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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 대한민국을 망칠 것인가 살릴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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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수곡 십년수목 백년수인(一年樹穀 十年樹木 百年樹人).’ 1년 번영하려면 곡식을 심고, 10년 번영하려면 나무를 심고, 100년 번영하려면 사람을 키우라는 이 고사성어는 인재 양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 않는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건 물론이요, 시대에 따라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가 달라진다. 지금 원하는 인재는 누구고, 이를 양성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이명현 서울대 명예교수(전 교육부 장관),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 김영화 청담러닝 대표 등 교육 전문가에게 의견을 들었다. 이들은 “교육 덕에 한국 경제가 이만큼 성장했지만 미래는 지금같은 교육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교육 후진국 만든 주범은 정부·정치인·학부모

 강홍준 논설위원(이하 강)=‘미래에 어떤 인재를 기를 것인가’는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고민하는 문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휴대전화에 이렇게 많은 기능이 담길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시대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교육만 예외일 수는 없다. 미래지향적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부터 이야기 해 보자.

 이명현 교수(이하 이)=정부·정치인·학부모가 교육을 망치고 있다. 교육 정책을 만드는 사람조차 미래 사회가 원하는 인재가 뭔지 고민을 안 한다. 현재 한국 교육제도는 오로지 ‘대학 입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부모는 자녀를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합격시키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아이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무슨 직업이 맞을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또 교육 제도는 정치인의 표 장사 수단으로 전락했다. 미래를 내다보고 공약을 세우는 게 아니라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지지자가 원하는 약속을 내건다. A후보가 당선되면 A제도가, B후보가 당선되면 B제도가 실시된다. 대통령·장관·교육감이 누구냐에 따라 교육 제도가 널을 뛰는 이유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여야 할 교육 제도를 조령모개(朝令暮改)식으로 정하고 있는 거다.

 조벽 교수(이하 조)=정책이 자주 바뀌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암기 위주 시험 중심의 교육 제도도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과거 산업화 사회에서는 암기력이 중요했다. 해외 선진기술을 가져다 똑같이 조립해 다시 해외에 수출하는 제조업이 한국경제를 성장시켰으니 그럴 만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다.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해야 할 때가 된 거다. 과학기술뿐 아니라 디자인·마케팅·영업·경영 등 모든 영역에서 말이다. 교육이 변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같은 암기 위주 교육으로는 미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김영화 대표(이하 김)=교육 환경이 시대 변화를 못 따라가고 있다. 지금 초·중·고등학생은 우리가 겪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환경에 놓여 있다. 컴퓨터는 물론 손 안의 스마트폰만 켜면 원하는 지식을 언제 어디서나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의 모습은 어떤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교실 안에 애들 모아 놓고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친다. 개개인의 개성과 능력을 무시한 채 천편일률적으로 이뤄지는 수업에 학생들은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미래 인재 키워드는 창의·인성·소통·융합

