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정계개편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2014.09.15 00:41

업데이트 2014.09.15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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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과연 이런 정당들이 필요할까. 오만하고 무능한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야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의 정국 상황을 보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세월호 사건이 난 4월 16일부터 오늘까지 무려 다섯 달 동안 한국 정치는 세월호에 묶여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사안조차 제대로 풀어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각 정당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만 격화시켰다. 이제 세월호 이슈는 사건의 본질과 무관하게 이미 배가 산으로 올라간 꼴이 되었다.

 TV에 정치인이 나오면 꼴 보기 싫어 채널을 돌려버린다는 말에 다들 공감할 만큼 이제 대다수 국민은 정치권에 대해 극도의 식상함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여론의 비판적인 흐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여전히 너무나 당당하다는 인상을 준다. 심지어 당에 대한 지지율이 크게 추락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히틀러도 유신도 국민이 만든 것”이라는 새정치민주연합 노영민 의원의 말은 결국 여론이 틀렸고 국민이 어리석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과연 이런 식의 생각을 노 의원만 하고 있을까. 정치권이 국민 다수의 생각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대들기까지 하는 것은 우리의 대의민주주의에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디서 이런 오만과 독선이 생겨날까.

 자본주의가 시장에서의 경쟁을 전제로 한다면, 자유민주주의는 선거라고 하는 정치적 경쟁에 기반한다. 기업이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그래야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비자의 기호에 잘 맞춰야 하며 그렇지 못하다면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원론적으로 볼 때 정치 시장에서의 경쟁 논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국민의 요구를 잘 수용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실현해내는 정당이 보다 큰 지지를 얻게 되고 권력을 향한 경쟁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의 문제는 경쟁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형상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라는 두 개의 대안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역으로 내려가면 일당 지배가 구축돼 있기 때문에 경쟁은 사라진다. 특히 지역주의 영향이 강한 곳일수록 한 정당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경쟁이 없으면 시장은 왜곡된다. 독과점의 폐해가 생겨나는 것이다. 여론이 아무리 비판적이라고 해도 정치인들이 당당할 수 있는 까닭은, 지금 뭐라고 욕해도 선거 때가 되면 우리 말고 선택할 곳이 있겠느냐는 믿음 때문이다.

 진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우리 정치가 변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정치를 바꾸려면 지금과 같은 양당의 독과점 구도가 깨어져야만 한다. 정치 발전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출현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다수의 대안이 존재해야 경쟁이 의미를 갖게 되고, 그제야 기존 정당들도 국민의 눈치를 보려고 할 것이다. 다당적 경쟁을 이끌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새로운 정당의 출현이 용이하도록 보다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로 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배치되는 이러한 변화를 양당이 스스로 추진할 리 만무하다.

 따라서 양대 정당의 폐쇄적 구도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어렵더라도 현재 주어진 조건하에서 미래지향적 가치를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결성을 추진하는 일이다. 제3 정당의 시도는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다. 얼마 전까지 거세게 불었던 이른바 ‘안철수 바람’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대안 세력에 대한 여망을 담고 있었다. 안철수의 실험은 실패로 끝이 났지만 새 정치에 대한 여망마저 사라져 버렸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순천-곡성에서의 보궐선거 결과 역시 고무적이다. 수십 년간 다져져 온 지역주의적 편견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선거 결과는 적어도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한편 세월호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 사회의 한계를 드러냈고 그 때문에 ‘국가개조’라는 근본적 변화에 대한 고민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그런데 세월호 처리 과정을 보면서 ‘개조’가 가장 절박한 곳은 다름 아닌 정치권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정계개편을 위한 공감대는 이미 이렇게 폭넓게 형성돼 있다. 새로운 가치와 열정으로 무장한 정치적 도전자(political entrepreneurs)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이젠 정말 정치의 판을 바꿀 때가 되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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