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대맛 라이벌 (22) 육개장 - 땀 뻘뻘, 기 보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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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고 뜨끈한 육개장은 여름철의 대표적 이열치열(以熱治熱) 음식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한여름 복날에 개고기로 장국 만들어 먹으며 영양과 몸의 기를 보충했는데,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어 만든 게 육개장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육개장은 땀을 흘리게 해 체내대사를 촉진한다죠. 또 재료를 푹 끓인 덕분에 소화가 쉬워 위 부담이 적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두 집은 여러 채소를 넣는 일반적인 육개장과 달리 주인장 소신을 담아 달리 만들어 파는 곳입니다.

오경희 사장은 친정엄마의 비법을 살려 단순하게 대파와 고기만 넣은 동경육개장을 만들었다. 사진 뒤쪽 통에서 사골이 끓고 있다.

1위 역삼동 동경전통육개장

식당외관.

● 대표메뉴: 전통육개장(7000원), 황태북어국(6000원) ● 개점: 1989년 ● 특징: 일반적으로 육개장에 넣는 토란·고사리·숙주 등 없이 대파와 양지·사태만 쓴다. 7~8시간 삶은 사골육수로 국물을 만들어 깊은 맛이 난다. 동경은 일본 도쿄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상호에 동녘 동(東)자가 들어가면 좋다는 말을 듣고 오경희 사장 남편이 서울 경(京)자와 합쳐 만든 것이다. ● 주소: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역삼동 635-4)
● 전화번호: 02-566-9779 ● 좌석수: 56석 ● 영업시간: 오전 7시~오후 9시(설·추석 명절 당일만 휴무) ● 주차: 없음

고사리·숙주·토란 등 다른 재료를 넣지 않는 대신 대파와 양지·사태, 달걀지단은 듬뿍 얹는다.

“처음 오는 사람은 왜 육개장에 건더기가 없냐면서 뭐라고들 하지. 이게 대체 어디식 육개장이냐고 따지기도 하고. 그럼 난 그냥 내 식이니까 한번 먹어보고 맛없으면 오지 말라고 해.”

 오경희(64) 사장의 동경육개장은 대파와 양지·사태만 들어가는 육개장으로 유명하다. 보통 육개장엔 고사리·토란·숙주·당면 등 다양한 식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처음 온 손님은 당황해 하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오 사장에겐 20년 넘게 이런 불만을 꿋꿋이 견디는 이유가 있다.

 “난 장사에 ‘장’자도 몰랐어. 막내라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는 운동화 한번 내 손으로 안 빨았을 정도로 귀여움을 받았고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이 사업을 해서 난 그냥 곱게 집에서 살림만 하는 가정주부였거든. 그러다 남편 사업이 잘 안 돼서 먹고 살려고 1989년에 서울로 이사를 왔지. 오죽하면 친정식구들이 내가 식당을 한다니 ‘네가 뭘 팔 수 있다는 거냐’고 웃고 난리도 아니었어. 한 3년은 백반집 하면서 웬만한 찌개는 다 팔았어. 그런데 해보니 메뉴가 많으면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나만의 육개장을 팔자고 결심했지. 처음엔 나도 이것도 넣어 보고, 저것도 넣어 보고 온갖 걸 다 넣었어. 그런데 뭔가 계속 마음에 들지 않더란 말이야. 그러다 친정엄마한테 힌트를 얻었지.”

  

동경육개장은 일주일에 파를 80단이나 쓴다.

전라도 광주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늘 솜씨 좋은 엄마의 집밥을 먹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엄마 요리엔 주재료인 식재료 외에 다른 건 별로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돔으로 매운탕을 끓이면 그냥 돔만 넣는 것”이라며 “거기에 꽃게니 새우니 넣으면 생선맛도, 꽃게맛도 다 없어지는 거라고 엄마가 늘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오 사장은 과감히 육개장에서 채소를 다 뺐다. 대신 소고기와 궁합이 잘 맞는 대파 양을 늘렸다. 거기에 진하고 깊은 국물맛을 위해 사골을 끓여 육수로 썼다. 그가 처음 육개장을 팔기 시작한 90년대 초반만 해도 대부분의 육개장 집에선 사골이 아닌 양지나 사태고기 삶은 물만 육수로 사용했다.

사골을 8시간 이상 푹 끓인 육수에 대파를 가득 넣고 또 푹 끓이면 대파에서 진액이 나와 칼칼하면서도 걸쭉한 동경육개장식 육개장이 된다. 처음엔 타박을 많이 받던 이 육개장이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탄 건 10여 년 전 한 방송에 소개되면서부터다.

