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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선택은 괴로워" … 기회 과잉에 방황하는 '메이비 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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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결정장애 세대
올리버 예게스 지음
강희진 옮김, 미래의창
272쪽, 1만2000원

‘우리’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지만 사회정의는 실현돼야 한다고 믿는다.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건 싫지만 ‘보이지 않는 손’을 무한정 믿지도 않는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덴마크 감독 라스 폰 트리에의 기괴한 영화도 마음에 든다.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이를 가리킨다. 『결정장애 세대』는 너나 할 것 없이 강한 개성을 지녔지만, 삶의 방향을 상실한 이 젊은 세대를 ‘메이비 세대(Maybe generation)’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린다.

 이 세대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풍족한 환경을 누린 덕에 자유롭고 자기중심적이다. 그 어떤 세대보다 자신의 몸을 가꾸는 데 열광하고 SNS로 사생활을 낱낱이 공유한다.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물으면서도 짜릿한 즐거움을 꿈꾸는 몽상가들이다.

 또 ‘우리’는 모든 게 가능하다고 들어왔기에 낙관적이지만 한편으론 아무것도 되지 않을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연약한 존재다. 무엇보다, 너무나 많은 기회가 있기에(혹은 있다고 믿기에) 갈피를 잃어버린 측은한 세대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이 땅의 젊은이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진단·분석·위로·호통 등이 책이든 신문 칼럼이든 무수히 인쇄돼 왔다. 한때 이러한 윗세대의 말에 순응·반성·감사하는 태도를 보이던 젊은이들은 지금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세대간 소통은 교착 상태다. 이런 책이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결정장애 세대』는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

 우선 글쓴이가 바로 이 세대의 일원이다. 같은 문화를 즐기고 비슷한 걱정거리를 공유하며 세대의 특징을 포착했고 나름의 시각으로 써내려 갔다. 이 때문에 이 책의 도드라진 미덕은 바로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젊은 독자라면 ‘나만 이렇지 않구나’하는 공감과 안도감을 얻을 것이다. 그보다 윗세대라면 도무지 알 길 없던 이 땅의 청춘이 어떤 녀석들인지, 도대체 왜 그리 사는지를 짐작하게 될 것이다. 책엔 이 세대의 아픔을 이겨내야 할 것으로 보고 청춘이니까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 당연하다거나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극복하라는 식의 뻔한 결론은 없다. 주관적이지만 촘촘히 세대를 기록한 관찰기 성격의 에세이다.

 염두에 둬야 할 한 가지. 저자는 독일의 저널리스트다. 책에 나오는 사례와 인물은 독일이 배경이다. 그러니 우리네 현실과 완전히 맞아떨어지진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젊은이들의 현실과 생각은 여기나 거기나 사뭇 비슷하다. 부모의 집에 얹혀사는 이들이 수두룩하고 정치에 무관심하며 사회적 성공보다 개인의 행복에 매달린다. 그네들의 현실을 보며 팍팍하게 사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나름의 한줄기 공감과 위로를 스스로 찾을 수 있기를….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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