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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연구] 동양의 괴담 vs 서양의 호러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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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권선징악으로 일관, 중국·미국은 교훈에 집착하지 않아

전형적인 일본 귀신. 한국과 달리 피를 흘리거나 무서운 얼굴을 한 귀신이 아니라 가녀리고 창백한 미녀로 묘사된다. 유령을 미적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본이다.

월간중앙 괴담의 시대다. 그럴듯한 내용과 함께 사회 구석구석에서 엄청나게 쏟아진다. 조간신문 지면은 괴담 스토리 경연장처럼 느껴진다. ‘세상에 이런 일?’ 시리즈가 도를 더해간다. 퍼져나가는 스피드와 그 위력도 놀랍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말은 이미 20세기 과거사에 불과하다. 악마의 편집을 거친 ‘거두절미형 스토리’가 신문·방송의 헤드라인으로 등장한다. 누군가에게 의도적으로 흘리는 식으로 말을 전할 필요도 없다.

상황설명이나 거기에 맞는 인증샷과 함께, 익명으로 웹에 올리면 된다. 전후(前後) 상황이나 진위 여부와 관계없다. 들은 사람들이 “네가 이렇게 말했다!”라고 단정하면 그대로 끝이다. 진위를 밝히는 과정에서 얼굴을 붉히면 ‘참회할 줄도 모르는 뻔뻔한 인물’로 전락될 뿐이다. 목소리 큰 놈이 아니라 사진 잘 찍고, 오디오 편집 잘하는 잔머리가 이기는 세상이다.

사전적 의미로 볼 때, 괴담이란 말은 ‘무섭거나 해괴한 것을 느끼게 만드는 얘기’에 해당된다. 요담(妖談)이나 요설(妖說), 호러(Horror)나 고스트(Ghost) 스토리와 같은 의미다. 사실 괴담은 거짓말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믿기 어렵지만 진실이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공포나 꺼림칙한 구석이 남는다.

21세기 한국발 괴담은 진실에 기초한 얘기보다, 진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만들어낸 것이 많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유언비어에 가까운 얘기가 진실을 가장한 괴담으로 행세한다. 진실은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얘기다. 상황 설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각도로 볼 수도 있겠지만, 신이 판단할 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 진실이다.

21세기 한국발 괴담의 대부분은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얘기와는 거리가 멀다. 일부 사람의 입맛에 맞춰진 얘기가 군중심리나 위선(僞善)의 논리에 맞춰져 마치 전체의 생각인 것처럼 진화해간다. 따라서 유언비어의 운명이 그러하듯, 사람들의 마음을 휘젓고 다닌 괴담이라 해도 그렇게 오래갈 수 없는 얘기로 전락한다. 난리를 치면서 세상을 뒤집어놓을 듯하다가도, 일순간에 사라진다.

필자는 괴담, 정확히는 괴담 영화를 즐긴다. 농담 같은 진담이지만, 1931년 미국영화 〈드라큘라(Daracula)〉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10선 중 하나다. 드라큘라 역을 맡은, 평생 가난하게 살다 세상을 뜬 헝가리 출신 배우 베라 루고시(Bela Lugosi)는 기억에 남는 명배우 중 한 명이다. 언젠가 할리우드에서 베라 루고시 부활사업이 벌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팬이다. 유언비어성 일회성 괴담이 아니라, 드라큘라처럼 자자손손 모든 사람에게 통용될 수 있는 ‘역사와 전통’의 괴담 영화가 주된 관심사다. 무서울수록, 기이하고 소름이 돋는 괴담일수록 한눈에 빠진다.

징벌의 무차별성과 선택성

서양의 공포는 힘을 바탕으로 한 폭압성에서 찾을 수 있다. 지옥은 육체적 고통과 같은 물리적 현상에 기초한 곳으로 받아들여졌다.