식당내부모습.

“요 근처 공원에서 차인표, 김남주가 나오는 무슨 드라마 촬영을 했어. (※2001년 방영작 ‘그 여자네 집’이다. ) 촬영을 밤새워 하기도 하고 새벽 일찍 하기도 하더만. 그 촬영 스태프들이 아침밥을 먹어야 하는데 아침 일찍 문 여는 식당이 여기밖에 없던 거야. 난 지금도 새벽 6시 반이면 나오거든. 그때 우리집에서 육개장을 먹어본 사람이 소개를 해서 맛집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왔어.”

 방송이 나가고 나니 육개장 건더기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은 확실히 줄었다. 아니, 오히려 그게 동경육개장만이 특색이 돼 오히려 찾아오는 사람이 늘었다.

 “어휴, 말도 마. 그게 일요일 오전에 방송됐는데 그때부터 전화가 빗발치더니 사람이 정신없이 몰려드는 거야. 낮 2시에 육개장이 딱 떨어졌지. 난 사골을 끓여서 육수를 내니까 한두 시간 만에 금방 더 만들 수가 있나. 부랴부랴 문 걸어 잠그고 마트 가서 재료 다시 다 사오고 난리였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준 덕분에 2007년 역삼역 근처에 2호점을 냈다. 1호점은 딸에게 맡기고 2호점에 집중했다. 매장 규모를 늘리고 인테리어 자재도 최고급으로 하는 등 정성을 다했다. 그런 덕분인지 2호점 역시 문 열자마자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는 그 시절을 “돈이 날아다녔다”고 표현했다. 돈은 벌었지만 무리해서 일 하다보니 예전에 부러져 수술받았던 다리에 염증이 생겼다. 3개월을 꼼짝없이 입원했다. 그게 문제였다. 육개장 끓이는 방법을 주방장에게 그대로 알려줬는데도 주인이 없어서인지 손님이 딱 끊겼다.

 “그게 참 이상해. 우리집은 별다른 비법이 없어. TV에 나오는 맛집은 뭐 북어포를 넣고 한약재를 넣어서 비법이니 뭐니 하는데 난 그냥 사골 끓인 물에 고춧가루·마늘·대파·고기 달걀지단 딱 이거만 넣거든. 몇 년 전에도 한 청년이 비용을 낼 테니 비법을 알려달라고 왔었어. 무슨 비법이 있냐고, 난 돈 안 받고 그냥 다 가르쳐줬어. 그런데도 그 맛이 안 난다고 한 달 동안 계속 비법 타령을 하는데, 아이고~.”

 한번 ‘엄마 손맛’을 잃고 실망한 손님들은 오 사장이 퇴원한 뒤에도 다시 찾지 않았다. 결국 2호점은 11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야심차게 시작한 2호점을 1년도 안 돼 포기해야 했던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아쉽단다. 오 사장은 그래도 지금껏 꾸준히 가게를 찾아오는 단골이 있어서 고맙다고 했다.

 “사실 우리 남편이 5년 전에 뇌경색으로 쓰러졌어. 그 전에는 식당에서 일을 많이 도와줬었거든. 난 인터넷이니 뭐니 잘 모르겠는데 단골들이 ‘아저씨가 요즘 식당에 없어서 섭섭하다고 빨리 완쾌하셔서 다음에 왔을 땐 다시 식당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좋겠다’고 어디에 글을 올렸다고 하더라고. 그런 게 고맙지. 그냥 밥 먹는 식당이 아니라 사람대 사람으로 마음을 써주는 거잖아.”

 이렇게 먼저 손님이 식구처럼 마음을 써주니 주인은 제일 좋은 식재료로 보답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 좋은 보답이기 때문이다. 최상의 재료를 쓰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난 옛날에 엄청 바쁠 때나 손님이 별로 없을 때나 늘 가장 좋은 재료만 써왔어. 그게 왜 중요한 지 알아. 좋은 재료를 써야 내 일거리가 줄어들어. 싼 걸 사면 처음엔 재료비 아꼈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그 안 좋은 걸 온 식구가 매달려 다듬느라 시간을 다 보내거든. 그게 돈을 아끼는 게 아니야.”

