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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학연 소통·융합, 줄기세포로 난치병 퇴치 길 열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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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호 09면

생식의학에 줄기세포 성과를 접목해 맞춤형 배아줄기세포 치료제를 만들겠다는 차 회장.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선 세계 최초의 독자적인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차병원그룹]

차병원그룹의 성장은 세계 생식의학의 역사다. 의학계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불임 분야의 난제는 차병원의 연구진에 의해 돌파구를 찾았다. 미성숙 난자를 수정시켜 태아를 잉태시키거나 급속 냉동한 난자를 수정시켜 아기를 낳게 하는 연구업적은 생식의학 교과서를 새로 쓰게 했다. 국제학회에서 최우수논문상을 휩쓸고 불임 분야의 의료기술을 미국에 역수출하는 쾌거도 일궜다. 그 중심에 차광렬(63) 차병원그룹 총괄회장이 있다. 2011년 미국생식의학회(ASRM)는 줄기세포 및 불임 연구의 공헌을 인정해 ‘차광렬 줄기세포상’을 만들었다. 그의 국제적 위상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가 우리나라 의학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사건(?)을 일으켰다.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에 설립한 차바이오컴플렉스가 그것이다. 2000여 명의 연구진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줄기세포 허브다. 그는 과연 줄기세포 분야에서도 미래의학을 선도할 것인가. 현재 연구 관계자들이 속속 입주하고 있는 차바이오컴플렉스에서 차 회장을 만나 그가 꿈꾸는 바이오 입국(立國)의 청사진을 들었다.

‘바이오 입국’ 기반 다지는 차광렬 차병원그룹 총괄회장

1 CHA BIO Complex 전경. 2 파이프오르간이 있는 중앙휴게실. 병원연구동과 기업연구동이 만나는 소통의 공간이다. 3 지하 1층 강의실.

-현재 차병원그룹 총괄회장 자리도 버거울 텐데 차바이오컴플렉스의 초대 원장까지 맡았다. 이유가 있나.
 “7곳에 흩어져 있던 연구소를 한곳에 모았다. 입주가 끝나면 산학연 인력 2000여 명이 한곳에 집결한다. 이 건물에는 30년간 해외 현장에서 얻은 경험과 철학이 반영됐다. 바로 ‘소통’과 ‘융합’이다. 생식의학의 1인자와 암 분야의 1인자가 만나면 전혀 다른 신기술이 나오고, 또 다른 1인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 하지만 톱니바퀴가 물리기 전에는 이런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초기에 리더십을 확실하게 발휘해 ‘강제 융합’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설계부터 융합과 관련된 철학을 담았나.
 “그렇다. 유전체·의생명·암·줄기세포연구소와 동물실험센터, 차의과대학원, 제약, 바이오 계열사 등 산학연 기관이 이곳에 모인다. 건물 중심에 파이프오르간이 있는 만남의 광장이 있다. 이곳에서 병원 연구동과 기업 연구동이 이어진다. 음악을 들으며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토론하고, 실험하고, 산업화로 이어진다. 이런 유기적인 ‘원 테이크(one take)’ 연구소는 세계에서 우리밖에 없다. 미국 하버드대에도 기초와 임상의학 건물이 도로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는데,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심리적 거리가 멀다. 기초의학 연구원은 질병이나 임상을 모르고, 의사는 주변 학문이나 약에 대해 지식이 부족하다. 그 간격을 좁혀야 의료 발전 속도가 빨라진다. 차병원은 연구중심 병원이다. 연구 관련 교수는 외래에서 이틀만 환자를 보고, 나머지 시간엔 이곳에서 연구를 한다. 나는 의료 민영화보다 산업화에 관심이 많다.”

 -연구소라기보다 호텔처럼 쾌적하고 외관도 아름답다. 내부에는 수영장과 정원, 영화관, 헬스장, 게스트 하우스도 갖췄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멘디니가 설계해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 ‘창의적인 공간이 창의적인 생각을 낳는다’는 철학으로 나 역시 설계 단계부터 참여했다. 연구 건물이 집보다 편하게 느껴져야 한다. 설계에 4년, 짓는 데 3년여가 걸렸다. 게스트하우스엔 외국인 연구원이 한두 달 묵을 수 있다. 여기에 숙박하면 우리 연구원들과 더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는 것 아닌가. 개원 기념 국제심포지엄을 할 때 외국 연구진이 ‘정부가 지어줬느냐’고 묻는데 실은 사비를 털었고, 돈이 부족해 가구도 내가 직접 외국 다니며 싸게 들여왔다(웃음).”

