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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신궁에서 풀린 의문, 생긴 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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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도쿄 총국장

‘08:05’

 오늘도 어김이 없다. 출근길 도쿄 긴자(銀座)역 지하철 도착 시간이다. 지하철 플랫폼에 설치된 모니터의 ‘도착 예정 시각 08:05, 현재 시각 08:05’이란 표시를 보면서 매일 똑같은 생각을 한다. “어떻게 이렇게 매일 1분도 틀리지 않고 정확할 수 있을까. 대~단한 일본이야.” (물론 지진 등 천재지변이나 자살 사고 발생 등의 경우는 예외다.)

 오랜 세월 품어온 그 의문이 최근 풀렸다. 일본인의 마음의 고향이라는 ‘이세(伊勢)신궁’에서다.

 도쿄에서 약 310㎞ 거리의 미에(三重)현 이세시에 위치한 이세신궁.

 흔히 일본에는 ‘모래의 수’만큼 신이 있다고 한다. 많게는 800만. 지진·태풍 등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라 ‘모셔야’ 할 신들이 많다. 그 으뜸이 태양이며, 그걸 모시고 있는 게 이세신궁이다. ‘황실’의 신사이자 국가 제일의 종묘다. 그래서 이세에는 최고급 이세신궁용 논과 염전이 따로 있을 정도다. ‘신궁신전(神宮神田)’이란 이름의 논과 밭에서 쌀 품종만 13종, 야채 종류만 70종을 재배하는 현장을 보고 경악했다.

 이세신궁이 생긴 건 약 150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1400년 가까이 단 한 명의 일왕도 이곳을 참배하지 않았다. “참배를 했는데 그 이후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일왕으로서의 체면이 깎이기 때문”(고가쿠칸대 오카다 노보루 교수) 이었다 한다.

 그 고정관념을 깬 게 메이지(明治·1868~1912) 일왕.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황실에서 일왕 특별열차의 이세신궁 행에 세 가지 조건을 내건 것이다. 다른 열차가 일왕 열차를 추월하거나, 나란히 달리거나, 입체 선로 구간에서 일왕 열차 위 선로를 지나선 안 된다는 것. 지금이야 신칸센, 특급열차를 갈아타면 3시간 거리지만 당시는 10시간 이상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이세시 관광협회 니시무라 준이치(西村純一) 전무는 “긴 동선을 움직이는 동안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됐기 때문에 피 말리는 사전 점검과 훈련이 이뤄졌고 그것이 오늘날 분 단위의 촘촘한 열차·지하철 시간표 작성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오늘날 일본인의 ‘칼 같은’ 시간관념은 결과적으로 메이지 일왕 덕분이었던 게다.

 반면 메이지 일왕의 뜻이 제대로 퍼지지 못한 것도 있다. 그는 처음으로 이세신궁을 찾으면서 “이제 일본은 세계를 봐야 한다. 일본만 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다. 이후 일왕은 이세신궁에서 세 가지만 기원하게끔 규정돼 있다. ▶세계평화 ▶식량 풍족 ▶자손 번영이다. 가히 지구적 관점이다.

 위안부 강제연행 관련 일부 과거 보도가 오보됐다며 위안부 전체가 부정된 듯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요즘 일본 정치지도자나 언론의 지극히 협소한 관점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왜 이런 엄청난 간극이 생겼을까. 이세신궁에서 하나의 의문이 풀리자마자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기고 말았다. 어딜 가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을까.

김현기 도쿄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