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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묻고 복거일 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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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 사회를 ‘시장의 결핍’으로 진단해온 복거일 작가를 ‘시장의 다른 얼굴’을 경계해온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가 만났다. [신인섭 기자]

몇 년 전 타개하신 박경리 선생은 어린 시절 흥겨웠던 시장의 풍경을 축제처럼 묘사했다. 시장은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슬픔과 기쁨을 주고받는 장소다. 그 시장이 마을과 가정 깊숙이 스며들어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을 명령할 때 전장(戰場)이 싹튼다(박경리, 『시장과 전장』). 작가는 정상궤도에서 이탈하는 사회를 꾸짖는 ‘예외적 개인’이라면 독점, 파행, 부정과 불합리로 얼룩진 한국사회를 ‘시장의 결핍’으로 진단해온 작가가 복거일이다. 보수주의 대표작가인 그에게 시장은 신이 내린 선물이지만 이기적 인간들이 결코 제대로 간수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문명 유산임을 외면하는 게 안타깝다고 그는 힘줘 말한다. 시장의 다른 얼굴을 항상 경계해온 사회학자로서 나는 어정쩡하게 동의했다. 시장의 탐욕을 다스릴 유일한 권력체인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시시해졌기 때문이다. 대선공약을 일부러 잊어버린 정부라면 차라리 탐욕스러운 시장이라도 창궐하도록 놔두는 편이 좋을지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송 : 병환이 깊으신 것으로 아는데 ‘펜이 암보다 강하다’고 말하는 의지가 어디서 나와요?

 복 : 그것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죠. 홍성원·이승윤 선생님의 투병생활을 목격했어요. 치료보다는 집필에 몰두하는 게 낫겠다는 결심이 섰죠. 그랬더니 홀가분하더라고요. 작가라는 게 생각보다 심각한 직업이구나 싶었죠.

 송 : 선생님은 글이 존재감인가요? 지금은 언어가 보이세요, 아니면 논리가 승하나요?

 복 : 글이 모든 것이죠. 저는 언어와 논리가 합쳐지는 것 같아요. 저는 모든 것을 이야기로 파악하거든요. 생명체는 유전자 속에 각인된 이야깁니다. 그걸 풀어내고 싶지요.

 송 : 선생님은 평소에 ‘자본주의야말로 가장 선한 것이다’ ‘자유주의야말로 진리다’라고 주장하셨어요. 그런데 이 확신이 허상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복 :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판단해서 그 명제는 거의 증명됐다고 봐요. 하지만 지구의 생태계가 진화해온 것처럼 더 나은 사회가 올 수 있겠죠. 미래는 미지의 영역이니까 알 수 없지만 사람 지능이 벌집 형태가 아니기에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가 가장 낫다고 보는 거죠.

  송 : 시장이란 자기 책임을 투하하고 자기 책임하에 선택을 하는 거죠. 그런데 그 책임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과 행사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눠질 경우에 문제가 발생하겠죠. 근대의 사회사상과 경제사상이 씨름했던 문제죠. 교환행위에 잠재된 모순과 부정의를 교정하는 게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최대의 쟁점입니다. 제가 사회학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복 : 자연 자체가 불평등해요. 불평등하지 않은 세상이라면 생명체가 태어날 수 없어요. 진화의 법칙 자체가 불평등이거든요.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날 때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많은 변이를 생산해 내잖아요. 인간에 특유한 도덕 감정은 그 불평등을 줄이려는 의지입니다. 그런데 평등 실현은 자연의 진화과정과 어긋난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현 사회가 불평등하고 불완전한 것이긴 하지만 거꾸로 이만큼 된 게 어디냐, 하는 감탄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송 : 그 말씀은 저도 이해가 됩니다.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공통점이 있어요. 사람들이 자기 일에 충실할 경우, 남의 것을 탐하지 않을 경우 그 진화의 정의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시장은 상호호혜, 재분배기능을 파괴했고 교환 기능만 남겨놨어요. 자본주의는 정의롭게 출발했지만 탐욕의 역사가 됐죠. 지난번 교황이 ‘나는 빈자의 대부’이고,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해 ‘저항하라’고 말했어요. 시장에 잠재된 또 하나의 얼굴, 모순과 폭력의 가능성을 경계하라는 말일 텐데요.

