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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공짜로 받아 한 박스에 1만6500원 '봉이 하선달' 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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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하형석 대표는 자본금 3500만원으로 2년 만에 매출 50억원을 기록하는 벤처기업을 만들었다. 그는 “미미박스는 ‘K뷰티’ 같은 한류 콘텐트를 전 세계로 배송하는 회사”라면서 “실리콘밸리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특징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하형석(31) 미미박스 대표를 만난 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논현동 사무실에서였다. 인터뷰 시간은 단 1시간 정도만 주어졌다. 하 대표가 9개월 만에 3박 4일 일정으로 잠시 한국에 들어와 여유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뉴욕·뉴저지와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 등지에 머물렀다. 국내 일정이 끝나면 곧바로 중국 출장도 가야한다. 그가 이렇게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건 미미박스의 선풍적 인기 덕분이다.

 하 대표는 미미박스를 “온라인을 통해 ‘K뷰티’를 전 세계에 유통하는 하나의 플랫폼”이라고 정의했다. K뷰티는 화장품 등 한국산 뷰티제품과 이를 활용한 머리 스타일, 화장법 등을 총칭한다. K팝과 한류 드라마·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덩달아 인기를 얻고 있다.

 미미박스는 미국에선 ‘서브스크립션 커머스’로 알려져 있는 새로운 유통업 형태다. 미미박스의 경우 매달 구독료 1만6500원을 낸 소비자에게 7만~8만원 상당의 최신 트렌드 화장품을 한 달에 한 박스씩 보내준다. 화장품 신상품을 마치 월간지를 정기 구독하듯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다. 보통 4~6개의 상품이 한 박스에 담겨서 배달된다. 스킨케어 제품, 색조 화장품, 헤어제품 등 머리부터 발 끝까지 여성을 위한 뷰티제품 등으로 꼼꼼하게 구성돼 있다. 소비자가 써보고 마음에 드는 제품은 뷰티 전문 커머스인 ‘미미샵’에서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살 수도 있다. 현재 미미박스와 제휴한 화장품 브랜드만 1000여 개에 이르며, 현재 미국·중국 등 51개국에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다. 미미박스는 특히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다. 8월 기준 50만 명인 회원 중 20~30대 여성이 70%를 차지한다.

 하 대표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2002년에만 해도 공대(환경공학과) 학생 신분으로 군고구마 장사를 했고, 쇼핑몰에서 운동화를 판 적도 있다.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자원해 8개월간 복무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세계 최고 디자인스쿨로 꼽히는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에 입학한 후 2009년 명품 브랜드인 ‘톰포드’ 홍보 마케팅팀에서 활약했다. 당시 브래드 피트와 브루스 윌리스, 톰 행크스 같은 헐리우드 스타들의 스타일링을 담당했다. 국내에 들어와서는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에서 패션·뷰티 분야 매니저로 일하기도 했다.

미미박스는 이용 고객이 가장 많은 서울 강남 지역부터 ‘3시간 무료배송’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빠른 배송을 위해 핑크색 줄무늬 모양의 배송 전용 오토바이 ‘미미 바이크’도 구비했다.

 그가 미미박스를 세운 건 2012년 2월이다. 하 대표와 공동 창업자인 김도인 이사를 포함한 20대 청년 3명이 자본금 35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물리학과 출신인 김 이사는 국내 증권사에서 중개인(리테일 브로커)로도 일하면서 창업 기회를 노렸다.

그는 “‘뷰티 산업과 유통, 정보기술(IT)을 결합하면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하 대표의 비전에 끌렸다”면서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 빈도가 높은 20~30대 여성들을 위해 피드백 시스템을 강화하고, 웹페이지의 사용자환경(UX)을 소비자들이 이용하기 쉽게 바꾼게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명확한 목표와 새로운 사업 전략 덕분에 미미박스는 첫해 매출 13억원, 지난해 매출 50억원을 기록했다. 사업이 단기간 내 급속도로 성장한 비결은 화장품이 아니라 ‘서비스’를 판매하는 데 있다. 미미박스는 화장품 회사로부터 무료로 제품을 받아온다.

 화장품을 무료로 받는 대신 미미박스는 고객사를 위해 다양한 판촉 활동을 대행해준다. 특히 소비자들의 피드백을 토대로 제휴 브랜드에 20페이지 분량의 주간보고서와 150페이지에 달하는 월간 보고서를 보내준다. 고객의 연령뿐만 아니라 지역, 피부타입 같이 제휴사가 원하는 정보를 빼곡히 담았다. 또 케이블 방송 뷰티 프로그램에 제휴 화장품을 소개해주고 있다. 현재는 방송을 통해 2주에 28회씩, 한 달에 56회 상품을 소개하고 있다. 하 대표는 “방송이 나가고 1주 만에 회원이 8000명 늘어났다”면서 “사업이 잠시 벽에 부딪혔을 때 미디어 파워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미미박스는 광고·마케팅 비용이 대기업에 비해 부족한 중소업체 입장에선 매우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 된다. 테스트 마켓뿐만 아니라 바이럴(입소문) 마케팅, 제품 피드백 등 3가지 마케팅 방법을 동시에 진행할수 있기 때문이다.

 김도인 이사는 “화장품 기업들이 신제품을 내놓으면 미미박스를 통해 시장 반응을 살피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하 대표는 일찍이 눈을 글로벌로 돌렸다. 원래 창업할 때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특히 미미박스는 미국의 스타트업(신생기업) 엑셀러레이터 ‘와이컴비네이터’가 주최한 벤처 지원프로그램에서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국내 기업 최초로 10만 달러(약 1억원)를 투자받았다. 와이컴비네이터는 빈 방 공유 서비스로 유명한 ‘에어비앤비’, 전 세계 1억 명 이용자를 둔 클라우드 서비스 ‘드롭박스’를 몇 년 만에 100억 달러(약 10조원) 가치를 가진 기업으로 키워낸 벤처 사관학교다.

와이컴비네이터 덕분에 미미박스는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도 총 15만 달러에 해당하는 기업 인프라 사용도 지원받았다. 이들은 곧바로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미국지사를 세웠고, 3개월간의 혹독한 교육 프로그램과 선배 벤처 기업가들·전문가들과의 수십 차례의 미팅과 검증도 거쳤다.

 하 대표는 요즘은 중국 진출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달 14일에는 중국 상하이 지사를 세웠으며, 이달 15일에 중국어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것도 목표로 세운 상태다. 국내에서도 사업 확장을 위해 약 600평 규모의 물류센터를 완공했다. 미미박스는 올해 한국·미국·중국 글로벌 시장에서 매출 250억원 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 대표는 “현재 미미박스는 온라인 트래픽에서 국내 주요 뷰티 유통 채널인 ‘CJ올리브영’, 신세계 ‘분스’ 등을 앞서고 있다”면서 “아마존이 온라인을 기반으로 유통공룡 ‘월마트’를 제쳤듯이 미미박스도 글로벌 화장품 업계에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글=김영민 기자

사진·영상=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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