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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달라도 … 8개 고교 동문 300명의 화음·열정은 푸르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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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 7월 25일 오후 서울 동작문화복지센터에서 8개 고교 동문합창단이 모여 연습을 하고 있다. 나이·직업·출신학교 등이 다 다르지만 똑같은 악보를 보면서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이 닮았다. 이들을 비롯한 전국 13개 고교 동문합창단은 참여 학교 수를 늘려 공연을 이어갈 계획이다. [장련성 인턴기자]

무대를 가렸던 자주색 커튼이 올라갔다. 주변에서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빈틈없이 무대를 채운 300여 명의 신사들이 나타났다. 나이도, 하는 일도 제각각이지만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음악을 사랑한다는 점은 다들 똑같다. 첫 곡 ‘아름다운 내 나라 내 겨레(자체 편곡)’로 이들의 웅장한 합창이 시작됐다. “♪저기 산이 춤춘다 저기 강이 달린다 저기 하늘 숨 쉰다 저기 꿈이 흐른다♬” 어느새 다들 까까머리 학창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2014 대한민국 고교 동문 합창제’의 풍경이다.

 이날 무대에 오른 고등학교 동문합창단은 모두 8곳이다. 경남·경성·대전·동성·배재·부산·서울·양정고(가나다 순)가 참여했다. 지난해 11월 경기·경남·부산·서울고 동문합창단 연합공연 때보다 규모가 배로 늘었다.

이날 무대에 서지 않았지만 대원외고·대일외고·서울사대부고·휘문고까지 총 13개 고교 동문합창단이 동참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렇게 대규모 남성 합창단이 꾸려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4개 고교의 공연이 끝나자 부산중·고 재경 동문합창단 ‘아스라이’의 안희동(56) 단장은 전국 각지 동문합창단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남성들이 가진 에너지를 모아 합창을 한다면 사회 화합에 도움되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 각 학교에서 동아리 형태로 합창단 명맥을 이어왔거나 졸업생 위주로 합창단을 꾸려왔던 곳들이 합류했다. 노래를 부르면서 우의를 다지는 게 더 편한 사람들이었다.

 경성고 ‘경성에쿠스콘서트콰이어’ 안태상(51)씨는 “보통 동문회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기를 기대하면서 나가지 않나. 우리는 노래만 하니깐 순수하게 만날 수 있고 그런 감성을 통해 소외된 곳을 찾아 봉사도 다니게 된다. 노래 부르는 사람들은 다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합창제에 출전한 학교 대부분이 정기적으로 병원·복지관 등으로 위문 공연을 다니고 있다.

 물론 선·후배 간 우애도 어느 동문회 못지 않게 돈독하다. 부산고 출신 황우상(67)씨는 “다들 부산 출신이니 말도 편하게 할 수 있고 이 나이에 노래까지 부를 수 있으니 더 좋다”고 말했다. 애교심도 부쩍 커진다. 경남중·고 동문합창단 ‘용마코러스’ 김석훈(37)씨는 “올해 서울·부산에 사는 16~51회 졸업생들이 부산에서 재학생들을 초청해 공연을 가졌다. 87세·78세 은사님 두 분도 무대에 함께 섰다”고 전했다.

 지난 7월 유엔평화음악회 무대를 하루 앞두고 8개 고교 동문합창단이 모여 합동 연습할 때다. 자꾸 박자를 놓치는 사람이 나오자 “틀린 사람은 2만원씩 내라”는 우스갯소리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합창 당일 무대에만 서면 이들은 듬직한 모습을 보여준다. 13일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노래를 통해 누군가의 아버지·아들로 살면서 감춰두고 있던 낭만과 감성을 끄집어냈다. 2시간에 걸친 공연이 끝나자 1500석 규모의 객석에선 기립박수가 터져나왔고 손자·손녀들은 ‘우리 할아버지’를 찾았다.

공연을 지켜본 광주일고 가족합창단 유광희(65) 단장은 “우리는 아직 단원 수도 40여 명에 불과하고 게다가 혼성 4부 합창단이다. 하지만 단원들을 더 모아 다음 번 공연에 꼭 서겠다”고 말했다.

안희동 단장은 “출신학교는 다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우리는 같은 동창임을 확인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내년에 광복 70주년을 맞아 더 많은 사람과 더 큰 무대에 서는 게 이들의 다음 목표다.

 고교와 대학 동문회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연고주의에 날선 비판을 날렸던 전북대 강준만(신문방송학) 교수는 일종의 타협책으로 ‘공공적 연고주의’를 제안한 바 있다. 연고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만큼, 동문회가 봉사·기부 단체도 겸해달라는 주장이었다. 노래하며 봉사하는 8개 고교 동문합창단은 강 교수의 바람에 한발 가까이 간 것 같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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