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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첫 AG' 장미란 "고생한 후배들 마음껏 응원해야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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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역도 여제' 장미란(31·장미란재단 이사장)은 지금 행복하다. 차갑고 무거운 바벨을 홀로 들어올리며 국제 무대에서 싸워왔던 그는 인천 아시안게임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밖에서 지켜본다.

장미란과 아시안게임의 인연은 깊다. 자신의 이름을 처음 알린 대회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이다. 당시 19살이던 그는 역도 여자 +75㎏급에서 은메달을 땄다. 2006년 도하 대회에서도 은메달을 따냈던 장미란은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삼세번 도전 끝에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2010년 1월 교통사고로 허리·목 등에 부상 후유증을 안고도 '역도 강국' 중국의 벽을 넘었다. 장미란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그랜드슬램(아시안게임·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아선수권 석권)을 달성했다.

은퇴 후 처음 맞는 종합 대회인 인천 아시안게임이 장미란으로서는 남다르게 느껴진다. 지난 15일 경기도 고양 장미란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모든 경기를 볼 수 있어 기쁘다. 내 경기 걱정 없이 편안하게 다른 종목 선수들 경기도 지켜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장미란은 "매 대회 역도 경기 일정상 내 체급이 맨 마지막이었다. 내 경기에 집중해야 했던 만큼 다른 종목뿐 아니라 역도조차 제대로 경기를 본 기억이 없다. 의무실에 가서 소식을 듣거나 신문 기사로 접한 게 전부였다. 숙소에 있던 TV도 안 봤다"고 회상했다.

"이젠 역도만 해도 경량급부터 중량급까지 현장에서 다 지켜볼 수 있다. 내가 은퇴하고 세계 역도 흐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했다. 마음이 들떠 있다"는 장미란은 그만큼 인천 아시안게임을 편하게 즐기고 싶어 했다. 은퇴 후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하고 있는 장미란은 스포츠 꿈나무, 일반 팬과 함께 역도 뿐 아니라 펜싱·배구 경기도 관전하며 다른 종목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을 계획이다.

장미란은 최근에도 역도 대표팀이 훈련하는 태릉선수촌 개선관을 찾아 후배들을 격려했다. 장미란은 "다들 정말 고생했다. 열심히 한 만큼 결과가 잘 나오길 바라면서 뜨겁게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장미란이 자리를 비운 여자 +75㎏급에는 이희솔(25·울산광역시청)·손영희(22·부산역도연맹)가 출전한다. "어렸을 때부터 봐 왔던 후배들이다. 아직도 내겐 둘 다 귀여운 동생들"이라고 한 장미란은 "다들 잠재력이 충분하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역량을 시합 때 충분히 발휘했으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장미란과 함께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역도 금메달을 땄던 사재혁(29·제주도청)은 원래 체급(77㎏)보다 한 단계 높은 85㎏급에 출전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오른 팔꿈치가 탈구되는 부상을 당해 은퇴 위기까지 몰렸던 사재혁은 피나는 재활 끝에 아시안게임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나온다.

함께 선수 생활을 하며 어려웠던 순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장미란은 사재혁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보냈다. "재혁이는 힘이 넘쳐 보인다. 선수 생활하면서 볼 때마다 부러웠다"던 장미란은 "런던에서 재혁이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다. 그래도 그 일을 계기로 재혁이가 많이 성숙해졌다. 배우고 얻은 게 많았을 것"이라면서 "체급을 올려도 재혁이는 문제없이 자신의 경기력을 보여줄 것이다. 그게 재혁이가 그동안 보여왔던 모습이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을 앞둔 후배들을 향해 장미란이 강조한 건 하나였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냉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든 메달 색을 생각하고 얽매이면 복잡해진다. 자신의 장점도 발휘하지 못한다"면서 "자신의 기록을 깬다는 생각으로 경기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원하는 결과도 따라온다"고 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호령했던 '역도 여제'의 노하우가 묻어났다.

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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