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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오픈 테니스' 니시코리가 만든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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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일본 테니스 왕자 니시코리 게이(25)의 기적이 US오픈 결승전에서 멈췄다. 마린 실리치(26·크로아티아)가 파란색 코트에 드러누워 승리의 환호성을 지를 때 니시코리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시아 국적을 가진 남자 테니스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올랐던 니시코리의 열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남자프로테니스(ATP) 세계랭킹 8위 니시코리는 9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US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세계랭킹 12위 실리치에게 0-3(3-6, 3-6, 3-6)으로 졌다. 생애 처음으로 그랜드슬램 대회 결승전을 치른 그는 준우승을 기록했다.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아시아계 남자 선수 최초로 그랜드슬램 우승을 이룬 선수는 중국계 미국인 마이클 창(42)이다. 창은 1989년 프랑스오픈 최연소(17세3개월) 우승자로 올 초부터 니시코리의 코치를 맡고 있다. 니시코리는 이길 때마다 "나의 코치 창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이번 대회 초반만 해도 니시코리를 주목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테니스 스타 로저 페더러(33·스위스), 노바크 조코비치(27·세르비아) 등이 훈련할 때는 코트 주위에 팬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그러나 니시코리가 빌리 진 킹 국립 테니스 센터 한복판을 누벼도 알아보는 팬들은 거의 없었다.

니시코리는 조용히 이변을 준비하고 있었다. 8강에서 호주오픈 단식 우승자인 스탄 바브링카(29·스위스)를 4시간 19분 만에 3-2로 제압하자 뉴욕이 들썩였다. 현지시간으로 다음날 오전 2시26분에 경기가 끝났지만 코트를 떠나는 이는 없었다. 현지 언론은 첫 세트를 쉽게 내주고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승리를 쟁취한 니시코리를 향해 '마라톤맨'이라고 불렀다.

이변은 거기까지인 줄 알았다. 그러나 니시코리는 준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조코비치를 3-1로 이겼다. 니시코리가 아시아 국적 선수 최초로 메이저대회 결승 진출을 하자 이번엔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대회 스태프들은 아시아인을 보면 "콩그레츄레이션(congratulation)"을 연발했다.

일본 열도는 난리가 났다. 일본 유력 일간지 1면과 방송사 메인 뉴스 프로그램이 전부 니시코리가 차지했다. US오픈을 독점 중계한 일본 유료 위성방송 채널 '와우와우(WOWOW)'는 신규 가입자가 줄을 이었고, 니시코리의 생생한 현지 인터뷰를 방송해 큰 인기를 누렸다. 니시코리의 유니폼 스폰서사인 일본 의류업체 유니클로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니시코리가 입는 유니폼과 같은 디자인의 제품이 일본 대도시 점포에서 '완판'됐다. 미쓰비시도쿄UFJ 은행 회장인 구로야나기 노부오 일본 테니스 협회장은 니시코리 결승 진출 소식에 한달음에 뉴욕으로 날라왔다.

결승전은 1시간 54분 만에 허무하게 끝났다. 전 경기 내내 3~4시간에 달하는 접전을 펼친 탓에 힘이 빠졌는지 니시코리 특유의 끈질긴 플레이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1m98㎝·82㎏ 탄탄한 체격인 실리치의 강력한 서브에 압도당했다. 서브 에이스가 무려 17-2로 밀렸다. 니시코리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나만의 테니스를 할 수 없었다. 그랜드슬램 첫 우승을 이루지 못해 미안하다. 다음에는 꼭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비록 우승하지 못했지만 니시코리는 일본 테니스를 넘어 아시아 테니스의 힘을 보여줬다. 니시코리의 성공은 일본 테니스 협회 노력의 산물이다. 걸출한 테니스 스타가 없던 일본은 1999년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다. 소니 창립자 모리타 아키오 회장의 동생 모리타 마사아키가 일본테니스협회 회장이 된 후 모리타 테니스 펀드를 설립해 14세 이하의 주니어 유망주들을 대거 해외 유학을 보냈다. 그 중의 한 명이 니시코리였다. 일본에서는 천재였지만 세계적으로는 흔한 유망주였던 니시코리는 2003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테니스 유학을 하면서 톱랭커로 성장했다.

1m78㎝·68kg로 아시아 체구인 니시코리는 유럽 선수들에 비해 파워가 약했다. 2009년에는 팔꿈치 수술을 받고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테니스계는 니시코리가 재기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힘에서 밀리는 대신 니시코리는 여우 같은 전략가가 됐다. 스트로크 강약을 자유자재로 조절해 상대를 공략했다. 이기기 어려운 세트를 과감히 버리고 잡을 수 있는 게임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한국 테니스 유망주 이덕희(16·마포고)를 가르치는 윤형준 코치는 "니시코리가 4강을 앞두고 이덕희와 함께 훈련을 했는데 코트 구석을 찌르는 크로스샷을 두세 발만 움직여서 쳐내는데 놀랐다. 유럽 선수에 비해 힘은 부족하지만 순발력과 지구력이 탁월하다"고 전했다.

한국은 세계랭킹 36위를 쓰며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4대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승리한 이형택(38) 이후로 테니스 맥이 끊겼다. 일본이 엄청난 투자로 유망주를 키울 때 수영장에 네트를 쳐 놓고 공을 치고, 빗자루를 들고 스윙 연습을 했던 이형택의 '헝그리 정신'에만 매달렸다.

뛰어난 유망주는 있었다. 2005년 주니어 랭킹 1위에 올랐던 김선용(27·도봉구청)이 어린 시절에는 조코비치나 니시코리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프로 데뷔 후 큰 기대와는 달리 성적이 부진하자 슬럼프에 빠졌다. 결국 그는 투어를 포기했다.

주원홍(58)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은 "이형택 이후 한국 테니스는 시행착오가 있었다. 이제 우리도 가능성 있는 주니어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지금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점진적인 지원을 할 것이다. 앞으로 10년 안에 니시코리같은 대형 선수가 나오게 하겠다"고 했다.

뉴욕=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사진=AFPBBNews=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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