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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에겐 양식 있어 … 아베 격려하는 세력 다수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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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22일 방한한 무라야마 전 총리가 서울 조선호텔에서 군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한·일 갈등의 해법을 놓고 김영희 대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결국은 양국 정상이 마음을 터놓고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인섭 기자]

우리 귀에 익숙한 ‘무라야마 담화’의 그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는 한·일 관계 개선의 길목을 막고 있는 위안부 문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과거 아시아 제국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를 “통절하게 반성하고 마음으로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는 위안부 문제의 일본 국가 책임을 인정한 ‘고노 담화’와 함께 아베 신조 정부의 민족주의적 역사수정주의의 거센 도전 앞에 섰다.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 아베 집권 후 최악의 상황에 빠진 한·일 관계의 복원에 ‘무라야마 담화’의 주인공은 어떤 답을 갖고 있을까. 동북아역사재단 초청으로 방한한 그를 만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영희 묻고 무라야마 답하다

김영희-총리께서는 지난 8월 22일 동북아역사재단 강연에서 무라야마 담화(1995)는 일본 국가의 공식적인 역사인식이고, 전 세계에 대한 공약이라서 수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침략의 정의조차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고 강변하는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수정주의는 과거의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정면 부인 아닙니까.

 무라야마-그런 말을 한 건 맞지만 아베 총리도 최종적으로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하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그런 말을 확실히 한 걸 보면 담화 계승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아베 총리를 그런 민족주의적·역사수정주의적 방향으로 이끄는 배경은 무엇입니까. 그는 어떤 일본을 만들고 싶은 겁니까.

 무라야마-글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김-혹시 제2차 세계대전 때 실현하지 못한 아시아 지배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시대착오적 환상에 빠진 건 아닙니까.

 무라야마- 그렇게 혼이 난 일본이 다시 그런 시도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김-아베 정부는 위안부 문제 재검증으로 한·일 간 갈등에 기름을 붓고 있습니다. 그건 위안부 보고서의 신뢰를 떨어뜨리려는 꼼수 아닙니까.

 무라야마-고노 담화(1993)의 사실관계를 검증한다는 것인데 그건 사실상 곤란한 일입니다. 어쨌든 아베 정부는 고노 담화도 계승하겠다고 합니다.

 김-재검증이 담화 자체의 부정이 아니다?

 무라야마-예.

 김-그런데 지난 8월 21일 자민당 정무조사회라는 데서 고노 담화를 대체하는 새 담화를 발표하라고 정부에 요구하기로 결의했는데 그건 뭡니까.

 무라야마-그런 결정은 구속력 없어요. 정부는 고노 담화를 부정 못합니다.

 김-그래서 문제없다?

 무라야마-고노 담화를 계승은 하는데 담화의 작성과정을 분명히 하자는 거지요.

 (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와다 하루키 도쿄대학 명예교수가 나섰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 깊이 관여해 온 양심적인 일본인 그룹에 속한다.)

 와다-일본의 우익들이 한·일 정부 간에 고노 담화를 협상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한국 측 주장을 수용했다고 공격을 해 왔어요. 그래서 정부가 담화 작성과정을 검증한 결과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 검증보고서입니다. 고노 담화가 어떤 바탕에서 만들어진 것인가는 전혀 검증되지 않았어요.

 무라야마-그러니, 그건 검증할 수가 없는 것이어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거지요.

 김-총리께서는 한·일 정상회담을 열어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하는데, 정상회담이 열리면 아베 총리가 정치적인 결단을 내려 위안부 문제를 깨끗이 해결할 걸로 보십니까.

 무라야마-위안부 문제를 이대로 둘 수는 없으니 정상들이 만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그 다음 일은 관료들에게 맡기자는 겁니다. 그걸 받아서 관료들이 조율하고 충분히 토의한 결과를 정리해 다시 위로 올리면 최종적으로 정상회담에서 결말을 짓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김-한국은 일본이 먼저 성의를 보이라고 요구합니다.

 무라야마-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표명으로 성의표시가 되겠지요. 그러나 아베 총리나 일본 정부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고, 한국 대통령도 어떻게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 합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상들의 그런 말 없이는 관료들이 논의를 시작하지 못합니다. 

 김-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있다고 보십니까.

 무라야마-있다고 봅니다.

 김-와다 교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와다-아베 에게 그럴 의사가 없을 겁니다.

 무라야마-하하,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 않다고.

 와다-전적으로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 해결하라는 여론이 높으면 아베 총리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요.

 김-2012년 2월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차관이 들고 온 3세트 제안이 있지 않습니까. 정상회담에서 일본 총리가 사과하고, 일본대사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찾아가 총리의 사과편지를 읽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그들에게 피해보상을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이명박 정부는 그 제안은 일본이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책임만 지겠다는 것으로 보아 타결 직전에 무산되었습니다. 핵심 쟁점은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건데 아베 총리가 그런 결단을 내릴까요. 그리고 사사에 3세트 제안이 박근혜-아베 간 해결의 바탕이 될 수 있을까요.

