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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의 책상] 서울 목동 양정고 2학년 강경민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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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민군이 책상이 아닌 바닥에 앉아 상 위에 교과서·자습서·문제집을 펼쳐놓고 공부하고 있다. 강군은 핵심 내용을 한 권의 공책에 담아 ‘나만의 교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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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땐, 볼륨을 높여요

“아이 갓 어 보이(I got a boy) 멋진 아이 갓 어 보이 착한 아이 갓 어 보이 핸섬 보이 내 맘 다 가져간~.” 자율형사립고인 양정고 전교 1등을 만나러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귀에 익숙한 소녀시대 노래가 흘러나온다. “세포의 생명 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소화계·순환계·호흡계·배설계가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사람 목소리도 함께 들린다. 방문을 여니 한 남학생이 책상은 내버려둔 채 방바닥에 상 펴고 앉아 책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리고 있다. 양정고 2학년 강경민군이다. 상 위에는 교과서와 자습서·문제집 등이 펼쳐져 있다. 노랫소리와 말소리, 어질러진 책 때문에 보는 사람도 정신이 없다. 그런데 강군은 이게 전교 1등 비결이란다.

내신 시험 2주 전 세운 계획표.

강군 공부법은 크게 세 가지다. 자기만의 교재 만들기와 음악 들으며 공부하기,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듯 말하며 암기하기다. 다시 말해 오감(五感) 활용법이다. 그 중에서도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나만의 교재 만들기가 핵심이다. 교과서 기본 개념과 수업 중 교사의 부연 설명, 자습서 핵심 정리, 문제집 심화 내용까지 공책 한 권에 다 담는 거다. 방에 번듯한 책상이 있는데도 방바닥에 주저앉아 공부하는 건 책 4~5권을 동시에 넓게 쫙 펼쳐 놓기 위해서다. 강군은 “시중에 파는 어떤 교재보다 훌륭하다”며 “그날 수업 내용을 바로 정리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복습도 된다”고 말했다. 시험 전에는 따로 교재 등을 볼 필요없이 이렇게 정리한 공책 한 권만 보면 된다. 그는 “초반에는 공책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적느라 시간만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이었는데, 몇 번 하다 보니 중요 내용을 파악해 요약하는 기술도 생겼다”고 설명했다. 책상에서 공부하는 건 수학문제 풀 때뿐이다.

교과서·자습서·문제집의 핵심 내용을 옮겨 적은 공책.

 강의하듯 공부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졸업 무렵부터. 원래 손으로 쓰면서 암기했는데, 여러 번 반복해도 머릿속에 남는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새롭게 시도한 게 소리 내 말하며 외우는 거다. 막상 해보니 쓰는 것보다 시간은 적게 걸리고 기억엔 오래 남았다. 맨 처음에는 눈으로 읽으며 중요 내용에 밑줄 치고, 그 다음엔 입으로 중얼거리며 외운 후, 머릿속에 내용이 어느 정도 저장됐다고 판단하면 다른 사람에게 강의하듯 설명한다. 강군은 “암기한 내용을 청산유수(靑山流水)로 말하지 못하고 멈칫거리면 제대로 외우지 못한 것”이라며 “암기하는 동시에 스스로 실력을 점검할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라고 말했다.

