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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에게 '프란치스코' 세례명 … "예정 없던 놀라운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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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 고(故)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왼쪽)씨에게 세례를 주고 있다. 한국인 평신도가 교황으로부터 개인 세례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씨의 세례명은 교황과 같은 ‘프란치스코’다. [AP=뉴시스]

“교황님은 우리들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고 안아주셨다. 정말 치유가 많이 됐다. 한마디도 흘리지 않으시고 우리와 똑같은 마음으로 공유하신 것 같다. 유족들 모두 ‘우리가 힘을 얻었다’고 했다.”

 지난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가 열린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직접 만난 김병권(50) 세월호유가족대책위원장의 말이다. 가톨릭이 아니라 기독교 신자인 김 위원장은 교황에 대해 “느껴지는 기운이 달랐다”며 “저도 모르게 엎드려 절하고 발에 입 맞춘 (세월호) 유족도 있었다”고 전했다. 함께 교황을 만난 세월호 유가족 김학일(52)씨는 “교황님을 뵌 게 먼저 하늘나라에 간 아들이 준 선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교황은 방한 동안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각별히 배려했다. 14일 입국한 뒤 지난 16일까지 사흘 새 여섯 번 만났다. 공항에 영접 나온 유가족을 만난 게 처음이었다.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는 퍼레이드용 차를 타고 장내를 돌다 유가족 앞에서 내렸다. 이어 미사 전에 유가족 및 생존학생 10명과 얘기를 나눴다. 김병권 위원장이 교황을 만난 게 바로 그때였다. 17일 오전 7시에는 서울 궁정동 주한교황청대사관에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56)씨에게 세례를 주고 ‘프란치스코’란 세례명을 부여했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교황청 대변인은 “이씨에게 세례를 준 것에 대해 교황께서는 ‘(예정에 없던) 놀라운 일이긴 하나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전날 광화문 시복식 직전에 카 퍼레이드를 하다가도 400여 명 유가족 앞에 내려 얘기를 들었다. 딸을 잃고 광화문에서 34일간 단식 중인 김영오(47)씨의 손도 잡았다.

 교황이 세월호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은 것은 지난 4월 24일이었다. 유흥식 천주교 대전교구장이 바티칸에서 교황을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를 얘기했다. 한국천주교 관계자는 “상처에 대한 치유를 외면하지 않는 교황이 세월호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때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고 기회 있을 때마다 거듭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고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교황에게 직접 세례를 받은 이호진씨는 이렇게 말했다. “교황께서 지난 15일 세례 요청을 받은 즉시 수락한 배경을 설명하셨다. ‘요청을 거절하면 상처 입은 유족들이 다시 좌절감을 맛볼 수 있어 바로 받아들였다’고 말씀하셨다.”

 교황의 행보에 교착 상태에 빠졌던 정치권의 세월호 특별법 협상도 재개됐다. 새누리당 주호영,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정책위의장은 17일 국회에서 만났다. 그러나 합의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야당이 세월호 참사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 추천권을 갖는 문제가 여전히 걸림돌이다. 새누리당 안에선 야당 요구대로 특검추천권을 완전히 넘겨주지는 않더라도 특검추천위원 7명 중에 국회 몫인 4명을 정할 때 야당 입장을 반영하는 방안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되고 있다.

전익진·윤호진·강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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