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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다" 요양병원 절반만 스프링클러 설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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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치매 노인 환자 등 21명이 숨진 전남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현장. 실내는 검게 그을렸고 타다 남은 침대 잔해는 흉물이 됐다. [중앙포토]

12일 찾아간 전남 장성군의 효사랑요양병원. 5월28일 21명이 숨진 참사 현장인 별관 병동은 현재 폐쇄돼 을씨년스런 분위기였다. 불이 난 2층 맨 오른쪽 병실은 뜯겨진 창문 사이로 검게 탄 내부가 당시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장성군보건소 반일원(59) 소장은 “당직 근무 의사와 간호사 인력을 늘렸으나, 400명이던 입원 환자는 약 100명 줄었다”고 말했다.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야간 당직 기준(입원환자 200명 초과당 의사 1명)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후진국형 안전 사고의 대가는 컸다. 전남경찰청은 지난 1일 효사랑요양병원을 운영 중인 의료법인이 건강보험을 부당 청구한 사실을 적발해 전남도에 개설허가 취소와 폐쇄조치를 통보했다. 전남도 이순석(56) 공공보건담당은 “5일부터 행정법과 의료법에 따라 폐쇄를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공단은 이 법인이 운영 중인 3개 병원을 대상으로 618억원 환수하기로 했다. 같은 날 서울 강서구의 한 요양병원. 2층짜리 병원 건물 1층엔 식당·인쇄소가 입주해 있다. 식당에선 숯불을 이용했고, 인쇄소엔 종이 더미가 수북하게 쌓여있어 야간이나 휴일에 화재 위험이 커보였다. 그러나 이 병원 내부에는 스프링클러(살수 장치)가 없다.

 병원 관계자는 “오래된 건물이라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다. 설치 비용만 수억원이 들기 때문에 정부에서 지원해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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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16일로 5개월째다. 또 장성 요양병원 화재 참사가 난지도 100일이 지났다. 그러나 ‘재난 약자’인 노인을 위한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은 여전히 안전에 취약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모든 요양병원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인력기준을 준수하도록 지도하는 내용 등을 담은 안전대책을 내놨지만 제대로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스프링클러 설치는 안전 사고 예방에 직결되기 때문에 가장 시급한 과제다. 현재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요양병원은 677곳으로 전체의 약 절반(53.5%) 뿐이다. 당초 400㎡ 이상에만 설치 의무가 있었으나 7월부터 소방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모든 요양병원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다. 그러나 시행령 개정 이전에 개설된 병원은 적용대상에서 빠졌다. 논란이 일자 복지부가 소급 적용할 수 있는 법령 개정을 준비 중이다.

 모든 병원에 설치하려면 결국 비용이 문제다. 때문에 평균 2~3억원인 설치비용을 놓고 복지부와 요양병원협회가 줄다리기하고 있다. 복지부 곽순헌 의료기관정책과장은 “비용 절반을 국고·지방비에서 직접 지원하는 방안과 건강보험 수가에 녹여 간접 지원하는 두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간접 지원 방안은 안전이 부실한 병원에는 적게 주고, 대비를 잘 하는 곳은 넉넉하게 지원해 자발적으로 스프링클러 설치를 유도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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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양병원협회 우봉식 홍보이사는 “2010년 포항 노인 요양원 화재 때처럼 당연히 정부가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북부병원 권용진 원장은 “요양시설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요양병원에 있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역할 구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장성=권철암 기자,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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