괴담 영화를 접하면서 내린 결론이지만, 괴담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을 듯하다. 권역별로 본, 동양과 서양의 괴담이다. 21세기 글로벌시대의 영향력은 괴담에까지 불어닥치고 있다. 동서 간의 구별이 애매모호해지고 있다. 동과 서는 서로의 스토리를 보면서 열심히 베끼고 따라 한다. 좋게 말하자면 제3의 창조이고, 나쁘게 보면 근본도 없는 퓨전 짬뽕이다. 그렇지만, 역사적 연혁을 따지고 올라가면 동과 서의 괴담은 각자의 특이한 영역을 고수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볼 때, 동서의 괴담 영화는 세 가지 측면에서 크게 다르다.

먼저 주인공의 성별이다. 동양의 경우 대부분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동의 괴담 영화에서 남성이 주인공, 즉 괴담의 장본인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여성을 통해 공포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13일의 금요일〉에서 톱이나 칼을 들고 나타나는 제이슨(Jason),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를 배경으로 한 드라큘라 백작, 꿈과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 〈나이트메어(Nightmare)〉의 프레디 쿠르거, 남성의 백치미를 공포로 표현한 거구의 프랑켄슈타인….

서양 공포영화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주인공, 즉 원한을 가진 인물은 남성에 국한된다. 인형이나 좀비조차도 여성을 조연급으로 내세우는 반면, 주인공은 항상 남성이다. 필자가 아는 한, 서양 괴담 영화에서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것은, 〈엑소시스트(Exorcist)〉와 〈캐리(Carrie)〉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귀신 들린 엑소시스트와 돼지피에 젖은 케리의 비명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둘째 차이점은 폭압성과 무차별성이다. 서양 괴담의 주인공은 너무도 잔인하다. 슈퍼맨급 힘으로 사람들을 무차별 살해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엄청난 파워를 통해 다중(多衆)을 상대로 한 살인이나 공포가 이뤄진다. 동양과 마찬가지지만, 서양 괴담의 주인공도 슬픈 탄생사를 갖고 있다. 자신을 허공을 떠도는 불귀(不歸)의 유령으로 만든 나쁜 사람이 배경에 있다. 원한을 갖게 만드는 특별한 대상이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서양 괴담 주인공의 공격 목표는 결코 특정인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무차별이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까지 원한의 대상이 된다.

학교나 직장 내의 총기사건은 미국에서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뉴스 중 하나다. 작은 사건까지 합치면, 거의 매주 벌어지기에 전부 열거하기조차 어렵다. 자동소총을 든 학생이 학교에 나타나 눈앞에 나타나는 학생, 선생 등 모든 사람을 살해하는 식의 얘기다. 범인은 과대망상증 환자나 정신불안자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지만, 학교에서의 왕따나 알력으로 스트레스를 받던 중 한순간에 폭발해 총, 나아가 수류탄도 들게 된다. 그러나 살해 대상은 자신을 괴롭힌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 주변 사람은 물론, 방문객처럼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도 ‘징벌’ 대상이 된다. 무차별에다 묻지마 살인이다.

기억에도 새롭지만, 2007년 4월 버지니아공대에서 한국계 학생이 엄청난 사건을 저질렀다. 묻지마 무차별 살인을 통해 3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한동안 한국계 이민사회 전체를 어둡게 만들고, 버지니아공대는 살인참사의 현장 정도로 전 세계에 낙인 찍힌다. 필자는 당시 그 한국계 학생이 언제 한국을 떠났는지에 주목했다. 보도에 따르면, 8세 때 미국에 건너와 거의 외톨이로 자랐다고 한다. 10세 미만에 이민을 왔다 해도 한국보다 미국의 세계관과 가치기준에 더 익숙하다는 의미다.

치마 밖으로 발을 내놓은 명성황후

여우는 한·중·일 등 아시아 괴담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 중 하나다.

동양 괴담의 경우 원한의 대상이 극히 일부로 압축된다. 무차별 묻지마 살인 괴담도 있지만, 기본은 자신에게 해를 가한 ‘원흉’과 그 주변 인물들이 공격대상이다. 보이는 대로 공격하는 괴담의 주인공은 요괴(妖怪)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꼬리 9개를 가진 여우, 즉 구미호(九尾狐)와 같은 얘기가 바로 요괴로서의 괴담이다.