 이제는 나이도 있고 식당일 돕는 딸도 있는데 좀 쉬고 싶은 마음은 없을까. 그렇게 물었더니 대번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뭐 하려고 쉬어. 나보고 병원에 누워 있으라는 말인가. 난 아직 일하는 게 좋아. 난 지금도 새로운 메뉴 생각하고 있어. 돼지껍데기로 만드는 기가 막히게 맛있는 음식이 있거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런 새 음식을 만들어서 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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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성내동 서울육개장 짚불고기

식당 외관.

● 대표메뉴: 서울육개장(7000원), 짚불고기(500g·1만8000원), 메밀냉면(7000원) ● 개점: 2002년(논현동에서 올 8월 성내동으로 이전)
● 특징: 1969년부터 97년까지 해남식당이란 이름으로 육개장 팔던 어머니 손맛을 김수환 사장이 전수받았다. 인공조미료 대신 직접 만든 천연조미료로 칼칼하면서 깊은 국물맛을 낸다. 일반적으로 서울식 육개장엔 당면과 숙주, 계란이 들어가지만 김사장은 깔끔한 맛을 위해 넣지 않았다. ● 주소: 서울시 강동구 성안로3길 127(성내동 456-2) ● 전화번호: 02-3444-0221 ● 좌석수: 96석 ●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11시(설·추석 3일씩 휴무) ● 주차: 가능(6대)

김수환 사장이 사태고기를 자르고 있다. 다른 식당에선 고기를 손으로 찢지만 그는 칼로 고기결 직각방향으로 썬다. 입안에 넣었을 때 식감이 훨씬 부드럽기 때문이다.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2002년 여름을 지낸 어느날. 직장생활 8년차에 접어든 자동차 부품회사의 30대 사원은 40대 과장이 회사에서 갑작스레 쫓겨나는 걸 목격했다. 안 그래도 단조로운 회사생활이 슬슬 지루해지던 차에, 과장 부재를 틈 타 책상을 빼는(※정말로 책상을 뺐다고 한다. ) 회사에 질려 사표를 던지고는 식당을 차렸다. 하루에 식당 수백 개가 생기는 게 한국이다. 꿈을 갖고 전문성을 갖춰 시작하기보다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나와 생계형으로 준비없이 시작하는 게 대부분이다.

 김수환(46) 서울육개장짚불고기 사장이 장사를 시작한 계기도 이런 흔한 창업스토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어릴 적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에겐 그 사건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아직도 생생해요. 회사에서 그 과장 부부를 여행 보내줬거든요. 휴일 당직서는 날이라 회사에 있었는데 책상을 빼버리더라고요. 여행에서 돌아온 과장을 출근 못 하게 수위실에서 막고. 그걸 보니 내가 40~50대까지 이 회사를 계속 다닐 자신이 없었어요. 그때 한두 달만 더 참고 있었으면 진급해서 퇴직금이 두배 이상 차이가 났을텐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다들 바보라고 했지만 바로 사표를 냈죠. 늘 가슴 한편에 있던 음식점을 차릴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흔하게도 만들지 않았다. 라면을 끓이면 깻잎이나 장을 넣기도 하고, 달걀프라이 하나를 부쳐도 채소를 썰어 넣었다. 그땐 어려서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계란말이였다.

 대전에서 자취하던 대학 때도 놀러 온 친구들한테 음식 해주는 게 일이었다. 후배들이 엠티간다고 하면 재료비 정도만 받아서 고기 주물럭을 직접 해줬다. 회사 다니던 시절에는 외국에서 온 근로자들에게 가끔 밥을 대접하기도 했다. 맛있다는 칭찬이 늘 따랐다.

 요리엔 자신이 있었기에 회사를 나온 후 건국대 근처에 남도식당이란 해물칼국수집을 열었다. 하지만 당시 젊은층에게 인기 있던 면요리는 우동이었다. 남도식당 칼국수는 하루에 많아야 10그릇 남짓 팔았고, 단 한 그릇도 못 판 날도 적지 않았다. 해물육수는 하루 이상 보관할 수 없기 때문에 매일 수십인분 육수를 버려야 했다. 손해가 막심했다.

 

양지·사태·대파·토란·고사리·느타리버섯이 들어간 서울육개장.

“맛있으니까 당연히 다른 사람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고객층을 파악 못 한거죠. 그래도 그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을 만났어요. 가게 옆에 있던 건대병원 입원환자나 가족들이 종종 왔거든요. 하루는 한 할머니가 와서 김치 겉절이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입원해 있던 할머니 남편이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해 집으로 가게 됐다는 거죠. 할아버지가 식사를 잘 못하는데 우리집 겉절이가 있으면 밥을 조금씩이나 드신다는 거예요. 이제 퇴원하면 가게에 자주 못 오니 당신께서 직접 만들려고 한다고 해요. 사정은 딱하지만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 알려줄 수 없다고 그냥 돌려보냈어요.”