 복 : 시장개념이 달라서 그래요. 시장은 상호적 이타주의 아닙니까. 자기이익을 위해 협력한다는 거죠. 시장에서는 위계질서가 없어요. 대등해요. 자유로운 거래를 통해 이문을 남겨요. 그게 인류 문명의 발전의 원동력이거든요. 거래가 많을수록 생활은 풍요로워져요. 거래를 원활하게 하는 안전장치가 정부죠. 정부와 시장 관계는 대립적이 아니라 보완적입니다. 시장이 확대될수록 정부의 억압, 비효율은 줄어듭니다.

 송 : 일견 동의하면서도 근대사상가들의 노력을 너무나 한쪽으로 밀어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복 : 길게 보면, 시장이 활발해질수록 더 평등해졌고, 부도 전반적인 수준이 향상됐고 문명발전이 이뤄졌다고 볼 수가 있죠.

 송 : ‘나는 항상 빈자와 더불어 산다’는 교황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세요?

 복 : 종교적 차원에서는 옳은 말씀인데 현실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송 :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는 그런 말을 안 하잖아요. 예컨대 ‘교회는 가난해야 된다’ ‘스스로 청빈하게 살아라’ 이렇게 얘기를 안 하잖아요. 혹시 복 선생님은 무신론자세요?

 복 : 진화론자니까 신을 도입할 필요가 없죠. 신은 개념으로서 쓸모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어쨌든 제가 종교를 잘 모르지만 한국 교회가 유난히 부패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모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부패합니다. 왜냐하면 사제 집단은 신도 집단에 대해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는 조직이거든요. 독점이 생기면 당연히 문제가 생기죠. 뭐 권력이든 뭐든 문제가 생겨요. 교황 말씀은 감동적이지만 기독교에서 그 말씀이 없다고 한국 교회가 유난히 부패했다고 보지는 않아요.

 송 : 저는 한국의 기독교가 종교개혁에서 많이 이탈했다고 봐요. 루터는 신과 신도 사이에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고 칼뱅은 청빈과 도덕을 강조했죠. 그런데 ‘우리 청빈한 교회를 만듭시다’라고 얘기하지 않죠.

 복 : 종교를 경제학적 틀에서 보면 서비스업입니다. 교회의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다는 조건 하나만 허용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 불교 다 번창하잖아요. 그건 그만큼 그 종교가 서비스를 잘하는 거 아닌가, 그럼 그거로 되는 거 아닌가요.

 송 : 기독교와 불교가 교황만큼 감동을 못 줬다면 국민들에게 정신적인 서비스를 잘 못 했다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복 : 교황께 대한 열광과 팝스타에 대한 열광이 비슷한 면이 있어요. 팝스타에 열광하고, 열창하고, 그런 마음하고 다를 바가 없어요. 우리 국민들이 지금 여러 가지로 답답하고 뭐 지도자도 안 보이고 하니까요. 이런 차에 교황의 언행이 멋지니 감동받은 거 아닌가 싶어요. 심리학자가 측정해보면 똑같은 그래프가 나올 것 같은데요, 뇌파 같은 것이.

 송 : 제가 교황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한국사회와 정치의 답답함 때문입니다. 첫째, 정신세계가 빈곤하다, 둘째, 정치권에서 해결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보수정권도 보수이념 자체를 놓치고 있다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보수론자이신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복 : 현대사회에서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적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너무 커서 어디로부터 손댈지 모른다고요. 정권도 짧고요. 5년 중에서 처음 준비기간과 마지막 레임덕 빼면 3년 채 안 되거든요.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지 정권이 무슨 책임이 있어요? 군대 문제만 해도, 예전에는 그냥 눈감았던 것이 이제는 터진다는 얘기입니다. 사회가 그만큼 자유로워지고 억압적인 기제가 줄어들었어요.

 송 : 군 책임자를 국회에서 야단치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국민소득 2만5000달러 시대로 진화한 상태에서 그런 문제가 터지는 것은 곤란하죠.

 복 : 지금 업그레이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기회에 군대가 사뭇 나아지겠지요. 현 정권이 어떠냐 했을 때 제 답변은 그거죠.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적다는 것. 책임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고, 할 수 있는 게 적다는 것도 우리가 인식을 해야 합니다.

 송 : 그래도 현정부가 할 일이 있겠지요? 무엇을 제언하고 싶나요?

