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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했나 … 애플 '잡스 유산' 도 버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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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애플은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혁신 없는 제품은 영혼 없는 생명체와 같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애플에서는 경쟁사 제품을 따라 한다는 건 금기였다. 이런 애플이 변신을 선언했다. 잡스를 버리고 적(敵)이 간 길을 쫓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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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플린트센터에서 아이폰6(4.7인치 화면)와 아이폰6플러스(5.5인치 화면), 애플워치(스마트 손목시계)를 공개했다. 시장에선 환호와 한탄이 교차했다. 삼성전자가 앞서는 시장을 캐치업(Catch-up·따라하기) 전략으로 공략하겠다는 실용정신에 대해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반면에 잡스의 철학이 사라졌다는 한탄의 울림도 컸다.

 애플은 삼성전자가 선점한 시장을 노린다. 삼성은 대화면 스마트폰 시장에서 절대 강자다. 삼성은 지난해 9월에는 갤럭시 기어를 선보이면서 스마트 워치 시장도 개척했다. 여기에 보급형 기기를 내세워 추격하는 중국 업체들의 공세도 애플은 부담스럽다. 애플이 새로운 전략과 제품을 들고 나온 건 이런 시장 환경 때문이다.

 애플의 변신은 경쟁업체에는 위협이다. 위협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애플이 자신을 버리고 적의 장점을 취했다는 점이다.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에 적용된 대화면은 잡스가 경멸하던 크기다. 그는 생전에 기자회견에서 화면 사이즈가 아이폰(3.5인치)보다 큰 스마트폰을 두고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은 대화면 스마트폰이 대세다. 실리를 택한 애플이 과연 성공할지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두 번째 위협은 애플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폰6와 애플워치는 ‘애플 페이’라는 모바일 결제 기능을 갖췄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만 있던 근거리무선통신(NFC)을 받아들여 발전시킨 것이다.

상점 단말기 앞에서 아이폰6나 애플워치를 흔들면 결제가 된다. 여기서 생태계 만들기에 능한 애플의 강점이 발휘됐다. 애플은 아메리칸익스프레스·비자·마스터 등 신용카드회사와 맥도날드·월그린·메이시백화점 등 소매업계 대표주자들과 제휴를 했다. 소비자-카드사-소매업계로 연결되는 모바일 결제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세 번째 위협은 애플이 드디어 잡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새 도전에 나섰다는 점이다. 스마트워치는 2010년 아이패드 이후 애플이 처음 내놓은 신제품으로 ‘관리형 CEO’로 알려진 쿡의 데뷔작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잡스가 이루지 못했던 광범위한 일들이 쿡의 리더십 아래 벌어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보도했다.

 삼성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삼성 관계자는 “나빠지는 시장 환경 속에서도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수요에 맞는 포트폴리오로 대응한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전열 정비를 마친 애플은 내달리기 시작했고 쫓아오는 중국 업체의 추격은 거세기만 하다. 이제 삼성이 혁신을 이뤄내야 할 차례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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