 강=대부분 ‘교육이 변해야 한다’ ‘미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구체적 방안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과연 미래 인재가 갖춰야 할 능력은 뭐고, 우리는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이=박근혜 대통령도 ‘창의인재를 기르겠다’고 하고,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도 혁신학교를 확대해 창의·인성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창의력이 중요한 이유가 뭔가. 과학 기술이 발달한 미래에는 단순 업무는 자동화할 가능성이 높다. 정해진 업무를 꼼꼼히 하는 능력은 필요 없어지는 거다.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즉 새로운 걸 창조하는 능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조=융합적 사고 능력도 필요하다. IT업계 전설이 된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도 융합형 인재다. 두 사람 모두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 잡스는 리드 대학 철학과를 중퇴했고, 게이츠도 하버드 법대를 도중에 그만뒀다. 대학 졸업장보다 능력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지금 같은 칸막이식 교육으로는 창의력과 융합능력을 기를 수 없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문이과 통합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이유다. 인문·사회·정치·경제·수학이 무 자르듯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밥을 어떻게 먹나’라는 주제로 전 과목 교육이 가능하다. 역사는 음식문화의 변천사, 생물에서는 식도·위·장과 같은 소화 기관의 기능, 경제에서는 쌀 관세화와 우리 생활의 상관관계, 사회는 세계 기아 문제 등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조=정부도 융합의 중요성을 깨달아 2011년부터 융합인재교육(STEAM)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수학·과학·미술을 같이 배우는 게 융합은 아니다. 기술의 길을 걷는 사람과 인문학의 길을 걷는 사람이 만나는 지점이 융합이다. 학문을 합하는 것보다 지식을 가진 사람들 생각을 모으는 합심(合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김=미래 인재가 갖춰야 할 능력에 인성과 소통이 포함되는 이유다. 나와 다른 걸 배우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재창조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구온난화가 끼치는 영향’에 대해 환경학자와 종교학자·심리학자·생물학자·인문학자·경제학자 등은 모두 다른 답을 내놓을 거다. 그런 과정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게 미래 교육의 좋은 모델이자, 미래 학교의 모델이다. 스마트 교육(SMART·자기주도적이고 흥미를 끌며 수준·적성에 맞고 풍부한 자료와 정보기술을 활용하는 교육, Self-directed·Motivated·Adaptive·Resource· Technology embedded)이 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학생들이 각자 원하는 장소에서 탐구·연구한 내용을 교사나 친구와 토론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탐구력과 창의력, 의사소통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조=스마트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인 건 맞다. 교육 환경은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다. 6·25 전쟁 이후 교육은 언제든(whenever), 어디서든(wherever), 누구든(whoever) 할 수 있는 3W교육이었다. 가르쳐 줄 사람이 있으면 논·밭·숲이 모두 배움터였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같은 시간(same time)과 같은 장소(same place)에서 같은 연령대(same age)의 학생들이 교육받는 3S교육이 시작됐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학교의 모습이다. 이제는 3A교육으로 나가야 한다. 아무 때나(anytime),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anywhere), 누구나(anyone) 배울 수 있는 교육 말이다.

학벌·스펙 위주 기업 인사정책 바뀌어야

 강=이상과 현실은 늘 괴리가 있다. 정부가 ‘미래형 교육과정’이라고 내놓은 2009년 개정교육과정도 마찬가지다. 취지는 좋았지만 집중이수제 같은 엉뚱한 정책이 탄생했다. 미래 인재 양성을 가로막는 현실적인 난관이 뭔지 논의해 보자.

 이=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두 가지가 달라져야 한다. 학부모의 교육관과 기업의 인사정책이다. 학부모가 명문대에 집착하는 이유가 뭐냐. 자녀가 좋은 회사에 취직해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살게 하기 위해서다. 만약 회사에서 학벌이나 스펙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지원자가 가진 잠재력과 인성만 평가한다면 지금처럼 SKY에 목매는 학부모 수가 줄어들 거다.

 김=최근 조금씩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입에서 수시전형이 늘어나면서 학생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고, 기업 인사 문화도 달라지는 추세다. 우리 회사도 직원 뽑을 때 위기 상황 대처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그게 바로 창의력이고 인성이다. 그 다음 실무 능력을 보고, 마지막으로 학력을 검토한다.

 이=기업 문화가 달라지면 학부모 교육관도 자연스레 바뀔 거다. 부모는 자녀에게 성인이 돼 한 달에 200만원, 300만원 버는 것보다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게 의미 있는지 알려줄 필요가 있다. 또 아이 능력에 맞고, 평생 즐겁게 할 수 있는 진로 계발을 도와야 한다. 아이들 인성이 망가지는 이유 중 하나가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용서하는 사회 분위기 탓도 있다. 외국에서는 수업 태도 나쁘면 절대로 전교 1등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공부 잘하면 수업 시간에 떠들어도 혼내지도 않는다더라.

 조=맞다. 부모들은 입시(入試)가 아니라 입지(立志)에 맞춰야 한다. 뜻을 먼저 세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 교육은 수단과 목표를 혼동하고 있다. 수단이 돼야 할 대학이 인생 최대 목표가 됐다. 서울대 합격한 애들 중 80대 노인처럼 의욕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인생 최대 목표를 벌써 이뤘기 때문이다. 또 영·유아 복지정책도 바꿔야 한다. 아이들 인성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어렸을 때 부모 사랑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란 아이들이 불안감과 불신감을 안고 사춘기에 접어들면 사회부적응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가출아동은 20만명, 학업중단 청소년은 30만~40만명이나 된다. 영·유아 복지정책에 쓸 예산으로 직장인 어린이집을 확대하는 게 맞다.

대담 진행=강홍준 논설위원 ,
정리=전민희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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