 복 : 경제민주화 같은 좌파정책을 일찍 폐기해야 합니다. 그건 시장경제라는 기본 구조와 운용 방식에 어긋나기 때문에 실험이 불가능해요. 안 돼요. 경제는 그리고 시장은 지금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거예요. 기업을 옥죄는 법안들이 어떻게 입법이 될 것인가 가만히 눈치만 보고 있는 겁니다. 외교도 그래요. 중국이 우리를 압박하는데 전략 없이 대하고 있죠. 일본과는 전략 없이 사이가 멀어졌잖아요. 이거 큰 문제죠. 일본과 우리 사이가 나빠지면 우리가 거의 일방적으로 손해를 봐요. 그걸 다 아는데 국민들의 낭만적 애국심에 편승해서 득 될 게 없죠.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좀 실망스럽죠. 사실 저 같은 우파 지식인이 비판해야 돼요. 그래야 그나마 사람들이 설득력이 있다고 느끼겠죠.

 송 :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어느 수준까지 추진해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만, 외교가 실속이 없다는 지적에는 동의합니다. 현 정부가 가야 될 길을 제대로 가고 있나요?

 복 : 보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의 이념과 체제를 지향합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가 공감대를 이루지만, 그 경계선을 어떻게 설정하는가로 대립하고 있어요. 보수정권은 시장을 확산하는 것이 주 임무죠. 이것이야말로 도덕심을 기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송 : 시장을 활성화시켜라, 그거군요.

 복 : 시민사회가 스스로 못하는 것을 자꾸 전가하는 모습도 많이 보이거든요. 세월호 사태를 봐도 협상이 자꾸 결렬되는 것은, 사실은 이제쯤은 유족들이 조금은 뒤로 물러날 때가 됐다, 그리고 국가가 하는 걸 좀 보고 있어라 하는 얘기도 좀 하고 싶은, 뭐 유족들이 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도 들고요. 그러니까 모든 것을 다 국가가 책임지게 하는 것은 성숙한 시민사회의 입장으로 보면 조금 탈피할 때가 됐다는 거죠.

 송 : 알겠습니다. 앞으로 더 건필하시고요. 건강하게 계속 뵀으면 좋겠습니다.

글=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사진=신인섭 기자

복거일은 …

1946년 충남 아산 출생. 소설가·시인·사회평론가·경제칼럼니스트.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은행·기업·연구소 등에서 일하다 87년 장편 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를 발표하며 문단 데뷔. 넉넉한 보수의 은행을 그만둔 이유는 오롯이 책 읽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어서였다. ‘과학·미래 소설’ ‘대체 역사 소설’ 등을 써내며 문단에서 독보적 위상을 확보했다. 경제 문제를 비롯한 시대적 과제에 대해 소신을 밝혀온 ‘보수 논객’으로도 유명하다.

‘영어 공용화’ 제안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원화 대신 달러를 통화로 채택하자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올해 3월 소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를 통해 자신의 암 투병 사실을 알리며 항암 치료를 하지 않은 채 글쓰기에 매진하겠다고 해 화제가 됐다.

시집 『오장원(五丈原)의 가을』, 장편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 문학평론집 『세계환상소설 사전』, 사회평론집 『현실과 지향』,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등이 있다.

[대담 후기]
지식인은 자기 책임으로 살아야
그의 유전자엔 뚜렷한 신념 각인

그의 표정에 암의 흔적은 없었다. 확신에 찬 그의 말투에 병색이 침투할 틈이 없었다. 글 쓸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생물체로서 인간이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라면 성배처럼 받겠다는 단호함이 엿보였다. 시장과 자기 책임을 얘기하는 대목에서 필자는 그 늠름함이 발원한 진원지를 알았다. 지식인은 자기 책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선학들의 신념이 그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음을 말이다.

 1987년 ‘경성, 쇼우와 62년’이란 부제를 달고 나온 그의 첫 소설 『비명을 찾아서』가 던진 충격을 독자들은 아직 잊지 못할 것이다. 박씨 가문의 후손임을 나중에 알게 된 일본인 주인공 기노시다 히데요가 겪는 번민을 작가로서 그는 아직 다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그가 계속 집필 중인 ‘역사 속의 나그네’가 그 미완의 업무를 완수할 것일 터. “길이 있는 한 도망자가 아니라 망명객이다”는 히데요의 다짐처럼, 그는 책임완수와 동시에 생명의 터전으로 복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