장수(長壽)를 원하거나 인간으로 변신해 옥황상제 옆에서 힘을 발휘하기 위한 욕심 때문에 인간사냥에 나선다. 꼬리 9개의 여우 얘기는 중국에서 넘어온 괴담이다. 중국발 괴담은 한국·일본과 다소 다르다. 중국발 괴담의 대부분은 동양 전체를 아우르는 식의, 특정 인물이나 배경에 대한 원한이 주류다.

그러나 한국·일본에 비해 불특정 다수를 공격대상으로 하는 괴담도 상대적으로 많다. 중국인 대부분은 괴담을 요괴에 관한 스토리, 즉 요설(妖說)로 해석한다. 같은 동양이지만, 한국·일본의 경우 요괴 스토리, 즉 묻지마 무차별 괴담은 드물다. 원한은 특정인에게만 집중된다.

셋째 차이점은 괴담 주인공의 형상이다. 서양 괴담의 주인공은 귀신이 된 후의 모습이 살아있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무섭게 하거나, 다소 추하게 만드는 선에서 그친다. 불 타 죽었는데도 사지가 멀쩡한 귀신으로 등장해 사람들을 괴롭힌다. 동양은 다르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날 때의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추하게 변한 모습을 보이면서 공포를 조장한다. 주목할 부분은 모두에게 무서운 얼굴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해를 가한 사람이 아닌, 제 3자가 보면 무시할 수도 있는 모습이다. 상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 수 있는 모습이 동양 괴담의 주인공이다.

서양의 경우, 위해를 가한 사람만이 아니라 보통사람이 봐도 무섭게 받아들인다. 서양 귀신은 아예 처음부터 모두가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동양 귀신은 생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만 무섭게 와 닿는 존재다. 일본 괴담에 나오는 주인공의 특징이지만, 동양 귀신의 경우 그림자가 없고 특히 발이 없다. 간단히 말해 걸어 다니지 않고, 날아다니는 것이 동양 귀신이다. 발을 보이지 않고, 긴 머리와 피로 젖은 상의, 뭔가를 갈망하는 듯 허공을 맴도는 늘어진 두 팔이 동양 귀신의 이미지다.

필자의 일방적인 판단이지만, 귀신이 발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여성에 대한 동양 관습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중국 관습에 의한 것이지만, 원래 동양 여성은 발을 성(性)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전족(纏足)은 중국 나아가 아시아의 전근대성을 상징한 대표적인 인습이다. 남성이 많은 중국에서 여성을 집안에 가둬놓기 위해 창안한 것이 전족이다. 성의 상징인 발을 남성 혼자 독점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여담이지만, 한때 한국사 교과서에 실렸던 명성황후 사진의 진위를 둘러싼 논의가 있다. 사진은 통역사로 온 미국인 헐버트가 1906년 자신의 책에 실은 ‘황후 복장으로 정장한 한 궁녀’에서 따온 것이다.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등으로 볼 때, 명성황후임이 틀림없다는 얘기가 많다. 헐버트가 명성황후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궁녀로 표기했다는 견해도 있다. 필자는 ‘헐버트 사진=명성황후’라는 말에 100% 동의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발이다. 사진 속의 여인은 발을 치마 밖으로 내놓은 모습으로 앉아 있다. 만주족이 세운 청의 황실 그림을 보면 여성의 경우 100%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발을 드러낸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청을 종주국으로 하는, 청의 예법에 익숙한 조선 왕실의 퍼스트레이디가 감히 발을 밖으로 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명성황후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동양 괴담 주인공의 99%는 여성이다. 괴담 속의 귀신조차 발을 보이지 않는 것이 동양의 ‘예법’이다.

부처의 열반을 슬퍼하는 사람들. 일본에서 제작된 14세기 그림이다. 등장인물과 동물의 표정과 자세를 보면 왜 일본에서 괴담이 인기를 끌었는지 알게 된다.

