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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 포화 … 기존 원전 부지 저장시설 확충이 현실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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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기존 원전 부지에 저장시설을 늘리는 게 사용후 핵연료(핵 폐기물) 포화 위기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다.”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소속 전문가검토그룹이 지난달 발표한 검토의견서의 핵심 내용이다. 지질·원자력·경제를 비롯한 각계 전문가 15명이 5개월간 연구와 토론을 거쳐 내놓은 결과다. 공론화위는 이를 토대로 연말까지 정부에 사용후 핵연료 처리 최종 권고안을 전달할 계획이다. 향후 정부 정책이 이번 의견서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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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견서에 따르면 전문가그룹은 그동안 기존부지 확충과 새 부지 선정 등 두 방안을 두고 우선 순위를 검토해왔다. 선택의 초점은 10년 뒤인 2024년에 핵폐기물이 완전 포화되는 국내 상황을 감안할 때 단기간에 건설이 가능한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그 결과 1순위로 염두에 둔 것이 기존 부지 확충이다. 현재 핵 폐기물을 보관중인 5개 원전부지(고리·월성·신월성·영광·울진)의 저장시설을 넓히자는 얘기다. 가장 큰 이유는 안전성이다. 기존 부지는 이미 원전이 가동되고 있기 때문에 부지 안전성을 확인받은 상태다. 반면 새 부지를 선정하려면 지진·태풍 같은 자연 재해 영향과 활성단층을 비롯한 지질학적 안전성을 조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새 부지 선정은 절차도 까다롭다.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유치 신청을 받은 뒤 주민 투표를 통해 찬성률이 가장 높은 지역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과거 안면도사태·부안사태의 전례를 볼 때 민심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 전문가그룹은 “선정 절차의 객관성·투명성 부족 논란으로 후유증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기존 부지는 해당 지역 주민의 동의를 받으면 복잡한 절차 없이 부지 건설을 할 수 있다.

 국민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론화위의 여론조사(지난달 20~27일)에 따르면 기존 원전의 저장시설 확충에 대해 절반 이상(50.3%)이 찬성했다. 다른 지역의 새 저장시설 마련에 찬성한 의견(39.9%)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사용후 핵연료 건설지역 주민에 대한 지원책으로는 공공기관·기업유치(73.8%)를 택한 의견이 가장 많았던 반면 현금지원(40.8%)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렇다고 전문가그룹과 여론조사를 근거로 기존 부지 확충안을 밀어붙일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기 때문이다. 전문가그룹도 “기존 원전 지역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시간이 걸리더라도 새로운 부지를 찾을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현재 공론화위에는 5개 원전부지 지역 대표가 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다. 일단 지역에서는 부정적 여론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신고리 원전이 있는 울산 울주군의 최길영 위원은 “기존 부지를 넓히려 하면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제3의 저장 부지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경북 울진의 송재원 위원은 “국가적으로 생각할 때는 기존 원전 부지를 확장해 보관하는 게 나을 것”이라며 “정부가 먼저 적절한 보상책을 제시한 뒤 지자체가 주민 설득에 나서는 단계적 동의 절차를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공론화위 관계자는 “원전 저장시설 건설에 6~7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내년 중에는 기존 부지 확충안과 새 부지 선정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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