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인생 마지막 5분, 차미네이터가 왔다

중앙일보

입력 2014.09.04 01:26

업데이트 2014.09.04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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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차두리가 2년10개월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어느덧 대표팀에서 두 번째 고참이 된 차두리는 훈련장에서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 [파주=뉴시스]

‘Irgendwann kommt das Ende’. ‘언젠가 끝이 온다’는 뜻의 독일어. 2년 10개월 만에 축구대표팀에 재승선한 차두리(34·FC 서울)의 카카오톡 문구다. 이번에 단 태극마크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각별한 마음이 담겨 있다.

 차두리는 5일 베네수엘라(부천종합운동장), 9일 우루과이(고양종합운동장)와 평가전에 선발 출격할 것으로 보인다. 차기 사령탑을 찾지 못해 임시 감독을 맡은 신태용(44) 대표팀 코치는 3일 “두리는 요즘 K리그에서 젊은 선수들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뛴다. 공격은 이동국(35·전북), 수비는 두리가 이끌 것”이라고 예고했다.

 2001년 처음 태극마크를 단 차두리는 축구 선수로 이룰 것을 거의 다 이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원정 16강을 경험했다. ‘차미네이터(차두리+터미네이터)’라 불리며 팬들의 뜨거운 사랑도 받았다. 어느덧 월드컵 4강 멤버 중 마지막 남은 대표선수가 됐지만 대표팀을 향한 그의 애정엔 변함이 없다.

 A매치 65경기를 뛴 차두리는 허정무(59)·조광래(60) 전 대표팀 감독 시절 부동의 오른쪽 수비수였다. 하지만 2011년 12월 이후 최강희(55)·홍명보(45) 전 감독 체제에서 외면당했다. 홍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에서 오른쪽 풀백과 베테랑의 부재를 절감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차두리의 빈 자리가 컸다.

 브라질 월드컵 알제리전 참패를 해설위원으로 지켜본 차두리는 “선배들이 실력이 안 돼 못 뛰어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1무2패로 탈락한 홍 감독을 축구협회가 유임시키겠다고 발표하자 SNS에 “98년에는 왜??? 혼자서…”란 글을 남겼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성적 부진으로 현장에서 경질된 부친 차범근(61) 감독을 빗댄 표현이었다.

 2년 전 독일에서 만난 차두리는 “내 축구 인생을 경기에 비유하면 후반 40분 3대5로 지고 있다. 내 축구 인생이 승리로 끝난다는 건 아버지를 이기는 거다”며 “월드컵 4강과 원정 16강에 힘을 보탰으니 그래도 3골은 넣은 것 같다. 혼신의 힘을 다해 4-5를 만들면 져도 팬들이 박수를 쳐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다짐대로 차두리는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박지성(33)과 이영표(37) 은퇴 후 태극마크에 대한 책임감은 오히려 더 커졌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98골을 넣은 아버지를 넘어서는 건 힘들지만, 축구 인생 4-5를 만들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차두리는 올해 소속팀 서울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와 FA컵 4강 진출에 한 몫 단단히 했다. 절친인 배성재 SBS 캐스터는 “차범근은 33살에 한국인 유럽 빅리거 최다골(17골)을 넣었다. 차 부자는 서른살이 넘으면 전성기가 오는 DNA가 있나 보다”라며 “두리는 요즘 경기를 뛰면 3㎏씩 빠지지만, 복근은 여전히 탄탄하다”고 말했다. 최용수(41) 서울 감독도 “두리는 경기를 거듭할수록 경기력이 살아난다”고 놀라워했다. 에이전트인 추연구 C2글로벌 이사는 “두리는 부친의 탁월한 피지컬을 물려받았다. 시즌 중에는 탄산음료도 입에 안 대고, 집과 훈련장만 출퇴근한다”고 말했다.

 이동국에 이어 대표팀 두 번째 고참이 된 차두리는 지난 2일 소집 때 대학생처럼 야구모자를 쓰고 입소했다. 훈련 때는 자신을 삼촌이라 부르는 13살 후배 손흥민과 술래잡기를 하며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했다.

 차두리는 대표팀 소집 전 “한국 축구가 퇴보하지 않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 선수 생활을 마칠 때까지 태극마크를 노리겠다”고 말했다. 3일 인터뷰에서는 “사실 대표팀이 (내가) 와도 되는 자리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고참이 경기력이 안 되면 짐이다. 언제까지 선수생활을 할지 정해놨지만 아직 말을 안했을 뿐이다”고 비장한 출사표를 던졌다.

 차두리는 현역 은퇴 후 독일로 건너가 지도자 공부를 할 계획을 세워놨다. 내년 1월 호주 아시안컵을 끝으로 은퇴할 수도 있지만 FC서울에서 1년 더 뛸 가능성도 있다. 그 전에 우루과이와 리턴매치가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에서 한국을 2-1로 눌러 차두리를 펑펑 울게 만든 팀이다.

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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