한국에 요괴 그림이 전무한 이유

한국·중국·일본 3국을 기준으로 할 때 동양 괴담의 발상지는 역시 중국이다. 20세기 초 괴담과 요괴학(妖怪學)의 제1권위자인 불교철학가 이노우에 엔료우(井上円了)에 따르면, 일본에 알려진 괴담의 70%가 중국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인도가 20%, 나머지 10%가 일본 자체 작품이다. 일본에 알려진 중국 괴담은 불교 유입과 함께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 부동명왕상(不動明王像). 불법을 수호하는 불자(佛子)로 칼과 무서운 얼굴로 표현된다. 일본 괴담에 자주 등장하는 수호신으로 유령을 상대하는 역할도 한다.

중국발 스토리가 아시아 괴담의 출발지이기는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동양 괴담의 중심지는 일본이다. 괴담 발상지인 중국은 1949년 공산당 체제가 등장하면서 ‘괴담=미신’으로 받아들인다. 문화혁명의 여파에서 보듯, 중국이 자랑하는 문화적 유산이 봉건적, 미신적이란 딱지와 함께 매장된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중국인에게 향(香)을 선물로 줬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귀신을 부르는 봉건 유산물을 왜 주느냐”면서 역정만 냈다.

한국의 경우 〈전설따라 삼천리〉에서 보듯, 삼천리 방방곡곡이 괴담으로 넘쳐난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조금 달라진다. 한국 괴담의 대부분은 일본을 통해 거꾸로 유입된 것이 많다. 극히 일부 독자적인 괴담이 남아 있지만, 식민지 시대에 알게 모르게 유입된 얘기가 대부분이다.

독자적인 한국 괴담이 드문 이유는 일제 식민지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성리학이다. 공자, 맹자를 논하는 성리학은 괴담 소설을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상징으로 천시한다. 성리학적 세계관에 반하는, 미신을 퍼뜨린다는 이유로 괴담이 주류문화권에서 사라진다. 부분적으로 서민들에게 남겨져 전달되지만, 글을 통한 기록과는 무관하다.

일본과 달리 한국에는 귀신이나 괴담의 주인공이 된 인물에 대한 그림 자체가 없다. 요괴에 관한 그림도 전무하다. 조선시대 성리학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일본은 귀신 요괴에 관한 그림이 비지니스의 일환이 될 정도로 풍부하다. 일본의 귀신과 요괴 그림이 한국에 넘어오면서, 〈월하(月下)의 공동묘지〉의 귀신도 일본풍으로 변해간다.

일본에서의 전통 괴담은 요츠야 괴담(四谷怪談), 사라야시키(皿屋敷), 목단등불(牡丹燈籠)로 이어지는 3대(大) 스토리에서 시작된다. 일본인이라면 어릴 때부터 보고 듣는 공포의 스토리가 3대 괴담이다. 어릴 때 부모의 말을 안드는 고집쟁이 어린이가 가장 많이 듣는 얘기 중 하나가 3대 괴담의 대사나 주문이다.

우물에 빠진 여인이 흐느끼며 읊조리는 “접시 한 장, 접시 두 장, 접시 세 장”은 괴담 사라야시키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 중 하나이다. 접시를 깨뜨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편에게 살해당한 여성, 오키쿠(お菊)의 한이 서린 주문이다. 언제부턴가 괴담·유령·귀신 얘기는 한여름의 오락이란 식으로 굳어져 있다. 이른바 납량(納凉)특집이다. 납량이란 말은 일본식 한자 조어다. ‘서늘함을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풀이된다.

3대(代)가 함께 즐기는 3대(大) 괴담

요츠야 괴담의 주인공인 오이와(왼쪽)와 남편 이에몬. 독약 때문에 얼굴이 괴물처럼 변해간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괴담이 여름밤 문화의 일환으로 정착된 것도 일본문화의 흔적이라고 추정된다. 섬나라 일본의 여름은 더위만이 아니라, 습기로 범벅이 된 날씨다. 저녁이 되면 강이나 시장에 몰려나가 불꽃놀이와 가부키(歌舞伎)를 즐긴다. 유난히 풍속(風俗)산업이 발달한 이유는 바로 긴긴 밤을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일본의 밤문화로 연결돼 있다.

