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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역주행 … "열악한 환경서 성적 올린 학교 없앤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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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시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학부모들이 5일 오후 서울 북촌로 감사원 앞에서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지정취소 방침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집회를 마친 뒤 감사원에 시교육청의 자사고 운영성과 종합평가 및 지정취소가 교육감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며 감사를 청구했다. [뉴스1]

“도심 공동화 지역에 위치한 애들 학교 주변에는 제대로 된 학원도 없어요. 보통 고교생에게 매달 100만원 이상 사교육비가 든다지만 우리 학교는 기숙사까지 갖춰 자율학습을 충실히 하기 때문에 학원에 안 보내도 됩니다. 강북이지만 학교 덕분에 아이가 마음 잡고 공부하는데 이런 곳을 없애려 하다니 (교육감이) 강남 8학군으로 이사 가라고 내모는 겁니까.”

 서울 종로구에 있는 중앙고 1학년 재학생 자녀를 둔 전모(41)씨의 애타는 항변이다. 전씨는 조희연(사진) 서울시교육감이 4일 자율형사립고(자사고) 8곳을 지정 취소하겠다고 발표한 행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고가 제대로 운영되면 자사고는 자연스레 없어질 텐데 자사고부터 없애려 하니 학생들만 피해를 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조 교육감이 자사고 8곳 폐지를 추진 중이지만 대상 학교 대부분이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 교사와 학생이 어렵사리 노력해 기대 이상의 학생 지도 성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폐지 대상으로 지목된 자사고 8곳 중 6곳이 비강남 지역에 있다. 더욱이 이들 자사고 상당수가 수능 성적 향상도에서 서울 전체 자사고 중 최상위권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때문에 조 교육감이 열악한 여건을 딛고 노력해온 학교를 궁지로 내모는 역설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조 교육감이 폐지 대상으로 꼽은 자사고는 세화고(서초구)를 제외하면 강북·구로·동대문·마포·종로·서대문·강동구에 있다. 학원이 밀집한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와 양천·노원구 등 이른바 교육특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민층이 많은 주거지다.

 숭문고(마포구 대흥동)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 유모(45)씨는 “입학 때 중학교 성적이 별로 뛰어나지 않았던 학생들도 흥미를 느껴 성적이 오르는 학교”라면서 “특목고나 영재고는 놔두고 강북의 자사고부터 폐지하겠다는데 가난한 사람이 열심히 일해 좋은 집 사면 나쁜 거냐”고 반문했다.

 교육업체 하늘교육이 전국 단위로 학생을 뽑는 하나고를 제외한 서울 24개 자사고의 수능성적 향상도를 분석했더니 상위 10곳 중 6곳이 이번에 폐지 대상에 포함됐다. 자사고 지정 전인 2012학년도에 비해 2014학년도 수능 국어·수학·영어 평균점수가 가장 많이 오른 자사고는 숭문고(54.3점 증가)였다. 중앙고·경희고·신일고·우신고·배재고도 10위 안에 들었다. 2012학년도 수능은 일반고 학생들이 치렀고, 2014학년도에는 중학교 내신 50%에 드는 학생 중 추첨으로 선발한 자사고 출신이 수능을 봤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등록금만 많이 받고 교육은 형편 없는 자사고가 폐지 통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있을 텐데 자료 분석을 해보니 수능 성적을 많이 끌어올린 학교들이 대거 포함됐다”며 “일반고 때에 비해 일부 선발효과가 있었겠지만 수능 성적이 대폭 뛰어오른 해당 자사고들은 교사의 노력으로 열악한 교육 여건을 극복한 모범 사례로 꼽혀왔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의 평가가 학교의 노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숭문고 서준호 교장은 “학교 주변이 부유한 지역이 아니라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목동으로 이사 가려는 학부모가 많았다”며 “강북에 살면서도 괜찮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사고가 있어야 하는데 잘 키운 학교를 폐지하겠다니 그동안 애써온 교사들이 허탈해 한다”고 전했다. 강북구 미아동 신일고 학부모 강모(47)씨는 “강북 지역에서 교사와 학생이 화합해 잘 운영해왔는데 시교육청이 갑자기 지역 격차를 오히려 키우려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자사고학부모연합회는 5일 감사원에 시교육청의 자사고 종합평가에 대한 감사를 청구하고 학교별 항목 점수를 알기 위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김성탁·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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