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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모란봉악단, 북한 체제 반영한 '음악정치' 주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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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완(40)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요즘 평양 모란봉악단에 푹 빠졌다. 공연 레퍼토리를 줄줄 꿴다. 20여 명에 이르는 가수·연주자의 프로필도 통달했다. 여가수의 화장법과 헤어스타일은 물론 치마길이와 하이힐의 굽 높이까지도 관심사다. 창단 이후 최근까지 20차례 공연을 빠짐없이 수십 차례 되돌려본 결과다. 북한 선전가요를 흥얼거리는 경지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강 교수는 북한 문화·예술 전문가다. 그는 “김정은 권력의 아이콘인 모란봉악단은 현 북한 체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내비게이션”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공연에선 ‘인민의 환희’라는 곡에 ‘우리는 누구도 두렵지않아. 원수님(김정은) 계시기에…’라는 랩 버전이 등장하는 등 놀랄만한 변화가 감지됐다는 소식도 전했다. 강 교수는 “평양판 신데렐라로 불린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의 데뷔무대가 모란봉악단이란 점은 이 악단이 앞으로 김정은 권력 안정을 위한 ‘음악정치’의 주역이 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 레퍼토리와 가수들의 패션 변화도 주목해야 한다는 게 강 교수의 지론이다. 그는 “첫 공연 땐 미국 문화의 상징인 미키마우스가 등장하고, 여성 단원들의 선정적 옷차림이 화제가 됐다”며 “서방세계에 ‘열린 지도자’ 김정은의 이미지를 띄우려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뒤 다른 변화가 감지됐다고 한다. 강 교수는 “그해 12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처형 직후 모란봉 단원들은 모두 쇼트커트를 했고, 복장도 군복 형태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강 교수가 모란봉악단 연구에 심취하게 된 건 관계당국으로부터 첫 공연 분석 프로젝트를 의뢰받은 게 계기가 됐다. 이후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껴 새 공연이 나올 때마다 조선중앙TV의 영상을 구해 연구에 매달렸다. 지난 추석연휴에도 북·중 국경지역을 돌아다니며 공연CD를 구해왔다. 강 교수는 연구결과를 모은 책 『모란봉악단 김정은을 말하다』(선인)를 이달 초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지난해 5월 김정은이 지시한 모란봉악단과 은하수악단의 합동공연이 무산된 점을 지적하며 “은하수악단이 모종의 불미스런 사태로 변고를 겪었던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강 교수는 통일연구원 재직시절 북한 내 한류(한국 영화·드라마 열풍) 연구로 두각을 나타냈다. 강 교수와 부인 박정란(42·카자흐스탄 유라시아국립대 교수) 박사는 수차례 공동연구를 수행한 차세대 북한학 연구자 커플로 꼽힌다.

글·사진=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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