괴담은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밤에 놀러 나갈 경우 함께 즐길 수 있는 대중오락에 해당된다. 간이무대 위에서의 가부키나 영화관에서 괴담영화를 통해 3대(代)가 함께 즐긴다. 3대 괴담은 여름철이 되면, 가부키 무대나 극장, 텔레비전에 고정적으로 등장하는 흥행물이다. 세대를 넘어 일본인 모두가 즐기는 명실상부한 국민 스토리다.

3대 괴담은 전부 에도(江?)시대 때부터 본격적으로 알려진 얘기로, 요츠야 괴담과 사라야시키는 실화에 기초한 스토리로 알려져 있다. 목단등불은 중국 명(明)대의 소설 전등신화(剪?新話)를 원류로 하는, 일본이 아닌 중국의 세계관이 깃든 괴담에 해당된다. 3개의 괴담 가운데 일본인에게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높은 것은 역시 요츠야 괴담이다. 영화로 만들어진 것만도 20여 편이 넘는다.

요츠야 괴담은 17세기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얘기다.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지고 있지만, 하이라이트 부분은 거의 비슷하다. 주인공은 정숙한 여성 오이와(お岩), 낭인(浪人: 주군이 없는 실업자 사무라이)으로 있는 이에몬(伊右衛門) 두 사람이다. 이에몬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한물간 사무라이다. 오이와를 본 이에몬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결혼을 원한다. 그러나 오이와 아버지가 끝까지 반대하자 한밤중에 살해한다. 아버지를 잃은 오이와에게 살인범을 찾아주겠다고 환심을 산 뒤 결혼한다. 이후 오이와는 자식을 낳는다. 곧 병에 걸린다.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오이와에 대한 불만이 쌓여간다.

어느 날 길을 가다 우연히 부잣집 외동딸 우메(梅)를 만나게 된다. 우메는 첫눈에 이에몬에 반한다. 아버지에게 결혼시켜달라고 애원한다. 자살하겠다는 우메의 성화에 못 이겨 이에몬을 초대한다. 오이와와 이혼한 뒤, 데릴사위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한다. 사무라이로서 일할 수 있는 곳도 주선해주겠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일확천금·벼락출세가 한순간에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고민하게 된다.

집에 돌아와 이혼얘기를 꺼내지만, 오이와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한다. 핑계를 찾던 중 병을 치료하기 위해 집에 머물던 노인과 오이와 사이의 관계를 불륜으로 몰아간다. 오이와가 완강히 부인하는 과정에서 얼굴에 상처가 생긴다. 이에몬이 갖다 준 고약을 얼굴에 바르지만, 흉칙한 얼굴로 변한다. 독을 넣은 약이다.

오이와의 변한 모습에 놀란 이에몬은 자격지심(自激之心)에 처를 살해한다. 때마침 집에 들른 노인과, 오이와를 도와주던 젊은 남성도 함께 살해한다. 오이와가 젊은 남성과의 불륜관계에 대해 고민하다가 자살했다는 식으로 몰아가기 위해서다. 이에몬은 오이와와 젊은 남성을 두꺼운 나무판에 매달아 강에 버린다. 현재 도쿄(東京) 교바시(京橋) 아래에 흐르는 신가와(新川)다.

