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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청춘 색다른 동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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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민달팽이 유니온’이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마련한 임대주택에서 입주자 함금실, 김해랑, 이혜빈, 장수정(왼쪽부터)씨가 함께 쓸 주방용품들을 들고 있다. [김상선 기자]

사회초년생 함금실(27·여)씨는 2012년부터 최근까지 서울 동작구의 A고시원에서 살았다. 부엌과 화장실 사이에 끼인 방에서였다. 잠들만 하면 설거지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샤워기 물 소리,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등이 방문을 흔들곤 했다. 부엌이 조용해지면 화장실에서, 화장실이 조용해지면 부엌에서 소음이 들렸다. ‘자정 이후엔 부엌 사용을 자제해주세요’란 메모를 붙였지만 이틀 만에 없어졌다. 원룸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도 보증금으로 낼 돈이 없어 막막했다.

 대학생 김해랑(24·여) 씨는 오후 8시쯤이면 초조해졌다. 집으로 가는 충남 아산행 기차가 9시면 끊겨서다. 2년전부터 집에서 서울의 학교까지 왕복 5~6시간을 통학해 왔다. 그는 오전 9시 수업이 있는 날에는 7시에 기차를 타야했다. 한 달 30만원의 교통비가 부담돼 KTX에서 무궁화호로 바꾼 뒤로는 늘 돗자리를 들고 다녀야 했다. 자리가 없어 기차 바닥에 앉아서 오는 날이 많았다.

 두 사람의 주거 고민은 현재 말끔히 해결됐다. 함씨·김씨 등 5명이 모여 지난달 9일부터 공동생활을 시작하면서다. 민달팽이유니온의 공공주택임대사업 덕분이었다. 민달팽이 유니온은 2011년 연세대 총학생회 집행부가 중심이 돼 설립, 청년 주거빈곤 해결을 도모하는 학생단체다. 민달팽이는 달팽이집이 없는 종(種)을 일컫는다. 이 단체는 조합원 110여명이 낸 조합비로 서울 남가좌동의 빌라 2채를 10년간 장기 임대해 온라인과 SNS등으로 공동생활 신청을 받았다. 최종 선발된 5명의 여성 신청자들은 임대주택을 재임대 받았다. 연립주택 201호와 202호에 각각 2명, 3명이 산다. 이들이 내야할 방세는 2인실 기준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20만원이다. 장기 임대하는 대신 임대료를 낮췄기에 가능한 가격이다. 6개월 단위로 재계약을 하지만 한번 입주하면 원하는 때까지 살 수 있다. 민달팽이 유니온 권지웅 대표는 “청년주거문제의 최대 걸림돌은 어마어마한 보증금과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이 둘만큼은 걱정없게 해 주자는 게 이 사업의 취지”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완공을 앞둔 인근 연립주택도 임대할 예정이다. 신청한다고 아무나 입주를 받아주진 않는다. 권 대표는 “청년 주거문제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하고 사전 모임에서 같이 살 사람들끼리 합이 잘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함씨 등도 입주를 앞둔 지난달 7일 공동 물품을 배정하고 공동 규칙들을 정했다. 이 회의 결과에 따라 함씨는 선풍기를, 김씨는 밥솥과 커피머신을 챙겨왔다. 후라이팬·냄비 등 주방용품은 새로 구매하기로 했다. 샴푸·린스 등 목욕용품은 공금으로 구매해 같이 쓰기로 결정했다. 수건을 같이 쓸지 여부와 세탁기 사용규칙도 정했다. 함씨는 “전혀 몰랐던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니 안 맞는 부분도 있겠지만 공동규칙을 만들고 서로 배려하면 재밌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은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청년층이 주거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국가적 차원의 중장기적 경제 성장 동력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이서준 기자 고한솔(서강대 영어영문학과) 인턴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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