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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금요일] '매출 4000조원' 중국 국유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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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세계 무대에서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이 됐다. 기업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미 경제전문지 포춘이 7월 발표한 ‘2014년 세계 500대 기업’ 명단에 중국 기업 100개가 이름을 올렸다. 10위권 내에 포함된 기업도 3개나 된다. 중국석화(시노펙)와 중국석유(페트로차이나)는 미국 월마트(1위)와 네덜란드의 로열더치셸(2위)에 이어 3·4위를, 중국국가전력망공사는 7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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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그동안 세계 대표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30개 글로벌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적극적인 행보를 펼쳤다. 그 수혜를 받은 대표주자가 바로 ‘중국 경제의 척추’라 불리는 중양치예(中央企業·양치)다. 양치는 중국 중앙정부인 국무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국자위·SASAC)가 관리하는 국유기업이다. 에너지·통신·항공·운송·전력 등 핵심 전략산업을 사실상 독점한다. 식량안보 및 방위와 관련한 기업은 당연히 포함된다. 심지어 소금·금·실크·면 생산 기업과 여행사, 공예품 관련 기업도 양치의 목록에 들어가 있다. 2003년 설립된 국자위는 ‘세계 최대의 지주회사’인 셈이다.

 ‘중국 주식회사(China Inc)’의 핵심 기업인 양치는 8월 말 현재 총 113개다. 2002년 190개에 달했던 기업을 경쟁력 강화를 위해 흡수와 통합 등의 과정을 거치며 줄인 결과다. 이 중 시노펙과 페트로차이나, 중국국가전력망공사 등 47개가 올해 포춘의 세계 500대 기업에 포함됐다. 중국 내 위상도 압도적이다. 중국 재정부가 공개한 ‘2013년 전국 국유기업 재무결산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13개 양치의 총 매출액은 24조2000억 위안(약 4000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기준으로 15만5000여 개에 이르는 중국 국유기업 총 매출(47조1000억 위안)의 절반을 양치가 거뒀다. 지난해 국유기업 전체의 세금 납부액(3조8000억 위안)의 절반(1조9000억 위안)을 양치가 부담했다.

 양치의 역사는 중국 건국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양치를 포함한 국유기업(개혁 전에는 국영기업)은 중국의 기둥이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국가 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건국 초기 중국은 국가의 기반이 거의 무너진 상태였다. 미국의 원조를 받은 서유럽 등과 달리 외국의 원조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영기업은 사회기반시설의 건설과 운영부터 생활에 필요한 물자 공급까지 맡았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개혁은 피할 수 없었다. 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 정책을 천명한 뒤 계획 경제에서 자본주의 경제로의 체질 개선을 위한 국영기업 개혁에 착수한다. 경영의 자주권을 확대하면서 국영기업이 국가에 상납하던 이윤을 세금으로 납부케 하고, 국가가 국영기업에 공급해주던 자금을 은행 등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로 전환했다. ‘국유기업 개혁 시즌 1’이다.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한 ‘국유기업 개혁 시즌 2’는 94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중국의 국유기업은 30만 개였다. 중국 정부는 중소형 국유기업을 합병·매각·임대경영·파산 같은 방식으로 민영화했다. 대신 국가 기간산업이나 규모가 크고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에 속한 기업은 민영화하지 않았다. 조대방소(큰 것은 잡고 작은 것은 놓는다) 전략이다.

 두 차례의 개혁을 거치며 중국 국유기업은 중국 경제의 강력한 엔진이 돼 성장을 이끌었다. 양치는 중국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의 첨병으로 중국의 저우추취(走出去·해외 진출) 전략의 선봉에 섰다. 해외 시장 개척과 자원 확보를 위해 ‘국가-국유기업-국부펀드’로 이뤄진 삼각편대의 행동대장이었다. 국가가 목표물을 정하면 기업(양치)이 사냥했다. 돈줄은 막대한 외환보유액과 국부펀드다.

 하지만 막대한 영향력을 갖게 된 국유기업은 중국 공산당에 또 다른 고민거리가 됐다. 수출에서 내수로 경제 성장의 동력을 전환하려는 중국에 국유기업은 부담이다. 국유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국진민퇴(國進民退·국유기업이 잘나가고 민간기업이 후퇴한다) 현상이 벌어져서다. 크레디트스위스 타오둥(陶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내수를 활성화하려면 민간기업이 투자를 해야 하는데 국유기업이 시장에 버티고 있으니 민간기업은 투자를 기피하는 ‘자본 파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치 등이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 된 것도 부담스럽다. 시진핑(習近平) 지도부가 부패척결에 나서며 페트로차이나를 근거지로 했던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국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석유방(石油幇·석유업계 기반 파벌) 인사들이 사법처리되거나 낙마했다. 리펑(李鵬) 전 총리 일가와 측근인 전력방(電力幇·전력업계 기반 파벌)을 겨냥한 사정 작업도 이뤄졌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중국은 ‘국유기업 개혁 시즌 3’라는 칼을 다시 빼들었다. 지난해 중국공산당 18기 3중 전회에서 국유기업 개혁 방침을 천명한 뒤 올 들어 개혁의 속도가 빨라졌다. 국자위는 7월 15일 6개 양치를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국유자산관리공사(SAMCs)와 이사회 제도 설립, 혼합소유제(국유기업에 민간자본 도입) 등을 내용으로 하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시노펙 이사회도 2월 민간자본의 지분 보유 비율을 최대 30%까지 늘리는 혼합소유제 방안을 통과시켰다. 중국 공산당은 국유기업 경영인을 외부에서 충원하고 월급을 삭감하는 개혁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국유기업 개혁이 ‘눈 가리고 아웅’ 식에 그칠 우려도 제기된다. 개혁 시범 대상 기업에 에너지·통신 등 핵심 양치는 빠졌다. 게다가 민간에 매각한 시노펙의 지분(30%) 상당 부분을 국유기업이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치를 쉽게 놓을 수 없는 복잡한 속내가 드러난 것이다.

 비유통주 문제도 있다. 민영화 과정에서 국가가 보유했던 지분(비유통주)을 민간에 넘기면서 주식 시장에 물량이 쏟아져 나올 경우 주가가 폭락하는 등의 홍역도 치를 수 있어서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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