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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질환으로 악화되는 연결고리 끊기에 초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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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호 08면

2015년 전 세계 인구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신전염병’ 비만(세계보건기구·WHO). 21세기 비만 인류를 구해낼 히어로는 어디 있을까. 비만 치료가 진화하고 있다. 식사·운동 처방을 넘어 지방을 축적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유전자·세포·미생물·단백질을 밝혀내고 이를 정밀하게 조작하려는 연구가 치열하다.

21세기 ‘신종 전염병’ 비만 퇴치 연구 어디까지

 비만의 원인은 간단하다. 칼로리 섭취가 사용량보다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같은 양을 먹어도 살이 더 찌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은 양을 먹어도 포만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건강한 비만도 있다.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김효수 교수는 “비만이 문제가 되는 건 동맥경화·당뇨 같은 또 다른 대사질환으로 악화하기 때문인데, 체질량지수(BMI·Body Mass Index)로는 비만이지만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비만 치료 연구가 복잡한 이유다. 음식을 섭취하고 영양소가 몸에 흡수·축적되며 에너지가 소모되는 전 과정, 비만이더라도 다른 연관 질환으로 악화하는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 현재 비만 연구의 대상이다.

식욕 조절 치료제 개발 단서 발견
비만 자체를 치료하기 위한 연구는 크게 세 가지. 연세대 의대 생명공학과 김재우 교수는 “체내 영양소가 전달·축적·소비되는 흐름을 이해하고, 그 흐름을 바꾸어주는 방향을 찾는 것이 연구의 핵심”이라며 “위 과정 중 어느 부분이든 억제를 했을 때 실험 동물에서 체중이 감소하고, 포도당을 처리하는 능력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첫째, 식사를 조절하는 인자다. 김재우 교수는 “밥을 먹으면 지방세포에서 분비돼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렙틴호르몬의 발견(1994) 이후 식욕을 조절하는 인자와 기전을 밝혀내려는 연구가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렙틴호르몬을 인지하는 건 뇌 시상하부의 섬모다. 이 섬모는 ‘배가 부르다’는 몸의 신호를 수신하는 일종의 안테나 역할을 한다. 이 섬모의 길이가 짧을수록 포만감을 감지하지 못한다는 연구(가천대 이봉희·서울아산병원 김민선 교수팀, 2014)가 있다.

 이 외에 렙틴 작용을 촉진하는 단백질인 로키나제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유전자를 제거한 실험 쥐는 평균 체중이 30%나 급격히 불어났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식욕을 조절하는 치료제 개발에 단서가 되는 발견이다.

 둘째, 영양소를 흡수하고, 지방세포를 생성하는 데 관여하는 인자다. 대표적인 것이 장내 미생물이다. 100조 개가 넘는 장내 세균 중에는 먹은 음식을 지나치게 잘 분쇄해 영양분을 과하게 만들어내는 비만세균이 있다. 또 다른 비만세균은 독소가 있어 염증을 일으켜 지방세포의 분화를 촉진한다.

 최근 밝혀진 ‘Dexras1’유전자는 지방세포 분화의 중심축인 스테로이드 호르몬(당질코르티코이드)을 조절해 비만의 초기 발병을 억제·제어할 수 있는 표적물질로 제시됐다(연세대 의대 김재우·김효정 교수팀, 2014). ‘Dexras1’ 유전자를 제거한 실험 쥐의 내장지방·지방세포의 크기가 작아진 것이다.

 셋째, 에너지 사용에 관여하는 인자다. 대표적인 것이 갈색 지방이다. 지방의 유형에는 백색 지방과 갈색 지방이 있다. 김재우 교수는 “갈색 지방에는 에너지 소모를 촉진하는 짝풀림단백질이 백색 지방보다 많아 지방을 더 빨리 연소시킨다”고 말했다. 대구대 생명공학과 윤종원 교수는 “갈색 지방은 어린아이에게만 있고 성인에게는 없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2009년 성인의 목 주변에서 발견돼 2010년부터 비만 연구의 새로운 관심사로 부각됐다”고 말했다.

 최근 백색 지방 내에 존재하는 갈색 유사조직(베이지색 지방)을 조절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윤 교수는 “백색 지방을 베이지색이나 갈색으로 바꾸도록 유도(browning)하면 에너지 소모를 촉진할 수 있는 원리”라며 “갈색 지방을 활성화하면서 동시에 백색 지방의 일부를 갈색 지방으로 변환하는 물질과 기전을 찾는 연구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에너지 소모 빠른 갈색지방 연구
비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동맥경화 같은 대사증후군으로 악화하기 때문이다. 김효수 교수는 “비만이더라도 대사증후군 같은 질병으로 진행하는 메커니즘을 차단하고, 약물로 예방하는 것이 또 다른 비만 연구의 목표”라고 말했다.

 비만이 다른 질병을 유발하는 기전 중 하나는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염증 물질이다. 리지스틴호르몬이 단핵구 세포(백혈구 세포의 일종)에 달라붙으면 만성 염증 세포로 변이시킨다. 단핵구세포에는 리지스틴호르몬이 달라붙을 수 있도록 접착제 역할을 하는 ‘Cap1 단백질’이 있다. 김효수 교수는 “접착물질인 캡 단백질을 억제하면 리지스틴이 결합하지 못해 만성 염증 반응이 줄고, 다른 질병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기름진 것을 많이 먹더라도 지방 염증이 감소하면 대사증후군 현상이 완화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제 식욕·운동과의 고통스러운 싸움 없이도 비만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걸까. 망가진 퍼즐 조각을 쏙 빼내고, 정상 조각으로 갈아끼우면 문제가 해결될까. 김재우 교수는 “한 가지 인자는 비만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체내의 다른 정상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윤종원 교수는 “지방이 축적·연소되는 과정에는 다양한 유전자와 단백질이 관여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다”고 말했다. 특정 유전자·단백질 한두 가지를 표적 치료한다고 해서 비만이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다.

 특히 고지혈증·당뇨병·동맥경화 같은 대사질환은 치료뿐 아니라 예방을 목적으로 장기간 약을 투여해야 해 작은 부작용도 있어서는 안 된다. 윤종원 교수는 “지금까지 개발돼 시판되고 있거나 시판된 적이 있는 비만치료제는 지방 흡수를 인위적으로 방해하거나 식욕을 인위적으로 감퇴시키는 원리를 이용해 부작용이 심각했다”고 말했다.

 현대인의 유전자가 살이 잘 찌도록 진화한 것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김효수 교수는 “척박한 환경에서 인간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고 많이 저장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고 말했다. 지방을 잘 축적하는 사람이 살아남은 셈이다. 김재우 교수는 “지금처럼 영양소를 과다 섭취하는 시대에는 에너지 저장에 유리하도록 설계된 고리를 끊어줌으로써 영양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건데,그 고리가 무엇인지는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적당히 먹고 열심히 운동하는 인간의 의지는 비만을 극복하는 첫 단추라는 게 연구자들의 중론이다. 윤종원 교수는 “비만의 가장 큰 원인은 유전자보다 과식하는 습관과 운동 부족”이라고 말했다. 김재우 교수는 “식습관이 나쁘고, 운동이 부족할 때 우리 몸의 많은 유전자는 비만에 유리하도록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t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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