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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빡빡한 일정에도 … 78세 교황 지치지 않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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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일정은 매우 빡빡하다. 16일에는 아침 일찍 서소문 성지를 찾았다가 광화문에 가서 시복미사를 집전했다. 이어 헬기를 타고 충북 음성 꽃동네로 갔다. 장애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빠짐없이 쓰다듬고 안아주었다. 어스름이 져도 수도자들과 만나고 평신도들을 만났다. 다시 헬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갔다.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교황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서두르지도 않았다. 자기 앞에 선 사람에게 모든 에너지를 집중했다. 다들 혀를 내두른다. 교황은 78세다. “저 연세에, 어디서 저런 에너지가 나올까?” “초인적인 행보다. 너무도 헌신적이다.”

 힘의 출처를 알아봤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에서 신학교 행을 결심했을 때다. 어머니는 반대했다. 5남매 중 장남을 사제로 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달랐다. 찬성했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 가서 재미가 없다면 언제든지 다시 나와라. 네가 나온다고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황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아르헨티나의 문한림 주교는 전화 통화에서 ‘재미’에 방점을 찍었다. “그게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지치지 않는 이유다. 내가 하는 일에서 재미를 찾는 것, 그건 기쁨을 찾는 일이다. 그걸 일러준 교황의 할머니께선 아주 지혜로운 분이셨다”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듣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명감이나 의무감은 늘 한계가 있다. 언젠가 지치게 마련이다. 그게 종교든, 정치든, 공부든, 직장이든 마찬가지다. 대신 거기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다면 다르다.

 음성 꽃동네에서 저녁 늦게 수도자들을 만났을 때 교황은 직설적으로 ‘기쁨’을 강조했다. “기쁨은 삶의 모든 순간에서 드러나진 않는다. 특히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더 그렇다. 그러나 기쁨은 단 한 줄기의 빛일지라도 늘 우리 곁에 있다.” ‘단 한 줄기의 빛일지라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말에 힘을 줬다.

 서소문 성지에서 취재할 때 불과 3m 거리에서 교황을 봤다. 유심히 얼굴을 살폈다. 그는 억지로 웃지 않았다. 빈틈 없는 일정 속에서 지치지 않는 이유, 그건 ‘단 한 줄기의 빛’이 아닐까. 기쁨을 모르는 대한민국을 향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뻐하는 법을 일러주고 있는 게 아닐까.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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