 무라야마-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과가 있었으니 논의는 되지 않을까요.

 김-유엔과 미국 정부가 아베 총리의 강경입장을 비판해도 꿈쩍을 않는데 그는 보수우익의 지지를 믿는 겁니까.

 무라야마-여러 가지 배경이 있겠지만 그런 배경에 떠밀려가는 건 문젭니다.

 김-위안부 문제는 이제 전시 여성의 성(sex) 노예 문제로 글로벌 이슈가 되어 일본을 도덕적으로 압박합니다. 일본 국민들은 이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무라야마-일본 국민들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켜봅니다.

 김-일본에도 무라야마 전 총리, 와다 하루키 교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 그리고 많은 시민단체 회원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한 아베 정부의 입장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집회도 열어 왔습니다. 그런 세력과 보수우익의 힘의 균형은 우익 우세로 기울어 있습니까.

 무라야마-그렇지 않아요. 행동에 나서는 건 우익의 극히 일부입니다.

 김-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일본 국왕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는 발언이 있은 뒤 보수우익 세력이 크게 신장된 걸로 아는데요.

 무라야마-그리 간단히 말할 수는 없어요.

 김-그래도 그때 이후 아베 총리의 강경노선이 더 힘을 얻은 것 아닙니까.

 무라야마-아베 총리를 격려하는 세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다수는 아닙니다. 일본 국민들에게는 양식이라는 것이 있어요.

 김-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국가를 만든 아시아 최선진국입니다. 그런 나라의 국회의원들이 떼를 지어 A급 전범들의 혼령이 있는 신사를 참배하는 모습은 가관입니다. 그런 정치인들은 21세기의 풍요를 누리면서 19세기의 꿈을 꾸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무라야마-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건 잘못됐어요.

 김-아베 정부는 헌법해석을 달리해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의 길을 열고 한 발 더 나가서 집단자위권 행사까지 결정했습니다. 그런 행보에 대한 일본 여론의 찬반비율은 어떻습니까.

 무라야마-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역시 비판 쪽이 더 많습니다. 집단자위권 문제에서도 헌법개정이나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데 대한 반대의 소리가 점점 강화됩니다. 문제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반대로 기우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집단자위권에 관한 국회 토론을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잘 못했어요. 특히 학자·문화인 사이에서 잠자코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김-지금 중국과 일본 사이에 정상회담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잘될 것 같습니까.

 무라야마-일·중 관계도 나름대로 호전되고 있습니다. 좀 더 교류가 활발한 관계가 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부담을 안게 돼요.

 김-전망을 밝게 보시는군요.

 무라야마-어둡지는 않습니다.

 김-센카쿠 제도에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습니까.

 무라야마-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김-어찌 그리 낙관하십니까.

 무라야마-중국에 가서 사람이 살지도 않는 무인도 때문에 세계 제2와 제3의 경제대국이 충돌해서 되겠느냐고 말했더니 그들도 같은 생각이라고 해요. 그런 말을 듣고 대화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게 됐어요.

 김-지금 북한과 일본의 접근이 활발하고, 가을께 아베 총리의 평양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 전망은 어떻습니까.

 무라야마-아베 총리의 북한 방문이 성사된다면 일·북 관계가 개선되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전될 걸로 봅니다. 일·북 관계의 개선이 남북한 관계와 북·미 관계를 손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김-북·일 접근과 대화가 일본인 납치 문제에 국한되지는 않겠지요.

 무라야마-납치 문제 해결 다음에는 국교정상화를 논의할 겁니다.

 김-국교정상화 단계에 이르면 북한 핵무장을 걱정하는 미국의 견제가 없을까요.

 무라야마-미국이 일·북 관계 정상화까지 안 된다고는 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일·북 관계 개선이 6자회담도 진전시키는 방향의 진전을 보고 싶을 겁니다.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를 후퇴시키는 일·북 관계 개선은 의미가 없을 겁니다.

 김-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글로벌 협력팀 한예린
  영상=신인섭 기자

무라야마는 …

1924년 3월 규슈 오이타(大分)현 어부 가정에서 11형제 중 6남으로 태어났다. 만 90세. 중학 졸업 후 도쿄로 가 낮에는 기계공장과 인쇄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도쿄시립상고를 다니다 메이지대학에 진학했다. 이후 고향에서 노조활동을 하다 오이타 시의원을 거쳐 정계에 입문, 사회당(현재 사민당)에서 8선을 했다. 94년 6월부터 2년간 총리를 역임하며 식민지배와 침략을 공식 사죄하는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다. 역대 총리 중 가장 가난한 총리였다. 재임 중 지방출장 때 “민박을 하겠다”고 우길 정도로 대중 친화적 정치인이었다. 보수 노정객 나카소네 야스히로(96) 전 총리에 맞서는 대표적 진보 노정객으로 불린다. 트레이드 마크는 긴 흰 눈썹. 자택에 전화를 걸면 항상 본인이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