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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회담 직전 평화계획 발표 … 푸틴의 교란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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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4일 개막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을 계기로 각국 정상들이 우크라이나 대책회의를 열었다. 왼쪽부터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웨일스 로이터=뉴스1]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휴전 논의를 놓고 그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거듭해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깨 온 탓이다.

 3일 푸틴 대통령은 몽골 방문 중에 기자회견을 열고 “(양측이) 군사작전을 끝내야 한다”며 사태 해결을 위한 평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한 ▶교전 및 공습 중단▶인질 교환▶피해 복구▶정전 감시단 파견 등 7개 조건도 제시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가 “(푸틴의) 연극적 재능은 실패한 적이 없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반응은 차갑다. NYT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없는 발표였을 뿐 아니라 시점도 의심을 살 만하다고 보도했다.

 에스토니아를 방문 중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예전에도 합의가 지켜지지 않은 적이 많아 판단하기 이르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지난 6월 페트로 포르셴코 대통령이 휴전을 선언하고 친러시아 반군이 휴전에 동참했지만 열흘 만에 깨졌었다. 이 기간 중 러시아가 반군을 지원하기 위해 무기와 병력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의 평화계획 발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정부의 “영구 휴전 합의” 발표를 반박한 지 몇 시간 만에 이뤄졌다. 러시아는 “분쟁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휴전에 합의할 수 없다”고 합의 사실을 부인했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평화 정착을 촉진하기 위한 행보에 대한 상호 이해에 도달했다”고 발표를 수정해야 했다. NYT는 당사자가 아니라면서 이에 모순되게 평화 계획을 발표한 것 자체가 의도를 가진 행보라고 봤다. “키예프에 협상해야 한다고 압력을 넣으면서 결론은 모스크바에 달렸다는 걸 주지시키려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에스토니아에서 연설하기 불과 몇 시간 전이었던 발표 시점도 의구심을 낳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의 개막을 앞둔 시점이기도 했다.

 영국 웨일스에서 4일(현지시간) 이틀 일정으로 개막한 나토 정상회담은 러시아 성토장이 되고 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회담장에 도착해 기자들과 만나 푸틴의 제안을 “소위 ‘평화 계획’이라는 그것”이라고 폄하하며 “나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병력을 철수할 것을 계속 요구한다”고 압박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 용인하기 힘든 군사행동을 멈추지 않으면 대러 압박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토 회원국 정상들은 이번 회담에서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신속대응군 창설을 포함한 동맹 강화를 논의할 예정이다. 푸틴 대통령이 평화 계획을 발표한 것은 이를 앞둔 물타기 용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NYT는 “크레믈린의 장기적 목표는 우크라이나 내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나토 가입을 막는 것”이라고 전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4일(현지시간) 나토 정상회담 시작을 몇 시간 앞두고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반대 의사를 재차 밝혔다.

 우크라이나 내에서의 반응은 엇갈린다. 국민들은 “이런 식의 협상만으로도 진전이다”라고 보지만 의심을 거두지 않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아르세니 야체뉵 우크라이나 총리는 “국제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시도”라며 “우크라이나를 무너뜨리고 옛 소련을 부활시키려는 게 그의 진짜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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