  가요를 들으며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기다. 남들은 조용해야 공부가 잘된다는데 강군은 고요하면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졌다. 시계 초침 소리 등 외부의 작은 소음에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우연히 음악을 틀었는데 놀라울 정도 문제 풀이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후 공부할 때는 늘 음악을 듣는다. 그는 “여러 경험을 통해 나에게 딱 맞는 공부법을 찾아야 한다”며 “아무리 여러 사람이 ‘안 좋다’고 해도 자신에게 맞을 수도 있고, 거꾸로 모두가 ‘효과 있다’고 해도 별 도움이 안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요를 듣는다지만 일단 공부하기 시작하면 무슨 노래가 흘러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집중한다. 심지어 휴대폰 울리는 소리도 못 들을 정도다. 엄마 김혜라(51)씨가 묻는 말에 대답까지 하고는 나중에 딴 소리 할 때도 많다. 예컨대 ‘시장 갔다 오겠다’는 엄마 말에 ‘알았다’고 멀쩡히 대답하고선 한참 후에 ‘어디 갔냐’고 전화하는 식이다. 그만큼 몰입하는 거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업 시간 교사 말의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한다. 학교 수업을 나 혼자만을 위한 수업이라고 마인드 컨트롤하는 게 집중력을 높이는 비결이란다. 그는 “교실에 교사와 나만 있다고 생각하면 한 순간도 정신을 놓을 수가 없다”며 “졸 수 없는 것은 물론 교사 질문에 대답을 꼬박꼬박 잘하는 등 수업태도도 자연스레 좋아진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인 평일 오전 8시~오후 4시엔 이렇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느라 에너지 소모가 많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녹초가 된다. 집에 돌아와 반드시 2시간 동안 낮잠 자며 체력을 회복한다. 사실 중학교 때는 귀가하자마자 바로 공부를 했다. 하지만 곧 비효율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공부하는 내내 졸리고 피곤해 30분이면 끝낼 공부를 2시간 넘게 한다는 걸 발견하고는 꼭 2시간씩 낮잠을 잔다.

  이외에도 유난히 휴식 시간이 많다. 강군은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것보다 틈틈이 쉬는 게 집중력을 높이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며 “머리가 쉬어야 지식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2~3번은 친구랑 노래방을 가거나 영화를 본다. 또 스마트폰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거나 웹툰도 즐겨 본다.

  휴식 시간이 많다고 느슨하게 사는 건 결코 아니다. 자기 관리는 철저하다. “5분만 쉬겠다”고 맘 먹으면 정말 딱 5분만 쉬고, “1시간만 TV를 보겠다”고 하면 정말 1시간만 본다. 혹시라도 긴장을 놓칠까봐 마음 먹는 순간 실시간으로 엄마에게 말한다. 자기 방에서 혼자 쉴 때도 엄마에게 “5분 쉬겠다”고 말하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 “이제 공부하겠다”고 얘기한다.

  이렇게 혼자 척척 잘 알아서 하기는 하지만 강군의 우수한 성적에는 부모 역할도 컸다. 엄마는 무엇보다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공부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동안 한 번도 이래라 저래라 하며 강요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 전교 20~30등이던 강군이 고등학교에 올라와 1등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던 건 이렇게 엄마가 기다려주는 사이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이가 알 수 없는 행동을 할 땐 ‘그러지 말라’고 다그치기보다 ‘왜 그럴까’를 먼저 생각했다”고 했다.

  비결은 또 있다. 부모가 먼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엄마 김씨는 강군이 중3 때까지 미술교사로 일했다. 바쁜 워킹맘이었지만 학업에서 한번도 손을 놓지 않았다. 강군 여섯살 때 사회복지대학원에 들어갔고, 이후 미술심리치료 공부를 했다. 자기계발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모범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강군 위로는 두 살 터울 형이 하나 있다. 김씨는 “엄마는 TV 보면서 아이한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면 누가 말을 듣겠느냐”며 “부모가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책상 앞에 앉는다”고 말했다.

  또 작은 일이라도 칭찬하는 걸 잊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키가 작았던 강군은 새 학년에 올라갈 때마다 ‘몇 번이 될까’를 걱정했다. 3월 2일 아이가 상기된 얼굴로 “올해는 2번”이라고 좋아하면 김씨는 손뼉을 치며 “기특하다”고 칭찬했다. 1번이나 2번이나 별 차이가 없지만 아이 자존감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계획 세운 걸 지키거나 방 청소를 잘해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김씨는 “학교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본 결과 모든 아이들은 한번쯤 방황한다”며 “부모가 충분히 사랑하고 믿어주면 엇나갔던 아이도 제자리에 돌아온다”고 말했다. 이런 믿음이 전교 1등 아들을 만든 셈이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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