이에몬은 곧바로 부잣집 딸과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 첫날밤 신부의 얼굴이 오이와로 둔갑한다. 오이와의 상처 난 얼굴이 드러나면서 이에몬은 공포에 질린다. 유령으로 변한 오이와는 자신의 잃어버린 얼굴을 돌려달라고 흐느낀다. 이에몬은 오이와를 살해한다. 그러나 실제 살해된 인물은 막 결혼한 신부 우메다.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우메의 아버지, 가족 모두를 살해한다. 이후 도망을 다니던 이에몬은 거의 미친 상태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부잣집 외동딸의 데릴사위로 가기 위해 조강지처를 버리는 얘기는 그리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모습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본보기에 불과할 것이다. 더 무섭고, 더 극악하며, 더 탐욕스러운 얘기도 천지에 깔려 있다.

그러나 요츠야 스토리는 일본인이 생각하는 괴담의 그랑프리에 해당된다. 왜일까? 가장 큰 이유는 권선징악적인 요소가 처음부터 끝까지 확실히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악당 이에몬과 정숙하고 순종하는 여성인 오이와가 극명하게 대립된다. 돈이면 결혼한 남자도 살 수 있다고 믿는 에도시대 당시 부잣집의 세계관과 윤리관도 악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불교 윤회설과 권선징악 스토리

일본 사찰 앞에 세워진 해태상. 괴담 속 유령이나 악을 막아주는 신비의 동물로 아시아 전반에 분포하는 수호신이다.

에도 당시 사람들이 죽으면 강에 그냥 버리는 것이 풍습이었다고 한다. 요츠야 괴담이 실화가 벌어진 18세기 말 에도시대의 인구는 100만 명을 넘어선다. 당시 파리가 75만, 런던이 50만 인구로, 인구 밀집도와 규모를 고려할 때 도쿄는 세계 ‘넘버1’의 도시에 해당된다.

에도 인구가 급증한 이유는 일본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출생률이 수직 상승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물론, 농촌인구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대거 도시로 몰려오면서 생긴 결과이기도 하다. 사람이 많아지고 경제상황이 급변하면서 범죄가 급증하고 인륜에 어긋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요츠야 괴담은 그 같은 전환기에 발생한 사건이다. 권선징악 스토리를 통해 돈에 놀아나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권선징악을 축으로 한 괴담은 한국인에게도 아주 익숙하다. 한국에서 창조된 작품으로, 가장 유명한 괴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장화홍련전〉이 그것이다. 영화로 6차례나 만들어진 것은 물론, 2009년 미국에서 〈초대받지 않은 사람(The Uninvited)〉이란 제목으로 리메이크된 괴담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장화홍련전〉은 19세기 초 경기도 철산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콩쥐팥쥐〉와 함께 계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스토리로도 유명하다.

〈장화홍련전〉의 주제는 억울하게 죽은 두 자매가 계모에게 복수하는 얘기로 압축될 수 있다. 계모는 언니인 장화가 낙태한 것처럼 속여 남편에게 일러바친다. 남편 배좌수는 시집도 안 간 딸이 낙태를 했다고 비난하면서 연못에 버린다. 이후 동생인 홍련도 언니에 관한 진실을 알고 자살한다.

두 사람은 원귀가 되어 세상을 떠돈다. 억울한 사정을 현지에 부임하는 신임 사또에게 전하려 하지만, 두 귀신의 모습을 보자마자 모두 놀라서 죽는다. 마지막으로 온 사또가 장화와 홍련의 사정을 알고 계모를 심판하면서 막을 내린다. 아버지 배좌수는 새 부인을 얻어 다시 두 명의 쌍둥이 딸을 낳은 뒤 행복하게 산다.

장화와 홍련의 원한이 풀리고, 사람을 죽인 계모는 벌을 받는다는 점에서 권선징악의 전형(典型)에 해당되는 괴담이다. 소름이 돋는 무서운 공포 스토리로서만이 아니라, 선을 장려하는 괴담이란 점에서 일본의 요츠야 괴담과 일맥상통한다. 권선징악 스토리는 유교가 아니라, 불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남에게 피해를 줄 경우도 자신도 언젠가 당한다는 교훈이 불교의 윤회설과 함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에 반해 드라큘라·좀비·뱀파이어가 등장하는 괴담은 교훈과는 거리가 먼 스토리다. 10세 이하 어린이에게 보여줄 수 없는 잔인하고, 극단적인 피의 합창이 서양의 괴담이다. 그러나 한국·일본의 괴담은 어른보다 어린이에게 한층 더 효과적이다. 나쁜 짓을 하면 결국 심판을 받게 된다는 교훈을 어릴때 확실히 새겨듣게 된다.