 막상 거절은 했지만 김 사장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20대 초반의 청년이 찾아와서는 또 김치를 찾았다고 한다. 느낌이 이상해 물어보니 그 할아버지 손자였다. 그는 이번엔 김치를 싸주면서 레시피도 함께 적어줬다. 그리고 또 얼마가 흐른 뒤 그 손자로부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짠하다”고 말했다. 김 사장이 요리법을 손님에게 알려준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의 겉절이를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그의 칼국수는 여전히 안 팔렸고 결국 3개월 만에 접어야 했다. 그는 철판 주물럭과 짚불고기 등으로 메뉴를 바꿨다. 어머니에게 전수받은 육개장도 이때 새로 메뉴에 넣었다. 전라도 해남 출신 어머니는 음식솜씨 좋기로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한 양반이었다.

 “어머니는 결혼 후 서울 중곡동으로 이사와서 1969년 구멍가게를 하나 차리셨대요. 그런데 워낙 동네 사람 사이에서 음식솜씨 좋은 걸로 소문이 나니까 동네 분들이 야유회 갈 때 어머니에게 돈 주고 육개장을 끓여달라고 했대요.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어머니가 아예 식당을 차린 거죠.”

 어머니가 하던 해남식당은 97년 외환위기 때 문을 닫았지만 결국 그가 그 음식을 이은 셈이 됐다.

 “다른 집 육개장과 달리 어머니는 칼칼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비법이 있어요. 조미료 대신 넣는 천연조미료죠. 이걸 그대로 배워서 지금 사용하고 있죠.”

 어릴 적부터 재료를 달리 해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하기를 즐겼던 그였던 만큼 이번에도 어머니 레시피에서 변형한 게 있다. 바로 숙주를 뺀 거다. 숙주는 쉽게 상하는 데다 수분을 많이 머금어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국물맛을 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숙주를 육개장 재료에서 빼는 데만 몇 년이 걸렸어요. 처음 육개장을 팔아보니 낮에 먹은 손님은 맛있다는데, 저녁에 온 손님은 좀 싱겁다는 거예요. 그날부터 계속 재료 하나씩 더하고 빼고 그랬죠. 그러다가 숙주가 영향을 준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막상 숙주를 빼니 전체적으로 간이 안 맞는 거예요. 또 그거 맞추려고 몇 날 며칠 동안 육개장을 끓이고 또 끓였죠.”

 김 사장은 그 외에는 기본 레시피를 절대 건드리지 않는고 한다.

 “사람이라는 게 요물이에요. 장사가 잘되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럼 조금씩 원가를 낮추려고 하죠. 계란을 메추리알로, 청오이를 반값인 백오이로 바꾸는 식으로요.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바꾸다 보면 어느 순간 손님이 끊기게 되는데, 그때 가서 바로 잡으려면 뭐가 문제인지도 알 수가 없어요.”

 김 사장은 지난해까지 남도식당이란 상호로 장사를 해왔다. 육개장을 상호에 넣은 건 지난해부터다. 계기가 있다. 한 손님이 “육개장 맛있다”면서 “어디에서 받는 거냐”고 물은 거다.

 “분식집에서 팔듯 포장음식을 내는 거라고 생각한 거죠. 직접 만드는 거라고 해도 안 믿더라고요. 사람들은 육개장을 딱 그 정도로 생각하는 거예요. 상가집에서 그냥 후루룩 먹거나 분식집에서 싸게 먹는 음식으로 말이죠. 스파게티나 라멘이 맛있으면 좋은 셰프가 만들어 좀 비싸도 되는 음식으로 생각하잖아요. 많은 생각을 했죠. 나부터라도 정말 제대로 끓인 육개장으로 제값을 받자고. 그런 의미에서 이제 시작이에요.”

 그는 지금 제대로 된 육개장을 선보이는 것 외에 목표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자기 건물을 갖는 거다.

 “가게가 성내동과 역삼동 두 곳에 있는데, 둘 다 재개발 때문에 계속 옮겨 다녔어요. 역삼동 가게는 개포동에서 이전한 거고, 성내동 가게도 논현동에서 이번 달 옮겼어요. 육개장으로 승부를 보기로 결심한 만큼 한 자리에서 30~40년 계속 장사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내 건물을 가져야겠더라고요.”

글=심영주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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