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취재일기

일베, 단장의 슬픔 언제까지 조롱할 건가

중앙일보

입력 2014.09.15 00:46

업데이트 2014.09.15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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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안효성 기자 중앙일보 기자
13일 오후 ‘일베’ 회원들이 광화문 농성장 인근에서 피자를 먹는 ‘폭식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뉴스1]
안효성
사회부문 기자

지난 13일 오후 광화문광장.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와 자유청년연합 회원 등 200여 명이 이곳에 모였다. 이들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지난 6일 ‘1차 광화문 대첩’에 이은 ‘2차 광화문 대첩’을 위해서였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도 피자와 치킨이 광장으로 배달됐다. 한쪽에서는 부침개를 부쳤다. 지난번에는 없던 초코바도 등장했다.

 이들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50일을 단식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세월호 유가족이 국민을 속이고 초코바를 먹으면서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와중에 시민들에게 초코바를 나눠줬다.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했다.

같은 시각, 같은 공간에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 중인 유가족들이 있었다. 유가족들은 그러나 “초코바를 먹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조차 민망하다. 저들도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일체 대응하지 않았다. 오후 6시부터 있었던 촛불집회에는 ‘유민 아빠’ 김영오씨도 등장했다. 그가 광화문광장을 찾은 것은 단식 중단 후 처음이다.

 김씨는 “정부와 여당은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방법도 못 내놓으면서 왜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거부하느냐”며 특별법 제정을 다시 요구했다.

 ‘단식과 폭식’ ‘유가족과 일베’의 기묘한 공존을 보며 가장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단장(斷腸)’이었다. 단장은 인간에게 잡힌 새끼를 따라가다 죽은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자식을 잃은 고통만큼 큰 고통은 없다는 의미다.

 일베 회원 등이 "경제 살리기가 우선” 등을 명분으로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여는 것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방식으로 극단적인 ‘희롱’과 ‘조롱’을 동원한 데는 시민 대다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광화문광장을 찾은 한 시민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단장의 아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들을 놀리는 것이라는 느낌만 받았다”고 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비난과 저주를 퍼부을 수 있는 공간이 적지 않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빨갱이’ ‘수구꼴통’ ‘일베충’ 등의 극단적인 단어가 난무한 지 오래다. 이런 공간에서는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이 이뤄지기 어렵다.

 단식을 하는 유가족 앞에서 폭식을 하고, 폭식 퍼포먼스를 하는 일베 회원 등에게 일부 네티즌들이 개밥을 주는 광화문광장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열려 있어야 할 광장이 일부 온라인 게시판 같이 닫힌 공간으로 전락한 듯해 서글퍼졌다. 지난 8월 광화문광장에 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로 소통하라’는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광장이 곧 다시 열리길 기대해 본다.

안효성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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