남에게 보여주는 장식품으로서의 선악

<장화홍련전>은 영화로 6차례나 만들어졌을 정도로 한국인에게 익숙한 괴담이다.

세월이 흘러도 나이 값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엄청 많다. 한국도 문제지만, 미국은 한층 더 하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비웃음거리로 남아 있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지퍼게이트를 보자. 법적으로 교묘하게 빠져나갔지만, 클린턴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자신의 인턴과 ‘부적절한 행동’에 들어간 것은 100% 명확한 사실이다.

클린턴과 힐러리와의 수직적인 관계, 사실상 부모 간섭 없이 자란 클린턴의 성장배경 등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비정상적인 접촉을 설명하는 근거로 풀이된다. 필자는 다른 각도에서 본다. 미국에는 권선징악과 같은 교훈성 조기 교육이 거의 없다. 다시 말해 괴담같이, 선이 이기고 악이 벌을 받는 식의 얘기는 극히 드물다.

미국인이 말하는 선과 악은 개개인의 자세나 마음가짐과 무관하다. 공공적 차원에서 사회와 국가를 평화롭고 안정되게 만드는, 슈퍼맨·배트맨·스파이더맨과 같은 영웅이 선악의 기준이 될 뿐이다. 미국인들이 입에 자주 올리는 말 중에 가족이란 단어가 있다. 가족 자체를 중시한다는 의미지만, 거꾸로 보면 가족관계에 문제가 많기에 의도적으로 강조한다고 볼 수도 있다. 선악의 기준은 개인에 한정될 뿐이다. 결정적 순간이 되면 자식·부모·부인·남편 모두 영역 밖에 머문다.

자식을 위해, 가족의 명예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미국인은 극히 드물다. 다만 그렇게 말할 뿐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냉정한 윤리로서의 선악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는 장식품으로서의 선악이다. 인륜, 도덕을 말하기에 앞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그대로 통과다.

클린턴 전 대통령만이 아니라 보통의 미국인 남성, 아니 여성도 상황만 되면 백악관 인턴과의 부적절한 관계에 빠져들 수 있다. 미국인이 볼 때, 도덕·인륜에 기초한 동양적 권선징악은 인간 스스로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멍에에 불과하다. 따라서 장화홍련이나 요츠야 괴담을 봐도 무서워하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서양과는 많이 다르지만, 중국 괴담은 한국·일본처럼 권선징악적 교훈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본 3대 괴담 중 하나인, 명나라의 전등신화에서 유래한 목단등불(牡丹燈籠)을 보자. 괴담 줄거리는 젊은 선비와 여자 귀신 사이에 이뤄진다.

여자 귀신은 생전에 젊은 선비를 혼자서 사모하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저세상으로 가진 못한 귀신은 자신의 몸종과 함께 한밤중에 선비를 찾는다. 두 사람이 선비를 찾을 때는 반드시 목단 모양의 등불을 앞세운다. 귀신은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면서 함께 밤을 보낼 것을 요청한다. 선비는 여성이 귀신인 줄 알지만, 함께 저세상에서라도 살고 싶다는 애절한 요청에 굴복한다. 주변사람들이 귀신을 멀리하라고 주의를 주지만, 수차례 밤을 함께 보낸 뒤 두 해골과 함께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진짜 괴담에 목마른 시대

언뜻 보면 애절한 러브스토리 같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는 괴담이다. 여자 귀신의 선비에 대한 사랑은 이해하지만, 살아 있는 인간을 죽음의 세계로 데려간다는 것이 논리에 맞지 않다. 남성이 여성에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죽음의 세계로 함께 데려간다. 여성 귀신의 일방적 이기심에 해당된다.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억울한 영혼으로 떠돌 듯한 스토리다.

