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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게 하라, 일본처럼 안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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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데일 조르겐슨 교수는 “고용을 늘리고 인구 감소에 대처하기 위해선 투자 증대가 필수적”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해외가 아니라 한국에 투자할 수 있게끔 세금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보스턴=이상렬 특파원]

2008년 9월 15일 미국 4대 투자은행 인 리먼브러더스가 6130억 달러의 빚더미를 안고 쓰러졌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 파산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세계 경제는 1920년대 대공황에 버금가는 ‘대침체(Great recession)’에 빠졌다. 그 후 6년, 미국 경기는 회복됐고 달러 무한 공급 프로그램(양적완화)도 10월 말 종료된다. 동시에 중산층 감소와 빈부격차 심화는 또 다른 난제가 됐다. 외환위기 후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경제 분석의 석학인 하버드대 데일 조르겐슨(81) 교수를 만나 금융위기 이후와 한국 경제에 대한 제언을 들었다.

 - 빈부격차가 심해져 오바마 정부의 지지도가 추락할 정도다.

 “빈부격차 확대는 장기 트렌드다. 40여 년간 안정적이었던 노동수익에 대한 분배가 최근 줄어들고, 자본수익의 몫은 커졌다. 하지만 중산층 붕괴라는 것은 과장이다. 중산층이 일자리 압박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제조업에서 일자리가 충분히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정보기술(IT)이 고용의 중심 특징이 되는 경제로 이행하고 있는 측면이 크다.”

 - 그런 현상은 언제부터인가.

 “닷컴 위기가 찾아온 2000년 이후다. 닷컴 붕괴 뒤 경제는 제자리를 찾았지만, ‘고용 없는 성장’이 이어졌다. 서서히 진행되다 금융위기 이후 흐름이 빨라지면서 빈부격차가 표면화된 것이다.”

 - 한국도 양극화 문제에 직면했다. 해법은 없나.

 “단기적인 묘책은 없다. 장기적으로는 교육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높은 교육적 성과를 봤다. 다른 방법은 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투자가 계속 증가하면 고용에 대한 수요도 높아질 것이다. 한국에는 아직 자본투자가 이뤄질 부분이 많다. 투자가 미래 성장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조르겐슨 교수는 노동력 감소라는 인구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투자 증대는 필수라고 말했다.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한국에 투자할 수 있게끔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자본에 대한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통해 투자를 자극하고 싶어하지만, 효과를 볼 것 같지는 않다. 한국에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회사가 많다. 가장 효과적으로 투자하고, 생산성 있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건 바로 한국 기업들이다. 이들 한국 기업들이 해외가 아니라 한국에 투자할 수 있게 장려해야 한다. 그러자면 세금정책이 좋은 방법이다.”

 - 대중 정서상 쉽지 않은 일이다.

 “예를 하나 들겠다. 일본이 1980년대 비슷한 상황이었다. 일본 기업이 세계 최고라는 낙관론이 많았다. 일본은 자국 기업에 매기는 세율을 계속 높게 유지했다. 그러자 일본 기업들이 활동 무대를 해외로 옮기면서 해외에 많은 투자를 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일본이 중국, 미국, 한국 등과 비교해 경제적 성과가 뒤처지게 된 것이다. 일본같이 되지 마라. 한국이 일본과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다.”

 조르겐슨 교수는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에 대한 한국 경제의 대처법도 제시했다. 그의 제안은 ‘시장과의 소통’이었다.

 - Fed의 금리 인상이 큰 혼란을 가져오지 않을까.

 “사람들의 기대를 잘 관리하는 것이 관건이다. Fed는 금리 인상의 이유와 새로운 정책, 앞으로 벌어질 일을 사전에 잘 설명해야 한다. 재닛 옐런 의장은 타고난 소통가(very gifted communicator)다. 게다가 부의장인 스탠리 피셔 또한 훌륭한 소통가다. Fed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은.

 “Fed가 (통화정책 정상화를) 성공적으로 이행한다면 한국 정책당국의 고민은 줄어들 것이다. 한국은행은 Fed의 정책에 대응해야 한다. Fed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한은은 어떻게 할지, 정책이 뭔지 설명해야 한다. 적절한 소통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큰 혼란이 올 수 있다.”

 조르겐슨 교수의 또 다른 제언은 거시건전성 감독체계가 한층 명확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등을 거론하자, 그는 “만일 Fed의 정책 변화로 큰 쇼크가 생겼을 때 누가 경제 시스템의 안정에 대해 책임질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위기가 왔을 때 전반적인 경제 안정에 대한 책임을 분명하게 지는 거시건전성 감독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르겐슨 교수는 현 금융시장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버블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버블은 자기강화(self-reinforcing) 메커니즘이 있어야 성립되는데, 현재는 그런 것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벌어졌던 부동산 가격 상승→부적격자에 대한 대출 확대→가격 상승 같은 연쇄 현상이 없다는 것이다.

 - 금융위기의 교훈은.

 “자본주의 경제는 기계처럼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원을 켜고 그냥 놔두면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쇼크가 발생하고, 기술이 발전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20년 넘게 ‘대안정기(Great Moderation)’를 겪으면서 시장이 알아서 움직이도록 놔두자는 얘기가 많았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자본주의 경제는 끊임없는 관리를 필요로 한다.”

보스턴=이상렬 특파원

◆데일 조르겐슨=경제학과 통계학을 접목시킨 경제분석의 대가. 신경제 연구의 지평을 넓힌 석학으로, 미국 경제정책의 설계와 조언에 깊이 관여했다. 미국경제학회장과 세계계량경제학회장을 지냈고, 미국 과학원과 학술원 회원이다. 40세 미만의 뛰어난 경제학자에게 주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1971년 받았다. 현재 하버드대에서 대학을 대표하는 유니버시티 교수(university professor)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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