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인질석방후유증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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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란」에 억류됐던 52명의 미국인질들이 석방된지 20일. 4백44일동안 악몽을 앓았던 미국정부와 국민들은 돌아온 인질들의 몸과 마음이 모두 정상이라는 의사들의 진단에 한시름 놓았지만 정작 승자이어야할「이란」쪽에선 후유증이 심각하다.「이란」-「이라크」전쟁덕분에 한동안 식었던「이란」집권세력내 강·온 양파사이의 권력투쟁이 인질석방을 빌미로 다시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는것이다.
싸움을 벌인것은 강경파 회교성직자들이 지배하는「이슬람」공화당(IRP)과「아볼하산·바니·사드르」대통령중심의 온건파들이다. 강경파는 인질억류를 사실상 선동했으며 미국을「악마」라고 비난하면서 대미강경자세를 고집하던 축들이며 이에비해 온건파는 인질위기를 빨리 타결하는 것이「이란」에 유리하다고 주장해 왔었다. 그러나 막상 최종단계에서 미국과의 흥정을 주도한것은 IRP의 강경파들이었다.「바니·사드르」쪽에선 오히려 이 협상이 국가적 수치라고 비난하고나서 종전의 입장을 서로 완전히 바꾼 셈이됐다.
인질석방후 먼저 공격을 시작한것은 온건파쪽이었다.「바니·사드르」가 주관하는 일간신문「엥겔라브·에·에슬라미」지는 일련의 사설에서『이번 협상에서「이란」쪽은 미국에 동결된 자산1백20억「달러」중 28억「달러」밖엔 되찾지 못했고「팔레비」재산은 한푼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통박한후『「이란」이 앓고있는 골칫거리의 대부분은 회교성직자들이 지원한 인질억류사태매문』이라고 꼬집었다.
이같은 도전을 받고 강경파가 가만있을리 없다. IRP의 정부내 대변인격인「모하메드·알리·라자이」수상은 의회연설에서「이란」의 국내문제들은 혁명으로인한 사회적 격동때문이지 인질사태와는 관계없으며 이번 협상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얻어낼수 있는것은 모두 따냈다』고 인질처리과정을 변호했다.
그러나 뭐라고하든 인질문제에 관한한 강경파가 조금 궁색한 입장에 몰려있는것은 확실하다. 이런점을 간파한「바니·사드르」는 한술 더떠 정적들이 자신을 두번이나 암살하려했다고 폭로해 공격의 열도를 높였다.
「바니.사드르」주장이 사실이든 아니든 IRP의 회교강경파들이 그를 눈의 가시로 보는것만은 확실하다. IRP는 지난해봄 실시된 의회선거에서 압승한후「라자이」를 꼭둑각시 수상으로 앉혀 정부정책을 마음대로 요리하려 했지만 그때마다「바니·사드르」가 쐐기를 박아왔다.
특히「이라크」와의 전쟁이 터진후엔 군통수권을 가진「바니·사드르」의 입장이 강화되고 군부의 지지도 그에게 쏠림에따라 강경파와의「일전」은 피할수없는것으로보였다.
지금 상황에선 운은「바니·사드르」쪽이 타고있는것 같다. 인질을 석방해버림으로써 강경파들은 혁명세력에 대한 지지를 규합할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를 하나 잃은셈이 됐다. 게다가 인질협상과정에서 강경파의「행정적 무능」이 뚜렷이 드러났으며 그런 정도의 능력으로 경제난과 숱한 난제들을 풀어나갈수 없으리라는 여론이강해지고있다.
강경파들이 신처럼 떠받들어오던 혁명의 장징「호메이니」옹까지도 요즘들어선「바니-사드르」쪽으로 기울고있다는게 측근들의 얘기다.
그뿐 아니다. 회교혁명세력의 주축「멤버」이며 강경노선의 기수였던「호자틀레슬람·사데크·할할리」혁명재판소 판사까지도 지난5일 의회연설에서「바니-사드르」의 편을 들어 『IRP가 국가분열의 요인이 된다면 그 해체를 고려해야될것』이라고말해 충격을 던졌다.
그러나 이 갈등에서 어느쪽이 이기든 마지막으로 싸워야할 대상은「이란」내의 공산세력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투데」당,「게릴라」조직인「파다얀·에·할크」등 대부분 소련의 입김아래 있는 공산세력은 지금은 친서방적인「바니-사드르」에 맞서 회교세력과 연합전선을 펴고있지만 때만오면 수전명의 무장「게릴라」를 동원해 적화투쟁에 나설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6일에 대규모좌익「데모」가「테헤란」에서 벌어져 공산세력에대한 우려는 서서히 현실로나타나고있다.
【파리=주원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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