권선징악이란 차원에서 봐도 뭘 집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선과 악을 나누기도 어렵지만, 굳이 말한다면 악이 선을 이기는 형세다. 선을 장려하는 권선징악이 아니라, 악을 추대하는 권악징선(勸惡懲善)이 핵심인지 오해할 정도이다. 공포로서의 괴담인 것은 사실이지만, 장화홍련·요츠야 괴담과는 다른 각도의 스토리가 중국발 목단등불의 주제다. 괴담 자체가 사람들의 정서와 심리를 반영한 것이지만, 한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중국인 캐릭터의 단면이 목단등불 속에 드리워져 있다.

한국·일본의 괴담은 권선징악이란 공통점은 있지만, 문(文)과 무(武)를 근간으로 하는 두 나라의 차이를 읽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장화홍련전〉에서 최후의 승리자는 아버지인 배좌수다. 사실 장녀인 홍련을 연못에 빠뜨린 인물은 아버지 배좌수다. 계모의 계략에 넘어간 것으로 얘기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상황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배좌수가 최악의 인물이다. 그러나 모든 잘못을 계모에게로 넘기고, 배좌수 자신은 아무런 문제없이 새 장가를 들고 자식도 낳아 행복하게 산다. 유교적 가부장제의 단면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괴담이지만, 유교적 질서는 결코 파괴할 수 없는 사회적 터부에 해당된다.

그러나 유교적 질서라 해도 가족이 아닌, 공(公)으로서의 관에 대한 불신은 〈장화홍련전〉을 통해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신임 사또들은 부임 첫날 장화·홍련을 보는 즉시 숨진다. 억울한 사정을 전해주려 하지만, 사또들은 두 귀신의 얘기도 듣지 못한 채 공포 속에 저세상으로 간다. 서민들의 얘기를 들어주지 못하는 조선시대 공직자들에 대한 반감이나 저주가 장화홍련 스토리에 배어있다.

일본 괴담 가운데 공(公)으로서의 관(官), 즉 공직자나 정부조직원이 관여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보통 서민들이 괴담의 중심에 서 있고, 사무라이 정도가 최고 지배층 역할을 맡는 정도다. 에도가 임명한 공직자나 막부 관계자가 괴담에 등장해 살해되거나 피해를 입는 예는 거의 없다. 일본인이라 해서 관원에 대한 반발이나 원망이 없었을 리 없다. 그러나 사또의 죽음처럼 지배계급을 건드릴 경우 이후 엄청난 책임이 뒤따를 수 있다. 감히 관원을 괴담 속의 소재로 올리지 못한다.

〈장화홍련전〉에서 신임 사또의 죽음이 대수롭지 않게 다뤄진다는 것은 조선시대 관료체제를 읽을 수 있는 단서(端緖)에 해당된다. 관원을 괴담 속에 활용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체제였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워낙 행정장악력이 느슨했기 때문에 경계나 단속도 허술했다는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주변이 살벌하고, 자신의 위치가 불안하다고 느낄수록 괴담에 빠질 것을 권한다. 죽이고 살리는 피투성이 괴담이 아니라, 공포라는 요소를 개입시켜 만든 권선징악으로서의 괴담이다. 괴담 속의 악당이 행하는 반인륜·반도덕적 행동을 자세히 지켜보기 바란다. 괴담 속 주인공이 우리 주변, 아니 내 가슴속에 없는지 자문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더불어 그 같은 악당에게 닥칠 귀신들의 복수와 하늘의 천벌을 확신, 확인하기 바란다. 자신의 잘못은커녕 변명과 핑계로 일관하는 악당에게 닥칠 영원한 공포를 믿고 또 믿어보자. 사이비 유언비어 괴담으로 선(善)이 꼬리를 감춘 곳이 2014년 여름의 대한민국이다. 뜨거운 여름을 녹여줄, 악당에게 첫 벌을 내려줄 진짜 납량 괴담이 아쉽다.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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