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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차관 만난 위안부 할머니 "대통령이 얘기좀 해주세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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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통령이 아베(일본 총리)와 만나서(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해) 말 한 마디라도 해주시면 좋겠어요.”(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납득하실 만한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기 위해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하겠습니다.”(조태용 외교부 1차관)

추석 연휴를 목전에 둔 4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 있는 위안부 피해자 쉼터 ‘우리집’. 김복동(89) 할머니가 명절 인사 차 쉼터를 찾은 조태용 차관에게 “우리 정부가 움직여도 일본이 묵묵부답”이라며 억울한 심정을 호소했다. 당초 8월에 열리는 것이 수순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국장급 4차 협의가 명절을 넘겨서야 열린다는 소식에 김 할머니는 더욱 답답해 하는 모습이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운영하는 이 곳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3명이 기거하고 있다. 하지만 2명은 건강 악화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라 김 할머니만 조 차관을 맞았다.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정의가 구현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조 차관은 김 할머니에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께서 노력하셔서 (이 문제가)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 인권 문제로 공론화되고 있다”며 “일본과 잘 협상해서 할머님들이 납득하실만한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기 위해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김 할머니는 “우리 정부가 움직여도 (일본은) 아직도 묵묵부답”이라며 “대통령이 말 한마디라도 해줘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대통령이 아베와 제대로 말하는 걸 아직 못봤는데 대통령이 움직여 주셔야 한다”고 했다.

이에 조 차관은 “위안부 문제가 잘 풀리면 아베 총리를 만나서 말씀하시겠지만, 지금 일본이 성의 없이 나오는 상황에서 만나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며 “할머니들이 만족하실만한 결과를 위해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이 한일관계 개선의 시작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조 차관은 또 최근 퇴임을 앞둔 나비 필레이 유엔 인권문제 최고대표가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일본 정부에 영구적 해결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한 일을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정부에)고맙다는 말을 아직은 못하겠다”며 “할머니들이 한사람 한사람 돌아가시고 있는 만큼 좀 더 정부가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 차관은 면담 도중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노란색의 나비 모양 배지를 받아 양복에 달기도 했다. 지난달 명동대성당 미사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 배지를 단 채 미사를 집전했다.

30분간의 면담을 마친 조 차관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방문은) 저희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시작한 것”이라며 “지난 1월 설을 앞두고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은 것처럼 앞으로도 위안부 문제의 중심에 있는 할머니들과 계속 소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루 전인 3일에는 외교부 공직자들 아내들의 모임인 ‘부인회’가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기도 했다.

조 차관은 4차 한·일 국장급 협의와 관련해서는 “서로간 타결을 목표로 더 본격적인 협의가 될 수 있게 일본측이 구체적인 입장을 가지고 나오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달 중 한·일 국장급 협의를 개최하고 이어 한·일 차관급 전략대화를 열 방침이다.

조 차관은 “위안부 문제 해결은 과정부터 국민과 함께 하는 것으로 그 중에서도 위안부 할머니와 관련시민사회와 소통이 필요하다”며 “국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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