해 다시 태어나고 있었지만 재건축이 요원한 목동은 늙어가기만 했다. 건립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최장 40년의 강화된 서울시 기준을 적용 받아서다. 양천구청이 2010년 재건축 계획을 추진하다 중단한 것도 재건축이 시기상조여서이었다.

재건축 연한 단축 혜택을 보는 아파트는 전국적으로 수심만 가구에 이르지만 목동이 주목 받는 것은 사업성 때문이다. 재건축은 용적률(사업부지 대비 지상 건축연면적 비율)과 주변 시세의 함수다.

기존 용적률과 재건축 용적률의 차이가 클수록, 주변 시세가 비쌀수록 재건축을 통한 개발이익이 크다. 큰 폭의 용적률 상승과 비싼 주변 시세가 재건축 사업 ‘황금알’을 낳는다.

재건축은 사업 후 용적률이 높아져 늘어나는 연면적 가운데 주민 몫을 제외한 나머지 집을 일반에 팔아(일반분양) 벌어들인 분양수입을 사업비에 보탤 수 있다. 재건축 용적률은 지역에 따라 대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기존 아파트의 용적률이 낮을수록 유리해진다. 주변 시세는 일반분양분의 분양가를 좌우한다.

목동은 대부분 3종 주거지역이어서 법적 상한인 300%까지 용적률을 높일 수 있다. 목동신시가지 1~14단지의 평균 용적률이 132%다. 재건축을 통해 지금 집의 두 배 이상으로 넓힐 수 있다. 이들 아파트의 현 시세가 3.3㎡당 2200만~2300만원 수준이다. 재건축 연한 단축 수혜지역 중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

황금알 낳는 거위 기대는 무리

2009년 양천구청의 재건축 사업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추가분담금 없이 지금보다 집 크기를 10% 이상 키울 수 있는 것으로 예상됐다. 일반분양수입이 워낙 많기 때문에 별다른 돈 걱정 없이 지금보다 더 넓은 새 집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마술’은 강남권에서 선보이며 재건축 열풍을 낳았다. 재건축을 끝낸 송파구 잠실과 서초구 반포 주공 아파트들의 경우 일부 주민은 돈을 돌려받으면서 널찍한 새 아파트를 배정 받았다. 잠실에선 기존보다 2배 넘는 새 집을 무상으로 배정받고 환급금까지 챙겼다. 공급면적 기준으로 기존 50㎡형이 84㎡형을 선택하면 1억9000만원, 109㎡형의 경우 3000만원 정도였다. 기존 아파트 주인인 조합원 분양가가 일반분양가보다 20% 저렴하게 책정돼 일반분양가와의 시세차익도 덤으로 주어졌다. 조합원 분양가가 3.3㎡당 1300만원,일반분양가는 1800만원 선이었다. 5층 짜리의 용적률 100% 정도이던 잠실 주공 아파트들이 재건축 후 용적률의 35층 고층 아파트로 올라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강남에서 ‘대박’을 터뜨린 재건축이 목동에도 금덩어리를 안겨줄까. 목동 사업여건은 잘 갖춰져 있다. 그렇다고 재건축이 쉽게 이뤄지는 건 아니다. 이미 재건축 연한을 충족했거나 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을 확정 지은 아파트들 가운데서도 사업이 지지부지한 곳이 적지 않다. 재건축 연한 20년 적용을 받아 이미 13년 전인 2001년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었던 아파트 중 대치동 은마, 압구정동 현대 등은 입지여건에서 내로라하는데도 아직 재건축 본궤도 오르지 못했다.

황금알이 아니라 그냥 알이라도 낳으려면 정부 정책, 자치단체, 집값 동향, 주민 의지 등 수많은 복잡한 변수들이 잘 맞아야 한다.
목동에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품종의 거위가 이제 막 태어난 데 불과하다. 거위가 제대로 자랄지, 황금알을 낳을지 아니면 일반 알을 낳을지 까마득하다.

인류사 역작인 『총,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박사가 작물화·가축화의 성공요인을 설명하면서 인용한 성경 구절은 재건축에서도 새겨볼 만하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마태복음 22장 14절)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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