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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방탄' 없다더니 … 야당도 14명 이상 동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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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철도 부품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송광호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다. 투표가 시작되자 송 의원이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있다. 이날 투표에는 총 223명의 의원이 참가했으며 찬성 73·반대 118·기권 8·무효 24표가 각각 나왔다. [김형수 기자]

3일 오후 4시 국회 본회의장. 국회사무처 직원에게 송광호(제천-단양·4선) 새누리당 의원의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를 받아든 정의화 국회의장의 눈이 커졌다. “총 투표수 223표 중 찬성 73표, 반대 118표, 기권 8표, 무효 24표로 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본회의장엔 일순 침묵이 흘렀다. 발표 직전 개표 상황을 참관하던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옆에 서 있던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손을 잡으며 미소를 짓자 최 의원이 이를 뿌리치는 모습도 보였다.

 여당은 ‘예상치 못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표결 직후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며 서둘러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방탄국회는 없다”고 공언해온 김무성 대표도 당황해했다. 민생탐방차 동대문 디자인플라자를 방문한 그는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도 “의원 각자가 판단한 문제라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만 했다.

 야당인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 책임론을 제기했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은 본회의 직후 “새누리당이 두 얼굴을 가진 정당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당초 박 위원장은 본회의 직후 인천에서 세월호 일반인 유가족과 면담할 예정이었지만 취소했다. 의원총회에 참석해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유은혜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김무성 대표가 나서서 방탄국회가 없다고 공언했는데 행동으로는 조직적 부결을 감행했다”며 “자당 의원 보호를 위해 국민 앞에 한 약속을 정면으로 뒤집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야당 역시 표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회사무처 의사과에 따르면 본회의 최초 참석인원은 새누리당 136명, 새정치연합 114명, 정의당 5명, 국회의장 등 총 256명이었다. 송광호 의원 체포동의안 투표 결과가 찬성 73표에 반대와 무효·기권표를 합쳐 모두 150표였던 걸 감안하면 14명(150-136) 이상의 야당 의원들이 송광호 의원 체포동의안에 반대 또는 기권·무효표를 던진 셈이다. 김재원 수석부대표가 “일방적으로 우리당을 비난하는 건 달리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반면 일부에선 예견했던 결과라는 반응도 나왔다. 여야 모두 당론 없이 자유투표를 했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무기명 비밀 투표여서다. 송 의원은 본회의 한 시간 전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입장하는 의원들에게 편지를 나눠주며 읍소했다.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선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이 사망하거나 구속돼 활동을 못하면 유권자들의 권리가 침해되기 때문에 국회 회기 중엔 풀어주게 돼 있다”(이인제 의원), “나도 검찰 수사를 받아봤지만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한 불구속수사를 해야 한다”(박덕흠 의원)는 등 감싸기 발언이 이어졌다.

 송 의원이 표결 직전 본회의 신상발언에서 “검찰 수사에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성실하고 당당하게 응할 테니 동료 의원들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고 호소한 것도 결과적으로 효과를 봤다.

 여당이 주도하고 야당이 협조한 합작품이었지만 양측은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새누리당에선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조직적으로 반대표를 던져 (새누리당을) 곤경에 빠뜨렸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자 새정치연합 한정애 대변인은 “새누리당 일각에서 억지 주장이 유포되고 있다. 멈추지 않으면 진원지를 추적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맞받았다.

 송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소식을 들은 검찰은 “불체포특권을 악용한 방탄국회임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상범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정치권이 국민에 약속한 대로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고 법원의 판단을 받는 게 옳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검찰 관계자는 “세월호 대치정국으로 싸우던 여야가 비리 혐의로 수사받는 동료 의원 한 명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모습을 국민들이 어떻게 이해하겠느냐”고 말했다. 국회에서조차 “19대 국회 하반기 들어 법안 한 건 처리하지 못했는데 의원 체포동의안은 재빨리 부결시킨 데 대해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것“(한 영남의원)이라는 말이 나왔다.

글=이지상·김경희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뉴스1·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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