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픈 경계인, 정대세

중앙일보

입력 2014.08.29 01:07

업데이트 2014.08.29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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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경계인(境界人). 재일동포 3세 축구선수 정대세(30·수원)를 설명할 때 등장하는 표현이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북한까지 3개국에 인연이 닿아 있지만 어느 한 곳에도 오롯이 속하지 못한 자이니치(在日·재일동포의 일본식 표현)들의 삶이 이 단어에 녹아 있다. 지난해 수원 삼성에 입단한 정대세의 삶도 평탄치 않았다. 결국은 경계를 허물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난감하고 괴로운 상황들이 그의 주변을 태풍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아프고 슬픈 ‘경계인’ 정대세를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은 핏줄, 그리고 정(情)이었다.

 남과 북, 그리고 일본이 이리저리 얽힌 정대세의 인생은 드라마틱하다.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지만, 한국(경북 의성) 출신인 조부를 따라 한국 국적을 받았다. 민족학교에서 북한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인연으로 북한 축구대표팀에 발탁됐다. 지난해 그가 쾰른(독일)을 떠나 수원에 입단한 건 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정대세에게 K리그, 한국축구는 본능적인 끌림의 대상이었다. 시련도 있었지만, 경기장 안팎에서 “힘내라”며 격려하는 한국 사람 특유의 따뜻함은 ‘반쪽 이방인’에게 큰 위안이었다.

 28일 경기도 화성시 수원 삼성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정대세는 “결국 나에겐 ‘사람’이 가장 큰 화두인 것 같다”며 웃었다. 한국에 건너온 이후 사람들로부터 힘과 용기를 얻었지만, 한편으론 그 ‘사람’에 치어 힘들었다는 고백이 뒤따랐다.

 지난해 정대세는 국가보안법 위반 논란에 휘말려 극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북한 대표팀 발탁 직후 외국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가 문제였다. 정치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 그가 무심코 했던 말들이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정대세는 한동안 모든 인터뷰 요청을 고사했고, 외부와 연락을 차단하는 등 ‘심리적 감금’ 상태를 경험했다. 배우자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지만, 이름도 얼굴도 공개하지 못했다.

 올해는 또 다른 시련이 뒤따랐다. 돈 관리를 맡긴 전 에이전트가 상당액을 유용한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혈혈단신 한국에 건너온 정대세가 가족처럼 믿고 의지했던 인물이라 충격이 더 컸다. 정대세는 “잃은 돈보다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된 게 더 가슴 아팠다”고 했다. 인천 아시안게임도 정대세에게 설움을 안겼다. 북한 대표팀의 간판 공격수인데다 한국축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와일드카드(23세 초과 선수) 발탁을 기대했지만, 끝내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냉랭한 남북의 정치 기류 속에서 ‘이슈메이커’인 정대세가 부각되는 걸 북한 체육계가 원치 않았다. 실망감은 경기력 저하로 이어졌고, 정대세는 벤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들어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삶의 어두운 면을 잊고 밝은 곳만 바라보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힘이 되는 건 다음 달 말 태어날 아들이다. ‘정대세 주니어’를 줄인 ‘대주’를 태명으로 지어놨다. 아들은 ‘예비 아빠’의 책임감과 프로정신을 일깨우는 존재다. 그는 “아내의 뱃속에서 태동하는 대주와 교감하면 없던 힘도 생긴다. 더 강하고 믿음직한 아빠가 되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진다”고 했다. 모처럼 그의 얼굴에 웃음이 퍼졌다. ‘형님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보듬는 서정원(44) 수원 감독은 든든한 언덕이다. 정대세는 “일본과 독일에서 감독은 단지 동료일 뿐이었다. 하지만 수원에서 감독님은 믿고 의논할 수 있는 형님이자 리더 다”면서 “주전 경쟁의 스트레스를 잊고 희생정신을 다시 일깨워 팀에 보탬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변명 같지만, 경기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운동해 최상의 컨디션을 회복했다. 지금부터가 진짜 도전이다.”

 - 금전 문제가 있었다는데.

 “ 전 에이전트가 내 수입 중 일부를 빼돌린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어린이 축구교실 등 은퇴 이후를 위해 모으던 돈이다. 대부분 돌려받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 아시안게임 북한대표팀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지 못했는데.

 “남과 북 모두 내 이름이 이슈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들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나는 축구선수인데 자꾸 정치와 엮이는 건 이해할 수 없다. 한국에 온 이후 운동장 밖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너무 많아 당황스럽다. ‘결국은 내가 자이니치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겪는가’ 싶을 땐 서글프다.”

화성=송지훈 기자

사람에 대한 신뢰 잃어 경기력까지 저하
곧 태어날 첫째와 서정원 감독 보며 힘 내

정대세 "첫 아이 덕분에 없던 힘도 생긴다”

-체격 : 1m81㎝, 80㎏ -별명 : 인민 루니, 블루 불도저

-출생 : 1984년 3월 2일 일본 나고야(재일동포 3세)

-학력 : 아이치 조선제2초급학교-도슌조선중급학교-

아이치조선고급학교-일본조선대학교

-좋아하는 것 : 힙합, 패션, 불고기, 애완동물

-성격 : 눈물이 많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울 정도

-경력 : 2006~2010년 가와사키(일본) 2010~2012년 보훔(독일)

2012~2013년 FC쾰른(독일) 2013~현재 수원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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