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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징용자들이 만든 '자유한인보' 진본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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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인 징용자들이 만든 잡지 ‘자유한인보’ 4, 5호의 표지와 수록 기사. [LA 중앙일보]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당해 남양군도 등에서 미군에 포로가 됐던 한인 징용자들이 하와이 수용소에서 만든 잡지 ‘자유한인보’ 4호와 5호 진본이 발견됐다. ‘독도 화가’로 잘 알려진 재미교포 권용섭(56) 씨가 부친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다. 2000년 작고한 부친 권임준 씨는 1944년 7월 강제 징용된 후 오키나와에서 미군 포로로 잡혀 하와이에 수용됐다. 자유한인보는 1945년 8월 15일 일본 항복 후 주간지 형태로 7호까지 발간됐다. 원본은7호만 국가기록원과 독립기념관에 보관돼 있고, 지난해 말 3호 사본이 발견된 것 외엔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다. 독립기념관 홍선표 책임 연구위원은 “일제시대를 관통하는 독립 운동 및 우국지사들과 맥을 같이하는 한인 징용 포로들의 육성이 담겨 있어 독립운동사에도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45년 11월 23일과 그 해 12월 2일 각각 발간된 4호와 5호엔 2700여 한인 포로 명단도 부록으로 수록돼 있다. 그 중엔 위안부로 끌려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50여 명의 여성 이름도 있다.

 자유한인보는 밀랍지에 철필로 손글씨를 쓴 뒤 등사기 롤러를 이용해 호당 300권 정도를 찍어 돌려 읽은 것으로 전해진다. 포로들의 기고문엔 조국이 분단되려 하는데 우리가 돌어가면 힘을 합쳐 막아야 한다는 내용, 힘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 이기주의를 버리자는 주장 등 우국지사적 주장들이 주를 이룬다. ‘우리들의 느낌’이란 제목의 익명 글엔 “반목질시하여 오던 오해를 일소하고…격렬한 단결에 공헌하자”고 호소한다.

 ‘고도(孤島)에의 추억’(김병태)이란 에세이는 징용 시절 고양이가 낸 소리를 미군 공습으로 착각해 모두가 혼비백산한 에피소드가 쓰여 있다. 구한말 유행한 시 형태인 ‘신체시(新體詩)’ 코너엔 남·북이 갈라지며 통일 조국이 멀어지는 안타까움을 표현한 시도 눈에 띈다.

 잡지에 드러난 생활상을 보면 한인 포로들은 미군들로부터 상당히 우호적인 대우를 받았다. 잡지 발간과 주소록 작성에 미군들이 적극 협조했다는 내용이 있다. 포로들이 청소·페인트칠 등 잡일을 하며 하루 8센트의 노임을 받기도 했다. 질 나쁜 한인 200여 명을 격리 수용해 교육시킨다는 내용도 있어 포로 사회 내부에서도 적잖은 혼란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45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 2600명이 1차로 귀국선에 올랐다. 나머지 100여 명은 다음해 8월 귀국했다.

이원영 LA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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