 -차바이오의 강점은 무엇인가.
 “배아줄기세포 개발은 1998년부터 시작했다. 30여 년 쌓아온 생식의학 기술과 20년 가까이 줄기세포 연구를 함께 해온 곳은 우리밖에 없다. 차병원그룹만이 맞춤형 배아줄기세포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 이후에 정부 지원이나 대중의 관심이 크게 떨어졌다. 그럼에도 줄기세포 연구에 지속적인 투자를 한 배경은.
 “우리 몸은 다름 아닌 세포의 구성이다. 세포 단계에서 치료해야 한다. 줄기세포의 활용이 의학 패러다임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그런 확신이 있으니 투자하는 것이다. 최근 이곳 줄기세포연구소 이동률 교수가 성인 체세포를 이용해 체세포복제줄기세포주를 확립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다. 앞서 미국에선 태아·신생아의 세포주를 이용했다. 하지만 병에 걸리는 사람은 대부분 성인이다. 환자의 체세포를 이용해 맞춤형 줄기세포치료제를 만들어야 더 효과가 뛰어나다. 이번 실험은 미국 LA에 진출한 우리병원(할리우드 장로병원)에서 했다. 우리나라는 생명윤리법 적용이 미국보다 엄격하다.”

 -세계적으로 줄기세포 연구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나.
 “임상시험이 세계적으로 3000여 건가량 진행되고 있다. 현재 우리도 10여 건 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20건까지 늘릴 계획이다. 배아줄기세포와 함께 유도만능줄기세포(iPS), 제대혈줄기세포와 태반줄기세포 같은 성체줄기세포 연구도 활발하다. 세포분화능력이나 면역거부반응, 성공률 등을 면밀히 따진 뒤 임상 활용 가능한 줄기세포군을 만든다면 조기 상업화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차병원그룹은 향후 어떤 연구를 진행할 계획인가.
 “미국 ACT사와 함께 스타가르트병(유전자변이에 의해 눈의 중심시력을 담당하는 황반에 이상이 생기는 망막질환)과 노인성 황반변성 환자를 대상으로 한국·미국·유럽에서 동시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배아줄기를 복제줄기세포로 바꾸고, 망막에 맞게 분화시키는 치료법은 우리만 보유한 기술이다. 1년 안에 결과가 나올 것이다. 제대혈 줄기세포를 이용한 뇌질환 치료, 또 태아줄기세포를 이용한 파킨슨병 임상도 진행중이다. 이밖에도 태반줄기세포를 가지고 치매환자 대상 임상시험을 곧 할 예정이다.”

 -국내 바이오산업(BT)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면.
 “국가의 R&D 전략을 바꿔야 한다. 초기 임상 단계에 있는 외국의 똑똑한 기술을 사서 산업화하는 것이 더 유망하다. 이렇게 하면 5∼10년 내에 미국의 하버드나 MD앤더슨을 뛰어넘을 수 있다. 특허 사냥꾼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 더 많은 CRO(임상시험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연구기금도 그렇게 써야 한다. 바이오산업은 전략산업이다. ‘최초’라는 명성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의 임상시험을 우리나라가 최초로 한다면 기술을 배우려는 연구진이나 투자자가 몰린다. 자연히 명성이나 경쟁력은 따라온다. 돈을 들여서라도 유망한 특허를 구입하고, 초기 임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바이오 산업에서 인재 육성 방안이 있다면.
 “바이오컴플렉스에는 차의과대학원이 지하에 있다. 최고의 교육은 성공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도 생식의학자에서 출발했다. ‘의사가 연구를 통해 성장할 수 있구나’ 하는 가능성을 느껴야 한다. 차의과대학은 설립 때부터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등록금을 받지 않는다. 철학이 중요하다. 죽어서 재산을 기증하는 것보다 살아서 투자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다. 내가 돈을 벌려고 했으면 2000억원의 설계·공사비로 1000병상의 병원을 지었을 것이다. 교육으로 인재 한 명만 키워도 세상이 달라진다. 또 바이오 분야의 연구원은 정직해야 한다. 난임 연구는 임신 여부로 성공을 확인할 수 있지만 줄기세포는 데이터가 기반이라 확인할 방법이 없다(웃음). 연구자 개인의 의지와 신념이 중요하다. 이런 부분도 함께 교육할 생각이다.”



유도만능줄기세포=체세포에 조작된 유전자를 주입해 배아줄기세포 같은 세포 생성 초기의 만능세포 단계로 되돌아간 세포로 역분화줄기세포라고도 한다.

대담=고종관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대표 정리=박정렬 기자 lif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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